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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한나 아렌트는 600만 명의 학살을 실무 지휘한 남자를 보러 예루살렘 법정에 갔다.
거기서 그녀가 마주한 건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1961년 4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됐다.
아이히만은 나치 친위대 중령으로 유대인 600만 명을 죽음의 수용소로 실어 나른 이송 실무의 책임자였다.
당시 뉴요커지 특파원 자격으로 법정을 찾은 아렌트는 직접 그를 지켜봤다.
아렌트는 이 재판을 남 일로 볼 수 없었다.
그녀 자신이 1933년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체포됐다 풀려난 유대인 난민이었다.
게슈타포는 반체제 인사와 유대인을 잡아 가두고 고문한 조직으로, 아렌트는 프랑스 강제수용소까지 거친 끝에 미국으로 망명해 정착했다.
그런 아렌트가 방탄유리 박스 안에 앉은 아이히만을 보고 받은 충격은 따로 있었다.
56세의 그 남자는 안경을 쓰고 메모를 또박또박 정리하고 있었다.
옆 부서 부장이 회식 자리에서 명함을 건네는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칸트를 인용했다.
그는 광신도가 아니라 명령을 잘 따르는 공무원이었고, 아렌트는 거기서 가장 무서운 악의 얼굴을 봤다.
칸트는 18세기 독일 철학자로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도덕 법칙에 따라 행동하라"는 정언명령을 남긴 사람이다.
아이히만은 그 논리를 뒤틀어 "나는 법과 명령에 성실하게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직접 누군가를 죽인 게 아니라 열차 운송 일정을 짰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광신적인 반유대주의자가 아니었다.
진급과 실적에 신경 쓰던 행정 공무원이었고, 재판 내내 진부한 관료 언어로 자기 역할을 설명했다.
회사에서 부당한 지시를 받고도 "시키는 사람이 책임지겠지"라며 엑셀을 채우는 하루와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아렌트는 이것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 이름 붙였다.
거대한 악이 광기나 사디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생각 없이 맡은 일을 수행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쌓아 올리는 것이라는 통찰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600만 명을 죽게 했다는 것이다.

책이 나오자 아렌트는 하룻밤 사이 동족의 적이 됐다.
가장 가까운 친구 게르숌 숄렘조차 그녀와 인연을 끊었다.
1963년 출간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유대인 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가장 큰 분노의 불씨는 책에 등장한 유대인 협의회(Judenrat) 문제였다.
유덴라트는 나치가 게토를 관리할 때 자치 행정을 맡긴 유대인 협력 조직으로, 일부는 나치의 지시에 따라 동족의 명단을 제출하기도 했다.
아렌트는 이 불편한 사실을 덮지 않고 책에 썼다.
그러자 그녀는 희생자를 배신한 사람이 됐다.
유대인 사회는 학살의 책임 일부를 피해자에게 돌렸다며 분노했다.
숄렘은 유대 신비주의 연구의 대가이자 아렌트의 평생 친구였다.
그는 편지에 썼다. "당신에게는 유대 민족에 대한 사랑, 아하바트 이스라엘(Ahabath Israel)이 없다."
절교 통보였다.
나치에게 쫓겨 망명한 유대인 난민이 동족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순간이었다.
가족이 당한 사고를 조사하다가 "우리 쪽에도 잘못이 있었나"를 물었더니 가족에게 외면당하는 격이었다.
그래도 아렌트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렌트가 평생 두려워한 것은 괴물이 아니라 생각을 멈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게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경고였다.
말년의 아렌트는 『정신의 삶(The Life of the Mind)』을 집필했다.
사유, 의지, 판단 세 권으로 기획된 책으로,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지를 탐구했다.
하지만 1975년, 그녀는 세 번째 권을 완성하지 못한 채 타자기 앞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그녀는 끝까지 같은 주장을 유지했다.
아이히만의 죄는 광기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음(thoughtlessness)이었다고.
스스로 질문하지 않고, 명령을 의심하지 않고, 결과를 상상하지 않은 것이 600만 명을 죽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 즉 생각을 멈추는 능력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나는 시킨 일을 했을 뿐이야"라는 말은 아이히만의 법정 진술이기도 하지만, 오늘 우리 회사 어딘가에서도 들려온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생각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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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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