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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91년 자르브뤼켄 강의실에서 피터 싱어의 안경이 바닥에 떨어졌어요.
학생들이 외친 단어는 하나였어요. "싱어는 나가라."
그의 외조부는 반세기 전 나치 수용소에서 죽었거든요.
1989년부터 1991년 사이, 싱어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잡은 강연 일정은 줄줄이 시위로 취소됐어요.
시위의 표적은 그의 책 '실천윤리학'(1979)이었어요.
응용윤리학 입문서, 그러니까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가"를 실제 사례에 적용하는 철학 교재였는데, 거기에 중증 신생아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담겨 있었어요.
그런데 반전이 있어요.
"나치"라는 외침을 들은 당사자는 사실 나치 피해자 집안 후손이었거든요.
싱어의 외조부 다비드 오펜하임은 1943년 테레지엔슈타트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했어요.
테레지엔슈타트는 체코에 있던 나치 독일 운영 수용소예요.
싱어의 부모는 1939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마자 빈을 탈출한 유대인 망명자였어요.
일제강점기 피해자 집안 자손에게 "친일파"를 외치는 장면과 정확히 같은 거예요.
하지만 싱어는 강의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어요.
그는 항의하는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고 전해져요.
"내가 하려는 말을 먼저 들어봐."
싱어가 1972년에 던진 질문은 딱 한 줄이었어요.
"연못에 빠진 아이를 보고도 새 양복이 망가진다는 이유로 지나칠 수 있는가?"
그 한 줄이 윤리학 교과서를 통째로 다시 썼어요.
논문 제목은 '기근, 풍요, 그리고 도덕'이었어요.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직후 천만 명 이상이 굶주리던 벵골 난민 기근을 보고 쓴 글이에요.
그래서 논문 전체가 딱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됐어요. 우리는 왜 행동하지 않는가?
사고실험은 단순해요.
출근길 얕은 연못에 빠진 아이를 발견했다면, 새 양복이 망가져도 뛰어들 거잖아요.
그렇다면 멀리서 굶주리는 아이에게 같은 금액을 기부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국 "거리"는 도덕적 의무를 지워주지 않는다는 게 싱어의 결론이었어요.
너무 단순해 보이는 이 비유가 50년 뒤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의 창립 문서가 됐어요.
효율적 이타주의란 기부의 효과를 측정해 최대화하자는 운동으로, 오늘날 전 세계 수천 명의 기부 방식을 실질적으로 바꿔놓고 있어요.

현대 동물권 운동은 실험실 폭로나 농장 잠입 취재가 아니라 옥스퍼드 식당의 한 끼에서 시작됐어요.
1970년 대학원생 싱어는 캐나다 동료 리처드 키신과 점심을 먹었어요.
키신은 채식주의자였고, 싱어는 가벼운 호기심으로 물었어요. "왜 고기를 안 먹어?"
그 대화에서 받은 충격이 5년 뒤 '동물해방'(Animal Liberation, 1975)으로 결실을 맺었어요.
현대 동물권 운동의 창립 텍스트로 평가받는 책이에요.
이 책에서 싱어는 종차별주의(speciesism)라는 개념을 대중화했어요.
종차별주의란 단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존재를 차별하는 태도예요.
인종이나 성별로 차별하는 것이 부당하다면, 같은 고통을 느끼는 존재를 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것도 같은 논리적 결함을 가진다는 주장이에요.
친구가 식당에서 던진 한마디가 싱어의 철학 전체를 바꿔놓았고, 그 철학이 다시 수억 명의 식탁을 바꿔놓았어요.

어머니가 아들의 얼굴을 잊었을 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공리주의자는 자기 책과 다른 선택을 했어요.
1990년대 후반, 싱어의 어머니 코라는 알츠하이머로 아들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됐어요.
싱어는 자신의 사비로 24시간 간병을 제공했어요.
공리주의란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선택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철학이에요.
어머니처럼 자아와 기억을 거의 잃은 존재의 도덕적 지위는 싱어의 이론에서 복잡한 문제였어요.
그래서 비판자들은 즉시 물었어요. "당신 철학과 일관성이 없지 않아요?"
1999년 인터뷰에서 싱어는 정면으로 답했어요.
"아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 것 같아. 자기 어머니일 때는 다르거든."
평생 원칙을 가르친 사람이 자기 가족 앞에서 그 원칙과 다른 선택을 했고,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어요.
독일 강의실에서 나치라 불리고, 어머니 앞에서 자기 철학의 한계를 고백한 철학자.
그 어떤 반박보다 강한 건, 그의 질문들이 아직도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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