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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오래 기다린 소풍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창밖에 비가 쏟아져요. 보통은 이렇게 생각하죠. "하필 오늘 비가 오다니, 망했다." 비를 미워하고,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바라요. 그런데 옆자리 친구는 "비 오니까 우산 쓰고 첨벙첨벙 걷자"며 신나 해요. 같은 비인데 한 사람은 괴롭고, 한 사람은 즐거워요.
약 150년 전 독일에 살았던 한 철학자는 바로 이 차이에 평생 매달렸어요. 어차피 내 힘으로 못 바꾸는 일이 일어났다면, 그걸 미워하며 사느냐 사랑하며 사느냐. 그가 내놓은 답이 '아모르파티'예요.
아모르파티(amor fati)에서 '아모르'는 라틴어로 사랑, '파티'는 운명이에요. 합치면 '네 운명을 사랑하라'가 돼요. 어려운 말 같지만, 뜻은 단순해요. 이미 일어난 일, 내가 처한 형편, 바꿀 수 없는 내 모습까지 미워하지 말고 끌어안으라는 거예요.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게 있어요. 아모르파티는 "그냥 참아"나 "포기하고 받아들여"가 아니에요. 비를 억지로 견디는 게 아니라, 비 오는 날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며 그날을 내 것으로 만드는 거예요. 싫은 걸 좋은 척하는 게 아니라, 그 일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다는 걸 알아채는 마음에 가까워요.
이 말을 한 사람은 프리드리히 니체예요. 1844년에 태어나 1900년에 세상을 떠난 독일 철학자죠. 그는 "신은 죽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어요. 정말 신이 숨졌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이 옛날처럼 신이나 정해진 규칙에 기대서만 살 수 없게 된 시대가 왔다는 진단이었어요. 위에서 정답을 내려 주지 않으니, 이제 각자 자기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본 거예요.
니체 자신도 편한 삶을 산 사람이 아니에요. 두통과 눈병 같은 병을 오래 앓았고, 마지막 약 11년은 정신을 놓은 채 보내다 떠났어요. 그런 사람이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했다는 점이, 이 한마디를 더 묵직하게 만들어요.

니체는 아모르파티를 설명하려고 재미있는 상상을 하나 던져요. '영원회귀'예요. 만약 지금 사는 이 삶을, 토씨 하나 안 바꾸고 똑같이 무한히 반복해서 다시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좋았던 순간도, 창피했던 순간도, 아팠던 순간도 전부 그대로요.
이건 무서운 질문이에요. 대부분은 "그건 싫어, 이 부분은 빼고 싶어"라고 하니까요. 니체는 거꾸로 물어요. 똑같은 삶을 몇 번이고 다시 살아도 "좋아, 한 번 더"라고 말할 만큼 살고 있느냐고요.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영원회귀는 예언이 아니라, 내 삶을 비춰 보는 거울 같은 생각 실험이에요.

비 오는 소풍날로 돌아가 볼게요. 참는 사람은 비가 그치기만 기다려요. 마음속으로는 계속 비를 탓하고요. 아모르파티를 아는 사람은 비를 탓하는 데 쓸 힘을,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써요. 시험에서 떨어진 일, 이사 온 낯선 동네, 마음에 안 드는 내 성격까지도, 미워하며 끌려다니는 대신 그걸 딛고 다음 발을 내딛는 거예요.
니체는 이걸 강한 사람의 태도라고 봤어요. 그가 말한 '초인'도 하늘을 나는 영웅이 아니라, 남이 정해 준 답에 기대지 않고 자기 삶을 스스로 긍정하며 만들어 가는 사람을 가리켜요. 아모르파티는 그 사람의 마음가짐인 셈이에요.

아모르파티는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말이에요. 바꿀 수 없는 일을 미워하며 끌려다니지 말고, 그 일까지 내 삶의 일부로 끌어안으라는 뜻이죠. 그냥 참고 포기하는 것과는 달라요. 니체는 "이 삶을 똑같이 다시 살아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영원회귀의 질문으로 우리를 비춰 봐요.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오늘을 사는 것, 그게 비 오는 날도 내 것으로 만드는 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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