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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토머스 홉스는 자기 인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적이 있어요.
"공포와 나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이건 비유가 아니에요.
1588년 4월, 영국 남부 맘즈베리의 한 가정집에서 홉스의 어머니가 예정일도 아닌데 산통을 시작했어요.
그날 온 동네에 소문이 퍼졌거든요.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해안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이었어요.
무적함대란 스페인이 영국을 침공하기 위해 보낸 130척짜리 거대 함대예요.
당시로서는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군사작전이었어요.
그 소식에 충격받은 어머니가 예정일보다 일찍 홉스를 낳았어요.
새벽에 지진 경보 알림이 울려 식은땀 흘리며 눈을 뜬 그 순간, 옆방에서 아기가 태어난 셈이에요.
그런데 이게 단순한 출생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아요.
이 남자는 훗날 "국가란 공포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가 되거든요.
평생의 철학이 태어나던 날 공기 속에 이미 새겨져 있었던 거예요.

1640년 11월, 절대왕정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가 정작 그 왕정의 보호도 못 받고 영국을 빠져나갔어요.
절대왕정이란 왕 한 명이 나라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예요.
당시 영국에서는 왕과 의회가 충돌 직전이었는데, 52세였던 홉스는 왕의 편에서 글을 쓰고 돌리고 있었어요.
의회파가 이걸 알면 가만두지 않을 게 뻔했어요.
그래서 홉스는 도버 해협을 건넜어요.
이후 11년간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미래의 영국 왕 찰스 2세에게 수학을 가르쳤어요.
찰스 2세도 당시 파리에 숨어 있던 망명 왕세자였거든요.
"회사에 충성하라"고 외치던 임원이 위기가 터지자 가장 먼저 짐을 싼 그 장면과 똑같아요.
강력한 군주가 사회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그 군주의 보호도 받지 못했으니까요.
파리에 있는 동안 홉스는 르네 데카르트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격렬히 논쟁하기도 했어요.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예요.
망명 중에도 싸울 상대를 찾은 거예요.
『리바이어던』은 왕에게도, 의회에게도, 교회에게도 환영받지 못했어요.
모두에게 미움받기 위해 쓴 책 같았어요.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거대한 바다 괴물이에요.
홉스는 그 괴물의 이름을 국가에 붙였어요.
국가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크고 강력한 존재여야 한다는 거예요.
1651년 런던에서 출간된 이 책의 핵심 주장은 하나예요.
"왕의 권력은 신이 내린 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 걸 막기 위해 맺은 계약에서 나온다."
오늘날로 치면, 경찰을 우리가 세금 내서 고용한 거지 신이 임명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왕당파는 분노했어요.
왕권신수설, 즉 왕의 권력은 신에게서 왔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했으니까요.
의회파도 거부했어요.
절대권력을 결국 정당화한다는 이유에서였어요.
교회는 그를 무신론자로 몰아붙였어요.
출간 직후 파리의 망명 영국 궁정은 홉스에게 출입 금지를 통보했어요.
팀 회의에서 절충안을 냈더니 양쪽이 다 화내는 그 순간, 홉스에게 정확히 그 일이 벌어진 거예요.
1666년 어느 밤, 78세의 홉스는 벽난로 앞에 앉아 자기 원고를 한 장씩 불 속에 던졌어요.
그해 영국에는 흑사병과 런던 대화재가 잇달아 덮쳤어요.
영국 의회는 이걸 신의 분노라고 봤어요.
그리고 그 분노를 불렀다는 죄목으로 무신론과 신성모독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설치했는데, 핵심 표적이 바로 『리바이어던』이었어요.
홉스는 자신이 쓴 미공개 원고 일부를 직접 벽난로에 넣었어요.
평생 SNS에 강한 글을 올리다가 어느 날 옛 게시물을 조용히 전부 삭제하기 시작하는 그 침묵 같아요.
공포 위에 정치이론을 세운 사람이, 끝내 자기 책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 거예요.
영국에서 그의 신간 출판은 금지됐어요.
그래서 홉스는 87세에 고대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드』를 영어로 번역하는 걸로 남은 시간을 보냈어요.
종교도 정치도 건드리지 않는 안전한 작업이었어요.
그러고는 91세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그가 죽고 4년이 지난 1683년, 옥스퍼드 대학은 광장에서 『리바이어던』을 공개로 불태웠어요.
공포로 태어난 사람이, 평생 공포를 철학으로 해부하다가, 결국 그 철학 때문에 공포에 떨다 죽었어요.
그리고 4년 뒤, 사람들은 그의 책을 불태우면서 비로소 안심했어요.
책을 불태워야 한다는 건, 그 책이 여전히 두렵다는 고백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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