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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쾌락을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보통 이런 사람을 떠올려요. 공부도 일도 미뤄 두고 하루 종일 게임만 하거나, 맛있는 것만 찾아다니며 흥청망청 사는 사람이요. 그런데 오늘 이야기할 아리스티포스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는 '즐거움'이라는 말을 아주 진지하게, 거의 인생의 나침반처럼 다룬 철학자였어요. 같은 단어를 쓰는데 뜻이 왜 다른지, 천천히 풀어 볼게요.

아리스티포스는 기원전 435년쯤 태어나 80년 가까이 살았어요. 고향은 키레네, 지금의 북아프리카 리비아 근처에 있던 도시예요. 그는 일부러 먼 길을 걸어 그리스 아테네까지 가서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됐어요. 소크라테스는 '잘 사는 게 뭔지'를 끝까지 따져 묻던 스승이었죠. 재미있는 건, 소크라테스는 가르치면서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는데, 아리스티포스는 제자들에게 수업료를 받은 거의 첫 번째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그만큼 그는 '체면'보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을 챙기는 현실적인 사람이었어요.

그의 생각은 단순했어요. '좋은 삶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지금 느끼는 즐거움'이라고 답했어요. 먼 미래의 큰 보상이나, 머릿속에만 있는 멋진 이상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 몸과 마음이 느끼는 기분 좋음이 기준이라는 거예요. 시험을 끝내고 먹는 아이스크림, 더운 날 마시는 시원한 물 같은 거요. 그는 '확실하지도 않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통째로 참기만 하는 건 어리석다'고 봤어요. 손에 잡히는 지금의 즐거움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요.

여기서 오해를 풀 핵심이 나와요. 아리스티포스에게는 라이스라는, 당시 아주 유명한 여인과 가깝게 지낸 일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너무 빠진 거 아니냐'고 수군대자 그는 이렇게 말했대요. '나는 라이스를 가졌을 뿐, 라이스에게 사로잡히지는 않았어요.' 이 한마디가 그의 철학을 다 보여 줘요. 즐거움을 누리되, 그 즐거움의 노예가 되지는 않는다는 거죠. 스마트폰을 생각하면 쉬워요. 잘 쓰면 편리한 도구지만, 손에서 못 놓고 휘둘리면 주인이 바뀌잖아요. 그는 즐거움 앞에서 주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상황에 잘 적응하는 사람으로도 유명했어요. 누더기를 걸쳐야 할 때는 누더기가 어울렸고,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권력자 디오니시오스의 화려한 궁전에 머물 때는 그 비단옷도 잘 어울렸다고 해요. 형편이 좋으면 좋은 대로 즐기고, 나쁘면 나쁜 대로 견디며, 어느 쪽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았어요. '좋은 것이 와도 들뜨지 않고, 사라져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 그게 그가 추구한 즐거움의 진짜 모습이었어요.
아리스티포스는 이런 생각을 모아 '키레네학파'라는 작은 철학 모임의 시작점이 됐어요. 고향 이름을 딴 학파죠. 훗날 '쾌락'을 말한 더 유명한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나오는데, 에피쿠로스가 '고통이 없는 잔잔한 평온'을 즐거움이라 본 것과 달리, 아리스티포스는 '지금 바로 느끼는 생생한 즐거움'을 더 앞세웠어요. 그래서 그는 '순간의 즐거움만으로 정말 충분할까?'라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한 질문을 처음으로 또렷이 던진 사람으로 남았어요.

아리스티포스는 '쾌락'이라는 말을 게으름이나 방탕이 아니라 삶의 진지한 기준으로 삼은 철학자였어요. 소크라테스에게 배웠지만 자기만의 길을 갔고, 먼 미래보다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을 믿었어요. 다만 즐기되 휘둘리지 않았고, 어떤 형편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았죠. 그가 세운 키레네학파와 '순간의 즐거움으로 충분한가'라는 물음이, 우리가 오늘 그를 기억하는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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