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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는 강의실에서 진리를 증명한 뒤, 그 진리가 틀렸다고 직접 선언하고 강단을 내려왔어요.
1270년대 파리 대학 인문학부.
시제 드 브라방은 매주 이런 강의를 했어요.
강의 끝에 이렇게 덧붙였어요. "철학적으로는 이 결론이 맞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다른 것을 가르치고, 신앙이 옳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이런 상황이에요.
발표를 마친 직원이 "제 분석은 맞습니다. 하지만 회사 방침은 반대이고, 회사 방침이 옳습니다"라고 덧붙이는 거예요.
그런데 시제는 그걸 한 번이 아니라 매주 반복했어요.
그는 단순한 기회주의자가 아니었어요.
당시 유럽 최고 대학인 파리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학자이면서, 동시에 가톨릭 사제였어요.
두 세계에 발을 걸친 사람이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솔직한 방법이 바로 그 이중 선언이었어요.

그가 가르친 두 명제만으로 13세기 파리 신학자들은 강의를 멈추라고 요구했어요.
시제가 따른 사상가는 아베로에스예요.
12세기 이슬람 세계의 철학자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아랍어로 방대하게 풀어낸 사람이에요.
그 주석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파리에 들어오면서 유럽 철학계가 뒤집혔어요.
당시 기독교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하려면 아베로에스를 거쳐야 했어요.
그래서 시제 같은 학자들을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 즉 아베로에스의 해석을 그대로 따르는 라틴어권 철학자라고 불렀어요.
당시 유럽에서 이 이름표는 꽤 위험했어요.
시제가 가르친 핵심은 두 가지였어요.
"세계는 영원하며 시작이 없다"는 첫 번째 명제는 창조론을 정면으로 부정해요.
"모든 인간은 단 하나의 지성을 공유한다"는 두 번째 명제는 개인 영혼의 불멸을 부정하는 거예요.
그런데 시제는 무신론자가 아니었어요.
정반대로, 그는 가톨릭 사제였어요.
자기가 가르치는 명제가 교회와 정면충돌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논리가 이 결론을 가리킨다고 가르쳤어요.
그의 태도는 이런 거였어요.
"철학이 이렇게 말하니까 따라가는 것뿐, 믿느냐 마느냐는 다른 문제야."

단죄 명단에 시제의 이름과 그를 가장 강하게 반박했던 아퀴나스의 이름이 나란히 올랐어요.
1277년 3월 7일.
파리 주교 에티엔 탕피에가 219개 명제를 단죄하는 칙령을 발표했어요.
시제가 강의실에서 가르쳤던 내용이 그 중심에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나왔어요.
시제를 가장 강하게 비판했던 사람은 당대 최고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였어요.
도미니코회 수도사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가톨릭 신학과 결합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아퀴나스의 일부 학설도 같은 단죄 목록에 올랐어요.
한 검열 기관이 좌파 논설과 우파 논설을 같은 날 동시에 금지한 것과 같아요.
신학 권력은 시제의 철학도, 그것을 비판하는 아퀴나스의 신학도 모두 견디지 못했어요.
경계를 넘어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던 시대였어요.
시제는 로마로의 소환 명령을 받았어요.
결국 그는 도망쳤어요.

신학 권력과 평생 맞섰던 그를 죽인 것은 추기경도 종교재판소도 아닌, 자기 비서였어요.
단죄를 피해 시제는 이탈리아 오르비에토로 도피했어요.
당시 교황청이 있던 도시예요.
하지만 1284년 무렵, 정신착란 상태에 빠진 자신의 비서가 그를 칼로 찔러 죽였어요.
한 시대를 뒤흔든 이성 논쟁의 한복판에 있던 사람이, 재판도 화형도 아닌 가장 가까운 사람의 폭력으로 생을 마쳤어요.
평생 거대한 적과 싸우다가 정작 옆자리 사람의 우발적 칼부림에 세상을 떠난 거예요.
그런데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시제가 죽고 몇십 년 뒤, 단테가 『신곡』을 썼어요.
14세기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가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여행하는 서사시예요.
천국편에서 단테는 시제를 태양의 천국에 배치했어요.
그 장면을 안내하는 인물은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였어요.
시제를 가장 강하게 비판했던 그 아퀴나스가, 시제의 이름을 천국에서 직접 불러주는 역할을 맡았어요.
비판자의 입으로 복권된 이단아.
시제 드 브라방은 그렇게 천국에 도착했어요.
그가 평생 강의 끝마다 "신앙이 옳다"고 두 번씩 선언했던 그 신앙이 약속한, 바로 그 천국으로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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