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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약 600년 전 유럽을 한번 떠올려 볼게요.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손에 꼽을 만큼 드물던 시절이었어요. 그렇게 귀한 책을 어렵게 펼쳐 보면, 똑똑하다는 학자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적어 두었어요. '여자는 머리가 모자라고 마음도 약하다.' 요즘으로 치면 유명한 사람들 책마다, 방송마다 똑같은 험담이 반복되는 셈이에요. 모두가 그렇다고 하니 다들 그런 줄 알았죠. 그런데 그 말을 읽으며 '정말 그럴까?' 하고 멈춰 선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크리스틴 드 피잔이에요.

크리스틴은 1364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어릴 때 가족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옮겨 왔어요. 아버지가 프랑스 왕 밑에서 일하는 학자였던 덕분에, 여자아이로는 드물게 책을 가까이서 보고 자랐어요. 열다섯 살에 결혼했지만, 스물다섯 살에 남편을 병으로 잃었어요. 갑자기 어머니와 세 아이까지 혼자 책임져야 하는 처지가 된 거예요.
그때 크리스틴이 택한 길이 놀라워요. 바느질이나 재혼이 아니라 '글쓰기'였거든요. 시를 쓰고 책을 지어 그 값을 받아 살림을 꾸렸어요. 유럽에서 글을 팔아 먹고산 거의 첫 여성 작가로 꼽혀요. 지금이야 작가가 흔하지만, 여자가 글로 돈을 번다는 건 그때로선 거의 본 적 없는 일이었어요.

크리스틴은 1405년에 가장 유명한 책을 써요. 제목이 '여성의 도시'예요. 이름은 거창하지만, 그가 한 일은 종이 위에 상상의 도시를 한 채 짓는 것이었어요. 마치 블록으로 마을을 쌓듯이요.
방법이 재미있어요. 책 속에서 '이성' '올바름' '정의'라는 세 여인이 크리스틴을 찾아와 함께 도시를 지어요. 벽돌 한 장 한 장은 실제로 있었던 훌륭한 여자들의 이야기예요. 용감했던 여왕, 지혜로웠던 학자, 끝까지 신념을 지킨 사람들. 그 사례를 하나씩 쌓아 올려 '여자는 모자라다'는 말이 틀렸음을 보여 준 거예요. 험담에 험담으로 받아치지 않고, 증거를 모아 벽을 세운 셈이죠.

크리스틴이 멋진 점은 화내며 싸우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는 당시 큰 인기를 끌던 책 한 권이 여자를 함부로 그린 것을 두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조목조목 따졌어요. '왜 그렇게 말하나요, 근거가 있나요?' 하고요. 감정이 아니라 이유를 물은 거예요.
이런 태도를 두고 사람들은 그를 중세 말의 '인문주의 사상가'라고 불러요. 어려운 말 같지만 뜻은 단순해요. 옛날 권위자가 그랬다니까 무조건 믿는 대신, 사람과 세상을 자기 눈으로 다시 살펴보려는 태도예요. 크리스틴은 그 눈을 '여자도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들이댄 거죠. 그리고 답은 '당연히 그렇다'였어요.

크리스틴 드 피잔은 모두가 '여자는 모자라다'고 적던 시대에, 그 말이 정말 맞는지 혼자 되물은 사람이에요. 남편을 잃고 글로 식구를 먹여 살린 첫 여성 작가였고, '여성의 도시'라는 책에서 훌륭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벽돌처럼 쌓아 그 험담이 틀렸음을 보여 줬어요. 화내기보다 근거를 묻는 그 태도가, 우리가 그를 중세 말 인문주의 사상가로 기억하는 이유예요. 누군가 '원래 다 그래'라고 할 때 '정말 그럴까' 하고 한 번 멈추는 일, 그게 600년 전 크리스틴이 남긴 가장 큰 용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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