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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알랭 바디우라는 사람을 소개할게요. 1937년에 태어난 프랑스 철학자예요. 그런데 이 사람 소개를 들으면 다들 한 번쯤 갸웃하게 돼요. "수학과 정치와 사랑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한 철학자"라고 하거든요. 솔직히 좀 이상하죠. 수학은 교실에서 푸는 문제고, 정치는 뉴스에 나오는 어려운 이야기고, 사랑은 드라마에 나오는 감정인데, 이걸 왜 한 사람이 같은 입으로 말할까요?
그런데 바디우는 이 셋이 사실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봤어요. 그 모양을 알면, 왜 묶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돼요. 그 열쇠가 바로 '사건'이라는 말이에요.

우리가 보내는 대부분의 하루는 비슷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고, 늘 보던 친구들을 보고,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이죠. 세상이 굴러가는 규칙이 이미 다 짜여 있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가끔, 그 규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끼어들 때가 있어요. 매일 무심코 지나치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같은 거요. 어제까지의 나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던 일이 일어난 거예요.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 뒤로는, 예전처럼 세상을 보기가 어려워져요.
바디우는 바로 이런 걸 '사건'이라고 불렀어요. 단순히 새로운 일이 아니라, 기존의 규칙으로는 담을 수 없어서 세상을 보는 눈 자체를 바꿔 버리는 일이요.

그런데 사건은 보통 번쩍하고 지나가요.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 그 순간은 짧잖아요. 바디우가 정말 중요하게 본 건 그다음이에요. 그 사건을 진짜로 만드는 건, 그 뒤에 내가 보이는 태도거든요.
좋아하는 마음이 한 번 생겼다고 사랑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을 위해 매일 시간을 내고, 마음을 쓰고, 약속을 지키는 일이 쌓여야 사랑이 진짜가 돼요. 바디우는 이렇게 사건에 끝까지 마음을 다하는 태도를 '충실함'이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바디우에게 '진리'는 사전에서 찾아보는 정답이 아니에요. 사건을 만난 사람이 거기에 충실하면서 직접 만들어 가는 것이에요. 진리는 발견하는 게 아니라, 살아 내면서 짓는 거라는 말이죠.

이제 처음의 수수께끼로 돌아가 볼게요. 바디우는 사건과 진리가 일어나는 자리를 크게 몇 군데로 봤어요. 과학(특히 수학), 정치, 예술, 그리고 사랑이에요.
생긴 모양이 다 비슷해요. 수학에서는 아무도 못 풀던 문제가 어느 날 새 방식으로 풀리면서, 가능하다고 믿던 세계가 넓어져요. 정치에서는 "원래 그런 거야"라던 질서를 뒤집는 움직임이 나타나, 사람들이 더 평등해지는 길을 열어요. 사랑에서는 따로 살던 두 사람이 만나, 함께가 아니면 못 볼 세상을 같이 만들어 가요.
셋 다 흐름이 닮았어요. 예상 못 한 사건이 터지고, 누군가 거기에 충실하고, 그렇게 새로운 진리가 만들어져요. 바디우가 이 셋을 한 입으로 말한 건 잘난 척이 아니라, 정말로 같은 구조를 봤기 때문이에요.

세상은 자주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굴어"라고 말해요. 정해진 대로 받아들이고,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요. 바디우는 거기에 조금 다르게 답해요. 정말로 새로운 것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건에 끝까지 충실할 때 생긴다고요.
물론 사건이 났다고 다 잘 풀리는 건 아니에요. 충실함은 힘들고, 도중에 흐지부지되기도 해요. 바디우도 그걸 알아요. 그래서 그의 철학은 막연한 응원이 아니라, "진리는 거저 오지 않고 네가 짓는 것"이라는 조금 묵직한 이야기예요.

알랭 바디우는 어려운 단어를 많이 쓰는 철학자지만, 핵심 그림은 단순해요. 평범한 일상을 깨고 들어오는 '사건'이 있고, 거기에 끝까지 마음을 다하는 '충실함'이 있고, 그 충실함이 쌓여 만들어지는 '진리'가 있어요. 수학도 정치도 사랑도 이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는 셋을 한자리에서 이야기한 거예요. 그래서 바디우를 한 줄로 기억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진리는 찾아내는 게 아니라, 사건에 충실하며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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