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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가장 원했던 직업은 황제가 아니었어요.
그는 철학 선생이 되고 싶었어요.
열일곱 살의 마르쿠스는 궁전 침대가 아니라 스승의 집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며 스토아 철학을 공부하던 소년이었어요.
스토아 철학이란 쉽게 말해 "네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쏟지 말라"는 생각이에요.
그 소년에게 어느 날 통보가 왔어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마르쿠스를 후계 구도에 올려놓은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의대를 꿈꾸던 학생이 갑자기 대기업 회장 자리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것과 같아요.
거절권은 없었어요.
마르쿠스는 양아버지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 곁에서 23년 동안 후계자로 훈련받았어요.
23년이에요.
오늘 태어난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기다린 셈이에요.
그리고 161년, 마침내 황제의 자리가 그에게 왔어요.
그가 정말로 원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았어요.
그 선택이, 2천 년 뒤 우리가 이 글을 읽게 만든 이유예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철학책은 출판을 위해 쓰인 적이 없어요.
그건 전쟁터에서 잠 못 드는 한 남자의 일기였어요.
《명상록》의 그리스어 원제는 'Ta eis heauton', 직역하면 "자기 자신에게"예요.
제목부터 명확해요.
독자는 처음부터 자기 자신 한 명뿐이었어요.
잠 안 오는 새벽에 메모장을 열어 아무에게도 보여줄 생각 없이 오늘 하루를 적는 것과 같아요.
그 메모가 2천 년 뒤 전 세계 서점에 꽂혀 있는 거예요.
이 일기 속에서 마르쿠스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적어요.
"너는 먼지에 불과하다. 재에 불과하다."
세계 최강 제국의 황제가, 자기 자신에게 반복해서 이 말을 쓴 거예요.
더 놀라운 건 이 일기가 쓰인 장소예요.
안토니누스 역병이 제국을 휩쓸던 시기, 게르만 전선의 군막 안이었어요.
안토니누스 역병은 천연두로 추정되는 전염병으로 500만에서 10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재앙이었어요.
황제는 매일 밤 그 군막 안에서 촛불 하나를 켜 놓고 혼자 글을 썼어요.
"오늘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 중 많은 이가 이미 죽었다."
아무도 읽지 않을 문장이었어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네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괴로워하지 말라"고 쓴 그 밤, 그의 군영 바깥에서는 게르만 기병이 로마 초소를 불태우고 있었어요.
마르쿠스는 재위 19년 중 거의 절반을 도나우 강 전선에서 보냈어요.
마르코만니 전쟁, 즉 게르만 부족 연합과 로마가 맞붙은 대규모 전쟁이에요.
역병과 전쟁이 동시에 제국을 덮쳤어요.
전비가 바닥을 보이자 마르쿠스는 황궁의 보물을 경매에 내놓았어요.
황제가 자기 물건을 팔아 전쟁 비용을 댄 거예요.
마감에 쫓기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자"고 메모장에 적어본 적 있다면, 그 기분을 조금은 알 수 있어요. 다만 마감 대신 전쟁이었을 뿐이에요.
"내면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문장 대부분이 살육의 현장에서 쓰였어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흔들리지 말라고 반복해서 쓴 사람은, 바로 그 통제 불능의 상황을 직접 수습해야 하는 당사자였어요.
그래서 그 말이 2천 년이 지나도 힘을 잃지 않는 거예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일기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자녀가 뜻대로 자라지 않더라도 괴로워하지 말라."
그의 아들은 황제가 된 뒤 콜로세움에서 직접 검투사로 뛰었어요.
콤모두스, 마르쿠스의 아들이에요.
그는 스스로를 헤라클레스의 환생이라 칭하며 사자 가죽을 두르고 경기장에 내려갔어요.
결국 측근에게 암살당했어요.
이것으로 5현제 시대가 끝났어요.
5현제 시대란 현명한 황제 다섯 명이 이어지며 로마가 가장 안정됐던 약 84년이에요.
마르쿠스는 그 마지막 황제였어요.
교육 전문가의 자녀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남에게는 좋은 조언을 하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바꾸지 못하는 역설이 있어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의 아들이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폭군 중 하나가 됐어요.
마르쿠스는 그걸 예감했을까요.
그가 일기에 남긴 말이 있어요.
"오늘 내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훗날 누가 기억이나 할까."
그 말을 쓴 사람이 지금도 읽히고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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