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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BC 155년 로마 광장에서 한 그리스 철학자가 이틀에 걸쳐 정의를 살리고 죽였어요.
그 철학자의 이름은 카르네아데스예요.
아테네가 로마 원로원에 보낸 외교 사절단의 단장이었는데, 그는 공개 강연으로 외교 임무를 시작했어요.
첫째 날, 카르네아데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빌려 정의를 옹호했어요.
"정의는 보편 도덕의 기반이며 사회를 지탱하는 원리"라는 주장이었죠.
로마 청중은 고개를 끄덕였어요.
둘째 날, 그는 같은 자리에 다시 올라섰어요.
그리고 전날과 정반대 논리를 폈어요.
"정의란 약자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환상이며, 자연은 원래 강자가 이긴다"는 주장이었죠.
문제는 이 강연도 빈틈이 없었다는 거예요.
청중은 어느 쪽이 카르네아데스의 진짜 생각인지 끝까지 알 수 없었어요.
TED 강연자가 첫날 '기후 위기 대응'으로 기립박수를 받고, 다음 날 똑같이 완벽한 논리로 '기후 대응의 위선'을 폭로해 또 기립박수를 받는 상황을 떠올려보세요.
그게 2200년 전 로마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에요.
카르네아데스는 어느 쪽도 진리로 주장하지 않았어요.
두 논증을 모두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메시지였어요.
"어떤 주장도 반박 불가능한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요.
로마에서 가장 엄격한 정치가가 카르네아데스의 강연을 듣고 처음 한 일은, 그를 즉시 로마에서 내보내라는 것이었어요.
그 정치가는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역사에서 '대 카토'로 불리는 인물이에요.
로마 공화정의 도덕 감찰관으로서 사치와 외래 문화를 극도로 경계했던 강경 보수파였죠.
카토는 카르네아데스의 강연이 로마 청년들의 윤리관을 무너뜨린다고 판단했어요.
"정의가 가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 법도, 군기도, 국가도 무너진다"는 논리였죠.
그래서 그는 원로원에 그리스 사절단의 즉시 추방을 요구했어요.
결국 카르네아데스 일행은 외교 일정을 마치지도 못하고 아테네로 돌려보내졌어요.
지중해 최강 군사 국가가 두려워한 건 그리스의 군대가 아니라 그리스 철학자 한 명의 두뇌였던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학부모 단체장이 "이 강사를 당장 학교에서 내보내라"고 의회에 청원해 진짜로 통과된 상황이에요.
그게 한 국가의 공식 외교 사절에게 일어난 일이에요.
로마는 카르네아데스를 논리로 이기지 못했어요.

플라톤 아카데미아의 수장이 평생 책 한 줄을 남기지 않은 건 게으름이 아니라 사상의 일관성이었어요.
플라톤 아카데미아는 고대 그리스 최고의 철학 학원이에요.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세운 이 기관에서 수백 년간 최고의 지성들이 모였는데, 카르네아데스는 그 수장(scholarch)이었죠.
그런데 그는 단 한 권의 책도, 단 한 편의 논문도 남기지 않았어요.
우리가 오늘 그의 사상을 아는 건 오직 제자 클레이토마코스 덕분이에요.
클레이토마코스는 스승의 강의를 받아 적어 약 400권 분량의 정리집을 남겼어요.
카르네아데스 입장에서는 일관된 선택이었어요.
모든 것을 의심하는 회의주의자가 자기 생각을 글로 고정해버리면, 그 글이 또 하나의 '의심받아야 할 고정관념'이 되거든요.
매 학기 강의실을 가득 채우는 강사가 책은 한 권도 안 내고, 대신 제자가 노트 400권을 출판한 상황이에요.
그런데 그 노트가 후대가 아는 스승의 전부가 됐어요.
하지만 그 결과 아이러니가 생겼어요.
모든 것을 의심하라 가르친 철학자의 사상을, 우리는 제자의 해석 필터를 거쳐서 접하게 됐어요.
카르네아데스의 회의주의는 카르네아데스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거예요.
카르네아데스는 "확실히 안다"를 포기한 자리에 "더 그럴듯하다"를 세웠어요.
당시 지중해 철학계를 지배하던 스토아 학파는 인간이 세계의 진리를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우주는 이성적으로 운영되며, 인간도 그 이성을 따라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 로마 귀족들의 큰 지지를 받던 철학 유파였죠.
카르네아데스는 그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어요.
그가 제시한 대안이 피타논(pithanon)이에요.
'그럴듯함', 또는 '개연성'을 뜻하는 개념이에요.
진리가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더 설득력 있어 보이는 쪽을 따라 행동할 수는 있다는 거예요.
기상청이 "내일 70% 비"라고 할 때 우리는 그 예보가 100% 맞는다고 믿지 않아요.
그래도 우산을 챙기잖아요.
카르네아데스는 그 사고방식을 2200년 전에 철학의 언어로 만들었어요.
모든 것을 의심한 회의주의자가,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실용적인 답을 내놓은 사람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그는 확실성을 포기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고 했어요.
BC 155년 로마에서 추방된 그 철학자가 남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해요.
당신이 오늘 '확실하다'고 믿는 것들 중, 카르네아데스가 이틀 만에 뒤집지 못할 것이 얼마나 될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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