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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초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망토를 두르고 하늘을 나는 슈퍼맨이 먼저 떠오를 거예요. 힘이 세고, 악당을 물리치고, 보통 사람보다 모든 게 뛰어난 영웅이요. 그런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말한 '위버멘쉬'는 그런 영웅이 아니에요. 위버멘쉬는 독일어로 '넘어선(위버) 사람(멘쉬)'이라는 뜻인데, 한국에 들어오면서 '초인'으로 옮기다 보니 오해가 생겼어요. 니체가 가리킨 건 남보다 힘센 사람이 아니라, 어제의 자기 자신을 넘어선 사람이에요. 비교 대상이 옆 사람이 아니라 어제의 나라는 점이 핵심이죠.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어요. 신이 진짜로 숨을 거뒀다는 뜻은 아니에요. 옛날에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종교가 정답으로 정해 줬어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시간표를 짜 주고 규칙을 정해 주듯이요. 그런데 니체가 살던 150여 년 전 유럽에서는 점점 많은 사람이 그 정답을 더는 믿지 않게 됐어요. 시간표를 짜 주던 선생님이 어느 날 교실에서 사라진 상황과 비슷해요. "신은 죽었다"는 바로 그 텅 빈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무섭다고 하기보다, 누가 정해 주던 정답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말에 가까워요.

선생님이 사라진 교실에는 두 가지 길이 있어요. 하나는 누가 새 시간표를 만들어 주길 멍하니 기다리는 거예요. 다른 하나는 "그럼 내가 직접 짜 보자" 하고 나서는 거예요.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는 두 번째 사람이에요. 정해진 정답이 없어도 주저앉지 않고, 자기만의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이죠. 남이 "이게 옳아"라고 해서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겪고 고민해서 "나는 이렇게 살래"라고 정하는 거예요. 니체는 "인간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에 걸쳐진 밧줄"이라고 표현했어요. 우리는 이미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그 밧줄 위를 건너가는 중인 존재라는 뜻이에요.

니체는 사람이 위버멘쉬로 가는 길을 세 단계로 그렸어요. 처음엔 '낙타'예요. 낙타는 무거운 짐을 묵묵히 등에 지고 사막을 건너죠. "이건 해야 한다"는 규칙을 군말 없이 따르는 모습이에요. 시키는 대로 숙제하고 시험 보는 우리와 닮았어요. 다음은 '사자'예요. 사자는 "싫어, 왜 그래야 하는데?"라고 으르렁대며 낡은 규칙과 싸워요. 다만 사자는 부수는 데까지만 갈 뿐, 새것을 만들지는 못해요. 마지막은 뜻밖에도 '아이'예요. 아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블록을 쌓고 놀이 규칙을 새로 지어내며 즐거워하죠. 니체는 바로 이 아이의 마음, 스스로 새로 만들고 긍정하는 마음이 위버멘쉬에 가깝다고 봤어요.

니체에게는 '영원회귀'라는 생각도 있어요. 지금 사는 이 하루가 똑같은 모습으로 영원히 끝없이 반복된다고 상상해 보라는 거예요. 게임에서 같은 판을 무한히 다시 하는 것처럼요. 끔찍한가요? 니체는 이렇게 물어요. "그래도 좋다, 한 번 더!"라고 외칠 수 있을 만큼 지금을 살고 있느냐고요. 이건 먼 미래의 보상을 위해 오늘을 꾹 참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오히려 오늘 하루를 영원히 반복해도 후회가 없을 만큼, 내 것으로 가득 채워 살라는 권유예요.

위버멘쉬는 하늘을 나는 영웅이 아니라, 정해진 정답이 사라진 자리에서 자기만의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 사는 사람이에요. "신은 죽었다"는 그 정답이 사라진 상황을, '영원회귀'는 오늘을 후회 없이 살고 있는지 묻는 질문이었죠. 낙타에서 사자로, 다시 아이로 가는 길은 그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고요. 니체는 답을 대신 정해 주지 않아요. 대신 "네 삶의 기준은 지금 누가 정하고 있니?"라고 우리에게 가만히 물어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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