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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20세기 분석철학을 만든 사람은 평생 자신의 강의실에서 학생 두세 명만 마주쳤어요.
고틀로프 프레게는 1879년 개념 표기법(Begriffsschrift)을 출판해요.
이 책은 오늘날 '술어 논리'의 시초가 된 책이에요.
술어 논리란 "모든 인간은 죽는다"처럼 자연어로 된 주장을, 수학 기호로 분해해서 참·거짓을 따지는 방법이에요.
그런데 당대 수학계와 철학계는 이 책을 거의 무시해요.
예나 대학교에서 1896년에야 겨우 명예 정교수직을 얻었고, 강의실은 늘 한산했어요.
훗날 버트런드 러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에드문트 후설, 루돌프 카르납이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어요.
이들은 20세기 서양 철학과 논리학을 사실상 재편한 인물들이에요.
하지만 정작 프레게 본인은 평생 자신이 만든 학문이 세상에 닿는 걸 보지 못했어요.
오늘날 모든 음악가에게 영향을 준 작곡가가, 본인 생전에는 빈 연주회장에서 두세 명 앞에서만 연주한 것과 같아요.

프레게는 인생 25년을 단 하나의 증명에 걸었어요.
모든 수학이 논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거예요.
1893년 그는 산수의 기본법칙(Grundgesetze der Arithmetik) 1권을 출판해요.
숫자, 덧셈, 무한 같은 산수의 모든 개념을 오직 순수한 논리만으로 도출하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였어요.
그는 이걸 '논리주의(Logicism)'라고 불렀는데, 수학이 직관도 경험도 아닌 오직 논리의 결과라는 주장이에요.
비유하면 이런 거예요.
모든 음악이 단 일곱 개 음표 규칙에서 자동으로 도출된다는 것을, "비슷하다"가 아니라 "완전히 동일하다"로 빈틈 없이 증명하겠다고 평생을 바치는 거예요.
그는 2권을 위해 다시 10년을 매달렸어요.
25년의 학문 인생 전부를 그 한 증명에 쏟아부었어요.

1902년 6월 16일, 인쇄소에서 책이 찍히고 있는 그 순간 프레게는 영국 청년이 보낸 편지를 열었어요.
편지를 보낸 사람은 당시 30세의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에요.
러셀은 훗날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이 되는 인물이에요.
편지 내용은 한 줄이었어요. "당신의 시스템에 모순이 있습니다."
러셀의 역설이란, 논리 시스템 안에서 스스로 모순을 일으키는 문제예요.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모든 집합의 집합"이라는 개념은, 포함해도 모순, 포함하지 않아도 모순인 논리적 폭탄이에요.
그리고 프레게의 다섯 번째 공리(법칙 V)가 정확히 그 폭탄을 품고 있었어요.
법칙 V는 프레게의 논리주의 전체가 기대고 있는 핵심 토대였어요.
그 토대가 흔들리면 그 위에 쌓인 25년의 논증이 전부 함께 무너지는 거예요.
평생 써온 책의 인쇄가 시작된 바로 그날, 출판사로부터 "핵심 챕터가 통째로 틀렸다"는 연락을 받은 작가의 심정이에요.
프레게는 책을 회수하지 않았어요.
대신 마지막 페이지에 자신의 패배를 인쇄로 남겼어요.
2권 끝에 후기(Nachwort)를 더해, 그는 직접 이렇게 썼어요.
"과학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작업이 완결된 뒤에 그 기초가 무너지는 것이다."
자기 평생작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 책의 핵심 주장은 틀렸다"고 직접 인쇄해 넣은 거예요.
학자로서 가장 자존심 상하는 순간을, 숨기지 않고 자기 손으로 활자로 박았어요.
그는 응급 처방을 시도했지만 결국 논리주의를 포기했어요.
말년에는 수학의 기초를 기하학에서 다시 찾으려 했어요.
25년짜리 꿈은 그렇게 끝났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건 가장 용감한 선택이기도 해요.
많은 학자가 자신의 이론이 틀렸다는 걸 알고도 침묵하거나 모른 척하거든요.
프레게는 달랐어요.
그 후 수십 년이 지나 러셀, 비트겐슈타인, 카르납이 그의 작업 위에 분석철학의 전당을 쌓았어요.
정작 프레게는 그 전당의 이름을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요.
어쩌면 가장 정직한 학자의 마지막 페이지란, 언제나 이런 모습일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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