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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소크라테스는 도망갈 수 있었어요.
감옥 문이 열려 있었고, 배도 준비돼 있었어요.
그는 거절했습니다.
BC 399년, 아테네 법정이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했어요.
죄목은 '청년을 타락시키고 신을 부정한 죄'였죠.
그런데 판결 직후, 그의 평생 친구이자 후원자인 크리톤이 움직였어요.
크리톤은 아테네에서 손꼽히는 부자였어요.
간수를 매수하고, 탈출 경로를 짜고, 항구에 배까지 대기시켜 놨죠.
오늘날로 치면, 무죄 판결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위조 여권과 비행기 표를 건넨 거예요.
소크라테스는 고개를 흔들었어요.
"도망치는 건 내가 살아온 법을 어기는 거야.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어."
그리고 스스로 독배를 받아 들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한 일은 단 하나, 질문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게 아테네에서는 사형감이었죠.
그는 매일 아고라에 나갔어요.
아고라는 아테네 시민들이 물건을 팔고 이야기를 나누던 광장이에요.
거기서 그는 정치인, 시인, 장군을 붙잡고 물었죠.
"용기란 무엇인가요? 정의란 무엇인가요?"
상대방은 자신 있게 답해요.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이 경우는요?" 하고 재차 물어요.
몇 번 주고받다 보면, 상대방의 답이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이 방식을 산파법이라고 불러요.
산파가 아이를 직접 낳아주는 게 아니라 곁에서 도와주듯, 상대가 스스로 답을 '낳도록' 질문으로 이끄는 방법이에요.
소크라테스는 가르친 게 아니라 질문만 했어요.
회사 회의에서 상사 발표가 끝났는데, 부하직원이 "근데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에요?"를 다섯 번 연속 묻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처음엔 참겠지만, 결국 화가 나겠죠.
아테네 권력자들이 딱 그 심정이었어요.
결국 소크라테스는 고발당했어요.
'청년을 타락시키고 신을 부정했다'는 죄목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다들 알고 있었죠.
500명의 시민 배심원단이 투표로 유죄를 결정했고, 사형이 선고됐어요.
소크라테스는 못생겼어요.
본인도 그걸 인정했고, 제자들은 그 외모를 두고 농담을 했죠.
들창코, 앞으로 튀어나온 눈, 배 나온 체격.
당대 아테네 사람들은 그를 사티로스에 빗댔어요.
사티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 생물로, 못생기고 제멋대로인 존재예요.
그런데 그 들창코 아저씨가 전쟁에서는 영웅이었어요.
소크라테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 중장보병으로 직접 전투에 참가했어요.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수십 년간 맞붙은, 고대 그리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에요.
포티다이아 전투와 델리온 전투에서 그는 직접 싸웠어요.
델리온에서 아테네군이 후퇴할 때, 소크라테스는 혼자 태연히 걸으며 동료들을 엄호했죠.
그 자리에서 그가 구해낸 사람 중 하나가 훗날 아테네 최고의 장군이 되는 알키비아데스였어요.
플라톤의 『향연』에는 알키비아데스가 직접 이 사실을 증언하는 장면이 남아 있어요.
동네에서 매일 보는 배 나온 아저씨가 사실은 특수부대 출신이고, 거기다 철학사에 이름을 남길 사상가인 셈이에요.
우리가 상상하는 '고매하고 우아한 철학자' 이미지와는 꽤 달랐습니다.
서양 철학의 시조라 불리는 사람이 정작 자기 이름으로 된 글을 한 줄도 남기지 않았어요.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모두 제자들의 기록이에요.
가장 유명한 제자인 플라톤이 대화록 형태로 남겼고, 또 다른 제자인 크세노폰도 기록을 남겼어요.
크세노폰은 군인 출신 역사가로, 플라톤보다 소크라테스를 덜 이상화해서 썼다는 평가를 받아요.
소크라테스가 글을 안 쓴 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었어요.
그는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글은 죽은 말이야. 진짜 사유는 살아 있는 대화에서만 태어나."
독자가 질문을 던져도 글은 대답을 못해요.
그게 그에게는 치명적인 한계였죠.
하지만 그 신념 때문에, 우리는 어디까지가 진짜 소크라테스의 생각이고 어디서부터가 플라톤의 각색인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됐어요.
가장 친한 친구의 SNS에 내 이야기가 끊임없이 올라오는데, 정작 나는 계정 하나도 없는 상황이에요.
친구가 악의가 없어도, 내 말이 원래대로 전달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죠.
학자들은 이 문제를 '소크라테스 문제'라고 불러요.
소크라테스는 2400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철학자 중 하나예요.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항상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만 들려요.
그 목소리가 얼마나 원본에 가까운지, 아직도 아무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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