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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데모크리토스는 아버지가 남긴 거대한 유산을 단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다 써버렸어요.
그리고 그 죄로 법정에 섰어요.
BC 5세기 후반, 데모크리토스는 압데라(현재 그리스 북부의 항구도시)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가 남긴 막대한 재산이 그에게 들어왔어요.
그런데 그는 그 돈 전부를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에티오피아를 떠돌며 배우는 데 써버렸어요.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오자 형제들이 바로 고소장을 냈어요.
죄목은 가산 탕진이었어요.
당시 압데라 법은 유산을 다 써버린 사람을 도시 밖으로 추방하고, 죽어도 압데라 땅에 묻을 수 없게 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부모 재산을 들고 수년간 세계 일주를 떠났다가 빈털터리로 돌아온 자식을 형제들이 법정에 세운 셈이에요.
법정에 선 데모크리토스는 여행 중 직접 쓴 우주론서 『대우주체계』(Megas Diakosmos)를 꺼내 큰 소리로 낭독하기 시작했어요.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한 저작이었어요.
압데라 시민들은 무죄를 선고했어요.
거기다 500탈란트의 상금과 동상까지 세워줬어요.
가족이 '미친 낭비'라 불렀던 그 방랑이, 사실 인류 최초의 원자론을 만든 학습 자금이었거든요.

데모크리토스는 실험 도구 한 점 없이 머릿속만으로 원자의 존재를 결론냈어요.
그가 스승 레우키포스(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의 그리스 자연철학자)와 함께 세운 가설은 딱 두 줄이에요.
"세상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입자와 텅 빈 공간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 입자를 그들은 'atomos(아토모스)'라고 불렀어요. 그리스어로 '쪼갤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이에요.
망원경도 현미경도 없던 BC 5세기예요.
그는 오직 추론만으로 이 결론에 도달했어요.
원자의 모양은 제각각이고, 서로 충돌하고 결합하고 분리되면서 우리가 보는 세상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어요.
레고 블록을 생각해보세요.
블록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조합 방식에 따라 성도 되고 우주선도 되잖아요.
데모크리토스는 세상 모든 것이 딱 그런 식으로 원자의 배열로 만들어진다고 봤어요.
이 가설이 과학으로 확인되기까지 2300년이 넘게 걸렸어요.
1808년 영국 화학자 존 돌턴이 근대 원자론을 제시했고, 1905년 아인슈타인이 브라운 운동 논문으로 원자의 실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했어요.
도구 하나 없이 머릿속에서만 그려낸 그림이 21세기 양자물리학의 출발선이었던 거예요.

플라톤은 라이벌 데모크리토스의 책 전부를 불에 던져 넣고 싶어 했어요.
3세기 철학사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자 음악사 작가인 아리스토크세노스의 기록을 인용해요.
플라톤이 데모크리토스의 저작을 몽땅 사 모아 한꺼번에 불태우려 했다는 거예요.
피타고라스학파 친구들이 "이미 너무 많이 퍼졌어. 태워봤자 소용없어"라고 말려서 결국 그만뒀어요.
더 결정적인 사실이 있어요.
플라톤은 자기가 쓴 모든 대화편에서 데모크리토스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어요.
동시대 가장 강력한 지적 라이벌이었는데도요.
이유는 두 사람의 철학이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에요.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영혼과 관념이 진짜 실재이고 물질은 그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에요.
하지만 데모크리토스는 "물질만이 실재이고, 영혼도 결국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봤어요.
한쪽이 옳으면 다른 쪽은 반드시 틀려요.
그러니 플라톤 입장에서는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 싫었던 거예요.
서양 철학의 양대 산맥이 서로를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거부했다는 게, 이 두 사람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달랐는지를 보여줘요.

데모크리토스가 쓴 70여 권 중 오늘날 온전히 남은 책은 단 한 권도 없어요.
그는 평생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며 웃었다고 해서 '웃는 철학자(Gelasinus)'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압데라 시민들은 그가 정말 미친 게 아닌가 의심해, 당대 최고의 의사 히포크라테스(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리스 의사, BC 460~370 무렵)에게 진단을 요청했어요.
히포크라테스는 데모크리토스를 직접 만나 긴 대화를 나눈 뒤 시민들에게 이렇게 전했어요.
"이 도시에서 정신이 가장 멀쩡한 사람은 그 한 사람이고, 그를 의심하는 당신들이야말로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데모크리토스는 90세를 넘겨 살았어요(어떤 기록은 109세라고도 해요).
죽기 전까지 70여 권의 저작을 남겼어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그를 아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의 글에 인용된 짧은 단편 문장들뿐이에요.
노벨상급 과학자가 평생 쓴 70편의 논문이 한 편도 남지 않고, 그를 비판한 동료들의 글 속에 슬쩍 박힌 한두 줄로만 후세가 기억하는 상황이에요.
그를 미쳤다고 불렀던 사람들의 말은 살아남았는데, 정작 그의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예요.
2400년 전 그가 웃으며 바라봤던 인간의 어리석음은, 어쩌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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