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19년, 한 청년이 변호사 앞에서 서류에 서명했어요.
그 서명 한 번으로 그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백만장자가 됐어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아버지 카를 비트겐슈타인은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철강 산업을 손에 쥔 재벌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삼성 창업주급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 막대한 유산이 1919년 루트비히에게 고스란히 넘어왔어요.
그런데 루트비히는 이 돈이 무서웠어요.
"돈은 사람을 망친다"는 이유였어요.
그래서 변호사를 불러 전 재산을 가족에게 양도하는 서류에 서명했어요.
여기서 반전이 있어요.
보통의 청빈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거잖아요.
그런데 루트비히는 이미 부자인 누이들과 형에게 떠넘겼어요.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가난한 사람에게 주면 그들이 망가진다"는 거였어요.
로또에 당첨됐는데 '이 돈이 나를 망칠 것 같다'며 이미 부자인 부모님 통장으로 전액 입금하는 상황이랄까요.

철학사 최고의 책을 쓴 다음 그는 무엇을 했을까요.
시골 초등학교에 교사 지원서를 냈어요.
1921년, 『논리철학논고』가 출간됐어요.
75쪽짜리 얇은 책인데, 비트겐슈타인은 이 책 한 권으로 "철학의 모든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했다"고 선언했어요.
언어가 세계를 어떻게 그려내는지를 논리로 분석해서 철학적 혼란의 뿌리를 뽑아냈다는 주장이에요.
그런데 그 다음이 기이해요.
빈을 떠나 오스트리아 시골 마을 트라텐바흐로 간 거예요.
거기서 6년간 아이들에게 산수와 라틴어를 가르쳤어요.
박사학위 받은 다음 날 '나는 이 분야에 더 할 게 없다'며 시골 분교 기간제 교사로 지원하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그는 한 학생을 너무 세게 때려 기절시켰고, 결국 교사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1941년 런던의 한 병원 복도.
약통이 든 카트를 밀고 가는 잡역부의 본명은 케임브리지 철학과 정교수였어요.
1939년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 대학 철학 정교수로 부임했어요.
영국 최고 대학의 종신 교수 자리였어요.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마자 교수직을 휴직하고 런던 가이즈 병원으로 갔어요.
그것도 자원해서요.
그는 약품을 운반하는 잡역부로 일했어요.
동료 환자와 의료진은 그가 세계적 철학자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어요.
서울대 정교수가 코로나 시국에 휴직하고 동네 병원에 '저 환자 식판 나르는 일 하겠습니다'라며 지원하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거기서도 그는 환자들에게 조용히 "약은 먹지 마세요"라고 충고했어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비트겐슈타인의 책상에는 미완성 원고 한 권이 놓여 있었어요.
그것은 30년 전 자신이 쓴 책을 무너뜨리는 책이었어요.
1951년 4월 29일,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전립선암으로 숨을 거뒀어요.
죽기 직전 의사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멋진 인생이었다고 전해주시오."
그의 책상에는 『철학적 탐구』 원고가 있었어요.
이 책은 30년 전 그가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언했던 『논리철학논고』를 정면으로 뒤집어요.
『논리철학논고』는 "언어는 세계를 그림처럼 그린다"고 했는데, 『철학적 탐구』는 "언어의 의미는 그것이 쓰이는 방식에 있다"고 말해요.
쉽게 말하면 이런 차이예요.
"사랑"이라는 단어의 뜻이 사전에 고정돼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그 단어를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쓰느냐가 그 의미를 만든다는 거예요.
30년 전 자신의 베스트셀러를 완전히 부정하는 후속작을 쓰고 죽는 셈이에요.
결국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자기 자신의 사상을 스스로 반박했고, 그 두 책 모두 20세기 철학의 정점이 됐어요.
보통 사람은 틀렸을 때 방어하거나 잊으려 해요.
비트겐슈타인은 틀린 것을 직접 뒤집는 책을 썼어요.
재산도, 교수 자리도, 자신의 이론도 전부 내려놓은 사람의 마지막 말이 "멋진 인생이었다"였어요.
그렇다면 그에게 인생을 멋지게 만드는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2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