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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오늘날 'epicurean'이라는 단어는 미식 칼럼의 단골 용어예요.
정작 에피쿠로스 본인은 평생 빵과 물로 끼니를 때웠어요.
가끔은 치즈 한 조각이 추가됐고, 그게 그에게는 '호화로운 식사'였어요.
고대 그리스의 전기 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에피쿠로스의 생애를 직접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 이걸 전하는데,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썼어요.
"빵과 물만 있으면 나는 신들과 다를 바 없이 행복하거든."
하지만 그의 이름은 사후 수백 년에 걸쳐 정반대 뜻으로 굳어졌어요.
오늘날 SNS에서 비싼 오마카세 사진에 "epic한 한 끼"라는 캡션을 다는 풍경, 그게 지금 이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이에요.
쾌락주의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사람이, 실제로는 욕심을 줄이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꽤 당혹스럽지 않나요.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변두리에 정원 하나를 샀어요.
그 문은 노예에게도, 여성에게도, 외국인에게도 똑같이 열려 있었어요.
기원전 306년경, 그는 아테네 외곽에 케포스(Kepos), 말 그대로 '정원'이라 불리는 학교를 열었어요.
당시 플라톤의 아카데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은 자유민 남성만 받는 곳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명문대 입시에 신분 조건이 붙어있던 시절에, 에피쿠로스만 "누구든 와도 된다"고 한 거예요.
그 결과가 흥미로워요.
레온티온이라는 여성 제자는 그냥 앉아서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에피쿠로스에게 직접 논쟁을 걸었어요.
당시 사회에서 여성이 철학자에게 반론을 제기하는 건, 오늘날로 치면 신입사원이 CEO의 경영 방침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만큼 파격적인 일이었거든요.

에피쿠로스에게 쾌락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적게 원하는 것이었어요.
그는 쾌락을 두 단어로 정의했어요.
아포니아(aponia), 즉 '고통 없음'과 아타락시아(ataraxia), 즉 '마음의 평정'이에요.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추우면 따뜻하게 입으면 돼요. 그 욕구가 충족되면 충분한 거예요.
하지만 명예욕이나 재산욕 같은 건 아무리 채워도 끝이 없어요.
월급이 오를수록 지출도 함께 오르는 현상, 요즘 말로 '라이프스타일 인플레이션'이 정확히 그가 경고한 함정이에요.
그는 이걸 이렇게 표현했어요.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은 얻기 쉽고, 쓸데없이 원하는 것은 얻기 어렵거든."
그러니까 그의 쾌락주의는 흥청망청 즐기라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지금 가진 것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걸 깨닫는 훈련이었어요.
더 정확히는, 욕망의 목록을 줄여가는 연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신장결석으로 죽어가며 친구에게 편지 한 통을 썼어요.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어요.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에."
기원전 270년, 에피쿠로스는 신장결석과 이질이 겹쳐 극심한 통증 속에 누워 있었어요.
그 상태에서 평생의 벗 이도메네우스에게 편지를 썼어요.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자 가장 행복한 날에, 너희와 나눈 대화의 기억이 모든 고통을 상쇄한다."
이건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에요.
에피쿠로스는 평생 "좋은 기억은 현재의 고통을 이길 수 있다"고 가르쳤는데, 그게 자기 죽음 앞에서 실제로 작동하는지 직접 증명해 보인 거예요.
시한부 진단을 받은 사람이 가족에게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충격이에요.
그는 며칠 뒤 따뜻한 욕조에 누워 포도주 한 모금을 마시고 숨졌어요.
빵과 물로 살아온 사람의 마지막 사치가 포도주 한 모금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게 충분하다고, 그는 정말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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