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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01년 여름, 서른 살의 버트런드 러셀은 수학 전체를 논리 위에 올려놓으려다가 자기 손으로 바닥에 구멍을 뚫어버렸어요.
마을에 이발사가 한 명 있는데, 이 이발사에겐 딱 하나의 규칙이 있어요.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만 면도해준다."
그럼 이발사 본인은 어떻게 될까요?
스스로 면도하면, 규칙상 자기 자신을 면도하면 안 돼요.
하지 않으면, 규칙상 반드시 자기 자신을 면도해야 해요.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요.
이게 단순한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러셀의 역설은 수학의 세계에서 터졌어요.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모든 집합의 집합"이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지 묻는 순간, 논리가 무너졌어요.
문제는 이게 러셀만의 개인적인 발견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당시 독일 수학자 고틀로프 프레게는 수학의 모든 기초를 논리만으로 세우는 작업을 평생 해왔어요.
그리고 그 필생의 저작을 막 출간하려던 참이었어요.
러셀은 프레게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당신의 체계에 모순이 있습니다."
프레게는 책 출간 직전에 그 편지를 받았어요.
그의 답장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당신의 편지를 받은 것이 완성 직전의 내 작업에 가장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러셀은 타인을 무너뜨리려 한 게 아니었어요.
자기 스스로 논리의 토대를 세우려다가, 자기 손으로 그 토대의 균열을 발견한 거예요.

1+1=2를 증명하는 데 362페이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은 농담으로 받아들여요.
러셀에게 그것은 10년의 인생이었어요.
러셀은 수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와 함께 1910년부터 1913년에 걸쳐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를 출간했어요.
수학의 모든 원리를 논리만으로 증명하겠다는 3권짜리 저작이에요.
그 책 362페이지에 드디어 1+1=2가 등장해요.
러셀은 나중에 이 시기를 이렇게 회고했어요.
"이 작업으로 내 지적 능력이 영구적으로 손상되었다."
10년을 쏟아붓고 나서 남은 말이 이거예요.
그런데 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났어요.
1931년, 오스트리아 수학자 쿠르트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얘기예요. "어떤 논리 체계도 그 자체로 완전하면서 동시에 모순이 없을 수는 없다."
러셀이 10년을 바쳐 만들려 한 완전한 논리 체계는, 원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게 수학적으로 증명된 거예요.
10년 동안 완벽한 사전을 만들었는데, 누군가가 "어떤 사전도 모든 단어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버린 상황이에요.
그 사전이 362페이지를 써서 겨우 '가'를 설명하는 동안에요.

1940년 뉴욕의 한 판사는 버트런드 러셀이 수학을 가르칠 도덕적 자격이 없다고 판결했어요.
그가 쓴 책의 내용이 문제였지, 그의 수학 실력이 문제는 아니었어요.
사건의 순서는 이래요.
러셀은 뉴욕시립대학교 수학 및 논리학 교수로 임용이 결정됐어요.
그런데 한 판사가 그의 저작을 검토하고 "음란하고 호색적"이라는 판결을 내리며 임용을 취소시켰어요.
세계 최고 수준의 논리학자에게, 논리학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는 거였어요.
이게 처음이 아니었어요.
1916년에는 트리니티 칼리지 교수직에서 해임됐어요.
트리니티 칼리지는 케임브리지 대학 안의 칼리지로, 아이작 뉴턴이 공부했던 바로 그 곳이에요.
해임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1918년에는 아예 감옥에 갔어요.
반전 글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간 투옥됐어요.
오늘날로 치면, SNS에 올린 개인적 의견 때문에 입사 취소 통보를 받은 상황이에요.
다만 러셀의 경우엔 그게 케임브리지 교수직이었고, 판결을 내린 건 법원이었어요.

1961년, 89세의 버트런드 러셀은 런던 경찰에 체포되어 브릭스턴 교도소에 수감됐어요.
핵전쟁을 막겠다는 이유였어요.
11년 전인 1950년, 러셀은 노벨 문학상을 받았어요.
수학자이자 논리학자가 문학상을 받은 거예요.
수상 이유는 이랬어요. "인도주의적 이상과 사상의 자유를 옹호한 다양하고 의미 있는 저작."
수학 논문이 아니라, 글 때문이었어요.
1955년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함께 핵무기 폐기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어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이에요.
두 사람 모두 논리와 수학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했던 사람들이었고, 그 논리가 핵무기로 이어지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1961년의 시위로 감옥에 갔을 때, 러셀의 나이는 89세였어요.
그 나이에 감옥 바닥에 앉을 각오를 한 거예요.
논리로 세상을 설명하려 했던 사람이 결국 인정받은 건 논리가 아니라 글이었어요.
수학으로 불멸을 꿈꿨던 사람이 세상에 남긴 건, 핵전쟁을 막자는 편지 한 장이었어요.
그가 평생 찾으려 했던 완전한 토대는 끝내 수학 어디에도 없었는데, 어쩌면 89세의 감옥 바닥에 앉아 있는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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