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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코페르니쿠스가 태어나기 200년 전, 한 프랑스 주교가 지구 자전을 완벽하게 논증하고는 이렇게 덧붙였어요.
"하지만 나는 이 논증을 믿지 않습니다."
니콜라 오렘은 1377년 『천체와 세계에 관하여』를 썼어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 즉 "지구는 가만히 있고 별들이 그 주위를 돈다"는 당시의 상식을 정면으로 해부한 책이에요.
그는 책 속에서 이렇게 물었어요. "별 전체가 도는 것과 지구 혼자 도는 것, 어느 쪽이 더 단순할까요?"
그리고 천천히, 치밀하게, 지구가 자전한다고 가정할 때 모든 현상이 더 깔끔하게 설명된다는 논증을 풀어놨어요.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에 세상을 뒤집은 바로 그 주장이에요.
하지만 책의 마지막 단락에서 오렘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과 신앙의 가르침이 그렇지 않다고 하므로, 나는 이 논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박사 논문에서 새 이론을 완벽하게 증명한 뒤 마지막 페이지에 "그래도 기존 이론이 옳다"고 쓰는 학자를 상상해보세요. 오렘이 바로 그랬어요.
그게 비겁함이었을까요, 아니면 계산된 전략이었을까요.
오렘은 교회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그 책은 그렇게 출판될 수 있었어요.
그 책이 없었다면 200년 뒤의 코페르니쿠스가 어디서 시작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에요.

여러분이 오늘 본 어떤 그래프도, 14세기 한 주교의 양피지 위에서 시작됐어요.
오렘은 『품질과 운동의 형상화에 관한 논고』라는 저작에서 놀라운 일을 했어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속도, 온도, 강도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가로축과 세로축 위에 막대와 곡선으로 그려낸 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엑셀로 클릭 몇 번이면 만드는 막대그래프와 속도-시간 그래프의 원형이에요.
문제는 타이밍이에요. 데카르트가 x축과 y축으로 이루어진 좌표계를 세상에 발표한 건 1637년이에요.
오렘의 양피지보다 약 300년이 늦어요.
그런데 교과서에는 데카르트의 이름만 남았어요.
오렘은 라틴어로 썼고, 인쇄기가 없던 시대라 책은 손으로 베껴 퍼졌어요.
아이디어가 있어도 확산되지 않으면 역사는 그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요.
데카르트는 인쇄기 덕분에 유럽 전역에 퍼졌고, 오렘은 수도원 서가에 머물렀어요.

점점 작아지는 숫자를 끝없이 더하면 얼마가 될까요.
오렘은 이 질문에 "무한"이라는 답을 600년 전에 내놨고, 그 증명은 지금도 미적분학 교재에 실려 있어요.
100원, 50원, 33원, 25원... 이렇게 점점 작아지는 동전을 끝없이 쌓으면 총액이 어딘가서 멈출 것 같죠.
직관적으로는 "작아지니까 한계가 있겠지"라고 느껴지거든요.
하지만 오렘의 답은 달랐어요. "아니요, 총액은 결국 무한히 커져요."
이걸 조화급수라고 해요.
1 + 1/2 + 1/3 + 1/4 + ...처럼 분모가 1씩 커지는 분수를 끝없이 더하는 수열이에요.
오렘은 이 항들을 그룹으로 묶어, 각 묶음의 합이 항상 1/2 이상임을 기하학적으로 보여줬어요.
묶음이 무한히 이어지니 합도 무한히 커진다는 논리예요.
이 증명은 오늘날 대학교 1학년 미적분학에서 "직관이 틀렸다"고 학생들이 처음 충격받는 바로 그 예제예요.
오렘은 그 충격을 700년 전에 혼자 맞았어요.

왕이 자기 스승에게 경제학 책을 청했을 때, 오렘은 왕의 돈벌이 수법을 "공공의 도둑질"이라고 기록해 내밀었어요.
1355년경 오렘은 훗날 샤를 5세가 될 왕세자의 개인교사였어요.
왕의 신뢰를 받는 최측근의 자리였어요.
그 왕이 화폐에 관한 책을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오렘이 쓴 책은 『화폐의 기원과 본성에 관하여』예요.
당시 왕들이 흔히 쓰던 수법이 있었어요. 금화나 은화를 녹여 귀금속 함량을 몰래 줄인 뒤 다시 주조해 차익을 챙기는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정부가 돈을 대량으로 찍어내서 물가가 오르고 내 지갑 속 돈의 가치가 줄어드는 인플레이션과 같아요.
오렘은 이 행위를 "공공의 도둑질"이라고 썼어요.
왕의 재정을 채우는 주요 수단을 왕이 신뢰하는 스승이 정면으로 비판한 거예요.
이 책은 훗날 화폐 경제학의 고전이 됐고, 700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사 연구자들이 인용해요.
오렘은 천문학, 수학, 경제학을 혼자 개척하고, 왕의 스승이 됐고, 주교로 생을 마쳤어요.
그런데 코페르니쿠스, 데카르트, 현대 경제학자들의 이름 뒤에 조용히 가려져 있어요.
역사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 가장 늦게 기억된다면, 우리가 지금 '원조'라고 부르는 것들은 얼마나 많이 더 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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