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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영어 사전에서 'dunce' 를 찾으면 '바보'라고 쓰여 있어요.
그 단어는 한때 유럽 최고의 두뇌로 불리던 한 수도사의 이름에서 왔어요.
13세기 스코틀랜드 출신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둔스 스코투스는 '정교한 박사(Doctor Subtilis)'라는 별명을 얻은 사람이에요.
논증이 워낙 촘촘해서, 동시대 철학자들이 직접 붙여준 칭호예요.
오늘날로 치면 학계에서 "그 사람 논리는 진짜 빈틈이 없다"는 말을 들은 것과 같아요.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가 오면서 상황이 뒤집혔어요.
15~16세기 인문주의자들은 스코투스를 따르는 학자들, 이른바 'Dunsmen(던즈멘)' 을 "시대에 뒤떨어진 궤변가"라며 조롱하기 시작했어요.
결국 16세기 영어 사전에는 'dunce'가 '바보, 멍청이'라는 뜻으로 등재됐어요.
한 시대에 가장 섬세하게 사고했던 철학자의 이름이, 다음 시대엔 사고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가 된 거예요.
학창 시절 반에서 가장 똑똑하던 친구의 이름이 훗날 '바보'를 뜻하는 별명으로 굳어진 것과 같은 일이에요.
역사는 가끔 이런 잔인한 농담을 해요.

800년 전 한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는 '왜 너는 너인가'라는 질문에 라틴어 한 단어로 답했어요.
'이것임(haecceitas, 헥케이타스)' 이에요.
일란성 쌍둥이를 생각해봐요.
DNA도 같고, 얼굴도 같고, 자라온 환경도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두 사람을 분명히 다른 존재로 느끼잖아요.
당시 철학의 주류는 이 느낌을 설명하는 방식이 달랐어요.
"그 사람이 속한 '인류'라는 보편적 본질이 각자를 사람으로 만든다"는 거예요.
보편자(universals), 즉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인간임'이라는 속성에서 개체의 정체성을 찾은 거예요.
스코투스는 여기서 방향을 완전히 틀었어요.
"소크라테스를 소크라테스이게 하는 건 '인류'가 아니야.
그 사람 안에만 있는 어떤 것, '이것임'이 따로 있거든."
보편이 아니라 개체야말로 가장 실재하는 것이라 본 거예요.
비유하자면 이래요.
'인간'이라는 카테고리는 폴더 이름이에요.
스코투스는 폴더가 아니라 그 안의 파일 하나하나가 진짜라고 말한 거예요.
이 개념은 800년이 지난 지금도 철학자들이 인용할 만큼 강력해요.
"너는 왜 너인가"라는 질문에 이보다 더 명쾌한 한 단어 답을 내놓은 사람이 아직 없거든요.

신은 왜 우리를 사랑하는가.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게 이성에 맞기 때문"이라 답했어요.
신은 완전한 이성의 존재이므로, 이성적으로 옳은 것을 필연적으로 행한다는 거예요.
스코투스는 정반대로 답했어요.
"신은 이성이 아니라 의지로 움직여."
신도 도덕도 사랑도, 모두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라는 거예요.
이걸 '의지주의(voluntarism)' 라고 해요.
쉽게 말하면, 도덕과 사랑은 이성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입장이에요.
아퀴나스가 "신은 올바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했다면, 스코투스는 "신은 사랑하기로 선택했다"고 한 셈이에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게 본능적 의무인지, 아니면 매일 새로 하는 선택인지 물어봐요.
아퀴나스식으로 보면 "이성적 존재로서 당연한 의무"고, 스코투스식으로 보면 "매일 다시 선택하는 것"이에요.
스코투스는 후자가 더 아름답다고 봤어요.
"신도 우리를 사랑하기로 선택한 거야.
필연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 한마디가 중세 신학의 구조를 흔든 거예요.
필연의 세계를 자유의 세계로 바꿔놓은 셈이에요.
이성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신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신.
그게 스코투스가 그린 신의 모습이에요.

1854년 12월 8일, 교황이 한 교리를 공식 선포했을 때, 그것을 주장한 수도사는 이미 546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어요.
13세기 파리 대학에서 스코투스는 '무염시태(Immaculate Conception)' 를 옹호했어요.
무염시태란 성모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됐다는 주장이에요.
쉽게 말하면, "마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죄의 오염 없이 깨끗했다"는 거예요.
당시 주류 신학자들은 반대했어요.
토마스 아퀴나스를 따르던 신학자들이 다수였고, 스코투스의 입장은 소수설에 불과했어요.
회의실에서 모두가 반대 손을 드는데 혼자 찬성 손을 드는 것과 같은 상황이에요.
스코투스는 살아서 그 논쟁에서 이기지 못했어요.
1308년경, 그는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자신의 주장이 공인받는 날을 보지 못한 채요.
하지만 1854년, 교황 비오 9세는 칙서 'Ineffabilis Deus'를 통해 무염시태를 가톨릭 공식 교리로 선포했어요.
칙서란 교황이 전 교회에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최고 권위의 문서예요.
그 순간, 스코투스가 패배한 논쟁은 공식적으로 뒤집혔어요.
546년이에요.
오늘 태어난 아이가 100살을 산다 해도, 그 아이의 증손자 세대가 또 100년을 살고 나서야 결론이 나는 시간이에요.
스코투스는 그 기간을 기다려서 이겼어요.
그의 이름은 한때 영어 사전에서 '바보'가 됐어요.
그리고 죽은 지 546년 뒤, 교회 전체가 "그가 옳았다"고 인정했어요.
지금 우리가 그의 이름을 꺼낸 건,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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