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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의지'라고 하면 보통 이런 장면을 떠올려요. 새벽에 알람을 끄지 않고 벌떡 일어나는 사람, 다이어트를 굳게 결심하는 사람. 그래서 의지는 '내가 마음먹고 부리는 힘'처럼 느껴지죠.
그런데 200년쯤 전 독일의 한 철학자는 정반대 이야기를 했어요. 진짜 의지는 내가 부리는 게 아니라, 나를 부리는 힘이라는 거예요. 그 사람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고, 그가 평생 매달린 개념이 바로 '맹목적 삶의 의지'예요. 오늘은 이 낯선 말을 천천히 풀어 볼게요.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가 뭔지 감을 잡으려면, 배고픔을 떠올리는 게 제일 빨라요.
배가 고플 때 우리는 '이제부터 배고파야지' 하고 결심하지 않잖아요. 그냥 몸이 알아서 음식을 원해요. 졸리면 눈이 감기고, 숨은 잠든 사이에도 알아서 쉬어지고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몸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고 또 원해요.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 멈추지 않는 '원함' 자체가 세상의 진짜 바탕이라고요. 그는 이걸 '의지'라고 불렀어요. 나무가 위로 자라려 하고, 강물이 아래로 흐르려 하고, 동물이 먹이를 쫓는 그 모든 움직임의 뿌리에 똑같은 힘이 있다고 본 거예요. 그러니까 의지는 사람의 결심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안에서 밀어붙이는 거대한 욕구예요.

그럼 '맹목적'이라는 말은 왜 붙었을까요. 맹목적이라는 건 눈을 가렸다는 뜻이에요.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냥 한다는 거죠.
다시 배고픔을 볼게요. 배고픔은 '왜 먹어야 하지'를 따지지 않아요. 그냥 먹으라고 몰아붙일 뿐이에요. 강물도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고민하지 않고 그저 낮은 곳으로 흘러요.
쇼펜하우어가 본 삶의 의지도 똑같아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계획도 없고, 도착할 목적지도 없어요. 그냥 살려고, 계속 원하려고 끝없이 밀어붙일 뿐이에요. 그래서 '맹목적'이에요. 우리가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고 살아남으려 애쓰는 것도, 알고 보면 이 눈먼 힘이 우리를 통해 자기를 이어 가는 거라고 그는 봤어요. 똑똑한 설계자가 아니라, 멈출 줄 모르는 충동에 가까운 거죠.
여기서 쇼펜하우어 특유의 우울한 결론이 나와요. 그는 세상을 어둡게 보는 염세적인 철학자로 유명한데, 그 뿌리가 바로 이 의지예요.
생각해 보면 원한다는 건 곧 '아직 없어서 아쉽다'는 뜻이에요.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못 가진 동안 괴롭죠. 그런데 막상 손에 넣으면 어떨까요. 잠깐 기쁘다가 곧 시들해지고, 이번엔 심심해져요. 그래서 또 다른 걸 원하게 되고요.
쇼펜하우어는 삶이 이렇게 '결핍의 괴로움'과 '충족 뒤의 지루함'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한다고 했어요. 의지가 멈추지 않으니 만족도 잠깐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새 휴대폰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사고 나면 며칠 만에 또 다음 걸 검색하는 우리 모습을 떠올리면 쉽게 와닿죠.

이 생각을 담은 책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예요. 1818년에 써서 펴냈는데, 처음엔 거의 아무도 읽지 않았어요. 쇼펜하우어는 자기가 큰 진실을 발견했다고 확신했지만, 책은 오랫동안 팔리지 않았고 그는 30년 가까이 무명에 가까웠어요.
그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예순을 넘긴 1850년대였어요. 평생 매달린 한 가지 생각이, 인생의 거의 끝에 가서야 빛을 본 셈이에요. 자기 철학대로라면 그 명성마저 또 다른 '원함'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요.

쇼펜하우어의 '맹목적 삶의 의지'는 어렵게 들리지만, 배고픔 하나로 잡을 수 있어요. 우리를 끊임없이 무언가 원하게 만드는, 목적도 이유도 없는 힘. 그는 이 눈먼 욕구가 세상 모든 것의 바탕이라고 봤고, 원함이 멈추지 않기에 삶은 결핍과 지루함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의 철학은 어둡지만, 동시에 '나는 왜 늘 무언가에 목말라할까'라는 우리 마음을 정직하게 비춰 주는 거울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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