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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교실에 반장이 없어요. 떠드는 사람을 혼낼 선생님도, 규칙을 정해 칠판에 붙일 사람도 없어요. 청소 당번도 위에서 정해 주지 않고, 자리 배치도 누가 명령하지 않아요. 그럼 그 교실은 엉망진창이 될까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해요. 누군가 위에서 질서를 잡아 줘야 굴러간다고요.
그런데 19세기에 '잠깐, 정말 그럴까?' 하고 정반대로 물은 사람이 있었어요. 위에서 명령하는 사람이 없을 때 오히려 사람들이 더 정직하게, 더 자유롭게 함께 살 수 있다고 믿은 사람. 그가 바로 미하일 바쿠닌이에요.

바쿠닌은 1814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혁명가예요. 한곳에 가만히 있는 학자가 아니라, 유럽 곳곳을 떠돌며 봉기에 직접 뛰어든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감옥에 갇히고, 시베리아로 끌려가고, 거기서 탈출해 지구를 거의 반 바퀴 돌아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또 싸웠어요. 말 그대로 평생을 권력과 부딪치며 산 사람이에요.
그의 생각을 한마디로 '무정부주의'라고 불러요. 그런데 이 말이 오해를 많이 받아요. 무정부주의는 '무질서'나 '아무거나 다 부수자'가 아니에요. 원래 뜻은 '지배하는 사람이 없는 상태', 그러니까 '위에서 명령하는 우두머리가 없는 사회'예요.
바쿠닌이 평생 맞선 대상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국가, 다른 하나는 권위예요. 여기서 권위란 '내가 위에 있으니 너는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힘을 뜻해요.
비유를 들어 볼게요. 자판기는 동전을 넣으면 음료를 줘요. 우리는 자판기가 시키는 대로 동전을 넣죠. 자판기는 우리에게 묻지 않아요. 바쿠닌은 국가가 꼭 이런 자판기 같다고 봤어요. 사람들의 사정을 묻지 않고, 위에서 정한 규칙을 그냥 내려보내요. 그리고 한번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처음엔 착한 마음이었더라도, 점점 그 힘을 지키는 일 자체에 매달리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는 '좋은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되지 않냐'는 말을 믿지 않았어요. 문제는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위에서 누르는 구조 자체에 있다고 봤거든요.

바쿠닌에게는 유명한 라이벌이 있었어요. 바로 카를 마르크스예요. 둘 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억눌리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어요. 목표는 비슷했죠. 그런데 방법에서 크게 갈렸어요.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국가 권력을 손에 쥐고, 그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했어요. 바쿠닌은 고개를 저었어요. '노동자의 국가라도 국가는 국가다. 권력을 쥔 사람은, 그게 누구든 결국 새로운 지배자가 된다.' 그는 노동자를 위한다는 정부조차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억압이 될 거라고 경고했어요.
이 갈등은 말다툼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두 사람이 함께 속해 있던 국제 노동자 조직에서, 1872년 바쿠닌은 결국 쫓겨나요. 같은 편처럼 보였던 두 사람이 '권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두고 완전히 갈라선 거예요.

여기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나와요. 위에서 명령하는 사람이 없으면, 도대체 누가 사회를 굴러가게 하나요?
바쿠닌의 답은 '아래에서 위로'였어요. 명령이 위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 약속을 만들고, 작은 모임들이 필요할 때 서로 손을 잡는 방식이죠.
생일 파티를 떠올려 볼게요. 한 사람이 모든 걸 시키는 파티가 있고, 친구들이 '난 음료 가져올게', '난 케이크 살게' 하며 알아서 나눠 채우는 파티가 있어요. 바쿠닌이 그린 사회는 두 번째에 가까워요. 명령이 아니라 약속으로, 위가 아니라 옆에서 이어지는 질서예요.

바쿠닌이 젊은 시절 남긴 유명한 말이 있어요. '파괴하려는 충동은 곧 창조하려는 충동이기도 하다.' 무섭게 들리지만, 그냥 부수는 게 좋다는 뜻은 아니에요. 낡은 집을 헐어야 새 집을 지을 땅이 생기듯, 억누르는 구조를 걷어 내야 자유로운 사회를 세울 자리가 생긴다는 뜻이었어요.
다만 정직하게 말하면, 바쿠닌은 그 '새 집'의 설계도를 끝까지 꼼꼼하게 그려 내지는 못했어요. 그는 무엇을 허물어야 하는지는 날카롭게 짚었지만, 그 뒤 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갈지는 또렷한 청사진으로 남기기보다 큰 방향으로 제시한 편에 가까워요. 그래서 그를 완성된 답을 준 사람이라기보다, 권력의 위험을 끝까지 의심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게 더 정확해요.

미하일 바쿠닌은 '위에서 누군가 명령해야 질서가 잡힌다'는 익숙한 믿음을 평생 의심한 혁명가예요. 그는 국가와 권위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해도 결국 사람을 누르는 힘으로 변한다고 봤어요. 그래서 노동자의 국가를 세우자던 마르크스와도 끝내 갈라섰죠. 대신 그는 명령이 아니라 약속으로,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엮이는 사회를 그렸어요. 그가 모든 답을 준 건 아니지만, '권력은 쥔 사람을 바꾼다'는 그의 의심은 오늘날 우리가 어떤 힘이든 너무 쉽게 믿어선 안 된다는 점을 다시 떠올리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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