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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기원전 312년 어느 날, 지중해에서 가장 비싼 화물을 실은 배 한 척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배의 주인은 서점에 갔다.
제논은 키프로스 섬 키티온 출신의 페니키아 무역상이었다.
그가 잃은 것은 단순한 '염료'가 아니었다.
당시 티레 산 자주색 염료는 무게당 금보다 비싼 최고급 사치품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10년간 모은 돈을 전부 넣어둔 투자 계좌가 하룻밤 사이에 통째로 증발한 것과 같다.
빈손으로 아테네 항구에 내린 제논은 어쩌다 서점 안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을 집어 들었다.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고, 이 책은 스승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일종의 '철학자 관찰 일기'였다.
제논은 책을 읽다가 서점 주인에게 물었다.
"이런 사람은 지금 어디서 만날 수 있습니까?"
서점 주인은 마침 가게 앞을 지나가던 사람을 가리켰다.
키니코스학파 철학자 크라테스였다.
키니코스학파는 재산도 명예도 버리고 오직 덕만 좇아 산다는 사람들이었는데, 제논은 그날부터 그를 따라 철학을 시작했다.
화물선이 침몰하지 않았다면 제논은 그냥 성공한 무역상으로 살다 갔을 것이다.
역사상 가장 오래 살아남은 철학 학파 하나가, 난파 사고 한 건에서 시작된 셈이다.

2,300년 동안 수억 명이 입에 올린 철학 이름의 정체는, 건물 임대료를 못 낸 사람이 빌붙은 공공 복도였다.
약 20년간 아테네에서 여러 스승 밑에서 공부한 제논은 기원전 300년 무렵 자신의 학파를 열었다.
그런데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처럼 전용 부지와 건물을 가질 돈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 아고라, 즉 시장과 시민 광장이 합쳐진 광장의 북쪽 복도에서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곳의 이름이 스토아 포이킬레였다.
'채색된 주랑(柱廊)', 그러니까 전투 장면을 그린 벽화로 장식된 긴 지붕 달린 복도라는 뜻이었다.
누구나 지나다니는 공공장소였고, 제논의 제자들은 자연스럽게 '스토아에서 강의하는 사람들'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스토이시즘(Stoicism), 우리말로 스토아 철학이 된 이름이다.
플라톤의 학파명은 아카데모스라는 영웅의 이름을 딴 공원에서 왔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학파명은 아폴론 신전 옆 사유지에서 왔다.
둘 다 누군가가 소유한 장소였지만, 스토이시즘은 달랐다.
사무실 임대료를 낼 수 없어서 카페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 그 카페 이름으로 2,000년 넘게 역사에 기록된 것과 같다.
그 복도는 지금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이름은 살아남았다.

아테네 시의회는 투표권도 없는 외국인에게 도시의 열쇠와 금관을 바쳤다.
정작 그 사람은 금도 명예도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치는 철학자였다.
제논은 아테네 시민이 아니었다.
키프로스 출신 페니키아인, 법적으로는 메토이코스, 즉 거류 외국인이었다.
투표권은 물론 토지 소유권도 없었다.
그런데 그의 핵심 가르침은 이것이었다.
부, 명예, 건강 같은 것들은 아디아포라(adiaphora), 말하자면 '도덕적으로 상관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오직 덕(德)만이 진짜 좋은 것이고, 나머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아테네는 이 외국인에게 공식 금관을 수여하고, 도시 성벽의 열쇠를 건네고, 석비에 그의 공적을 새겼다.
전기 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석비 문구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그는 덕으로 젊은이들을 이끌었다."
"승진에 연연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던 사람이 올해의 사원으로 만장일치 선발된 것과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 아이러니가 오히려 제논의 말에 무게를 더했다.
명예를 탐하지 않았는데도 명예가 따라온 것이니까.

72세의 철학자가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
발가락이 부러졌을 뿐인데, 그는 바닥을 두드리며 비극 대사를 읊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강의였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노년의 제논은 학교를 나서다 넘어져 발가락이 부러졌다.
그는 손으로 땅바닥을 치며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니오베』에서 한 구절을 인용했다.
"간다, 왜 나를 부르느냐."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스스로 단식하여 죽었다고 전해진다.
수십 년간 제논이 가르친 것의 핵심은 '자연에 따라 사는 것(kata physin)'이었다.
외부 사건에 흔들리지 말고, 자연의 흐름을 읽고, 그에 맞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발가락 골절 하나를 자연이 보내는 신호로 읽고 스스로 퇴장한 것은, 그가 평생 가르친 것을 마지막 순간에 문자 그대로 실천한 셈이었다.
전 재산을 잃고 서점에 들어간 날부터, 바닥을 두드리며 비극 대사를 읊은 그날까지, 제논은 단 한 번도 자기 철학과 자기 삶을 분리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책도 건물도 아니었다.
당신은 철학을 그렇게 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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