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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19년 6월, 빈의 어느 거리에서 17살 카를 포퍼는 자신이 믿던 이론이 사람의 피로 정당화되는 장면을 봤어요.
그날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호를가세 거리에서 경찰이 발포했고, 공산주의 활동가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포퍼는 그 자리에 있었어요.
열성적인 마르크스주의 청년으로 활동 중이었으니까요.
마르크스주의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뜨겁게 타오르던 사상이었어요.
"역사는 반드시 노동자 혁명으로 흐른다"는 주장인데, 오늘날로 치면 어떤 스타트업의 성공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굳게 믿는 것과 비슷해요.
포퍼는 그 믿음 안에 완전히 들어가 있었어요.
그런데 동료들이 쓰러지는 걸 보는 순간, 낯선 질문이 고개를 들었어요.
"이론이 맞다고 믿었는데, 그 이론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 내가 진짜로 옳다는 걸 어떻게 알지?"
이 질문 하나가 포퍼를 바꿨어요.
마르크스주의를 떠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평생 하나의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어요. "어떤 이론이 '옳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인가."

좋은 과학과 사이비를 가르는 단 한 줄의 기준이 있다면, 포퍼는 이렇게 썼어요. "이 이론은 어떻게 틀릴 수 있는가."
1934년 포퍼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라는 책을 냈어요.
거기서 그는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을 과학의 조건으로 내세웠어요.
쉽게 말하면, 이론이 틀렸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실험이나 관찰이 원칙적으로 가능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비유하자면 이래요.
"내일 비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는 말은 어떤 날씨가 와도 맞아요.
반면 "내일 서울은 비가 온다"는 말은 내일 해가 쨍쨍하면 틀렸다고 확인할 수 있죠.
포퍼는 전자를 사이비라 불렀어요.
그리고 반전은 여기서 나와요.
당시 학계의 주류였던 빈 학파는 "이론을 입증할 수 있어야 과학"이라는 검증주의를 믿었는데, 포퍼는 정반대로 "입증이 아니라 반박할 수 있어야 과학"이라고 선언한 거예요.
그런데 그 기준으로 포퍼가 사이비로 지목한 이론이 두 가지 있었어요.
하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또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였어요.
두 사상 모두 그 시대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던 학설이었어요.
왜 사이비냐고요?
프로이트 이론으로는 어떤 환자 행동도 설명할 수 있어요.
공격적이면 "억압된 욕구", 얌전하면 "방어 기제"라고 해석하면 되거든요.
무슨 결과가 나와도 이론이 살아남는다면, 그 이론은 틀릴 수가 없어요.
포퍼의 눈엔, 틀릴 수 없는 이론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이론이었어요.

포퍼는 남태평양 끝 작은 도서관에서, 서양 철학의 시조를 자유사회의 적으로 고발하는 책을 쓰고 있었어요.
1937년, 나치가 유럽을 장악해 가던 시절이에요.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이었던 포퍼는 살아남기 위해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의 캔터베리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빈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간 셈이었죠.
그는 그곳에서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썼어요.
이 책은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를 전체주의의 사상적 뿌리로 고발하는 내용이에요.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서양 철학 전체의 출발점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에요.
그런 플라톤을 2500년 뒤의 거의 무명인 망명 학자가 "전체주의의 지적 조상"이라고 부른 거예요.
학계로 치면 신인 아이돌이 비틀즈를 "음악의 적"이라고 선언한 것과 비슷한 충격이었죠.
포퍼가 플라톤에서 본 문제는 이랬어요.
플라톤은 "완벽한 국가는 완벽한 진리를 아는 철인이 다스려야 한다"고 했어요.
철인이란 철학으로 단련된 이상적 지도자라는 뜻인데, 문제는 누군가 진리를 독점하는 순간 비판이 사라진다는 거예요.
포퍼는 그 구조 자체가 전체주의의 씨앗이라고 봤어요.
포퍼 본인은 이 책을 "나의 전쟁 노력"이라고 불렀어요.
총을 들 수 없었던 학자가 펜으로 싸우겠다는 선언이었죠.

포퍼가 비트겐슈타인을 만난 건 단 한 번, 시간은 10분이었어요.
그리고 그 10분에는 부지깽이가 등장했어요.
1946년 10월 25일, 케임브리지 대학의 도덕과학클럽에서 포퍼가 발표를 했어요.
도덕과학클럽은 케임브리지 철학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던 모임이에요.
발표 주제는 "철학적 문제는 진짜 문제인가"였어요.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언어철학자로, 포퍼와 함께 20세기 철학을 양분하는 거장이에요.
하지만 두 사람의 생각은 정반대에 가까웠어요.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문제 대부분은 언어의 혼동에서 오는 가짜 문제"라고 봤고, 포퍼는 "아니, 철학에는 진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거든요.
발표 도중 비트겐슈타인이 벽난로 부지깽이를 들고 격렬하게 반박했어요.
그러더니 "도덕 원칙의 예를 하나 들어봐라"고 요구했죠.
포퍼는 침착하게 대답했어요. "객원 강연자를 부지깽이로 위협하지 말 것."
비트겐슈타인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요.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이후예요.
그날 목격자들의 진술이 서로 완전히 달랐어요.
부지깽이를 휘둘렀는지 그냥 들고 있었는지, 누가 먼저 나갔는지조차 엇갈렸어요.
결국 2001년 작가 두 명이 이 10분짜리 사건만 추적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어요.
제목은 '비트겐슈타인의 부지깽이'였죠.
목격자가 열 명이어도 진실에 대한 합의는 없었어요.
어쩌면 그 10분의 진실을 아무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포퍼가 평생 주장한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일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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