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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카렌 울렌벡이 수학을 선택한 건 수학을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물리학 실험실이 여자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울렌벡은 뉴저지 교외에서 자란 평범한 소녀였다.
수학 신동 같은 이야기는 없다.
그녀가 원했던 건 물리학이었고, 자연의 원리를 파헤치는 과학자의 삶이었다.
그런데 1960년대 미국 대학 실험실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분위기가 달랐다.
여학생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는 신호는 말 대신 태도로 왔다.
결국 그녀는 실험실을 나와 순수수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뉴욕대 쿠랑 연구소(Courant Institute)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쿠랑 연구소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 연구소로, 응용수학과 순수수학 모두에서 독보적인 곳이다.
그러니까 20세기 수학의 지형을 바꿔놓은 사람은, 애초에 수학을 '차선책'으로 고른 사람이었던 셈이다.

1970년대 미국 대학에는 이상한 규칙이 있었다.
부부는 같은 대학에서 정규직을 가질 수 없다.
언뜻 공정해 보이는 이 규정 때문에 자리를 잃는 쪽은 언제나 아내였다.
이 규정을 반(反)족벌주의 규정(anti-nepotism rules)이라고 불렀다.
가족이 같은 조직 안에서 서로 특혜를 주고받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규칙은 중립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울렌벡의 남편은 생물물리학자였다.
두 사람이 함께 직장을 구하면, 더 경력이 짧거나 더 지명도가 낮은 쪽이 양보해야 했다.
그 쪽은 거의 언제나 아내였다.
울렌벡은 일리노이, 시카고를 거쳐 텍사스 오스틴까지 여러 대학을 전전했다.
오늘날로 치면 맞벌이 부부가 같은 도시에서 직장을 찾지 못해 몇 년째 주말부부로 사는 것과 비슷하다.
단, 그때는 그것이 공식 제도였다는 점이 다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그 긴 이동 기간 동안 울렌벡이 수학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리를 잡지 못한 시간이 그녀를 더 깊이 파고들게 했다.

비누방울을 불어본 적 있다면, 당신은 이미 카렌 울렌벡의 수학을 목격한 셈이다.
비누막은 항상 가장 작은 면적으로 퍼지려 한다.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에서 균형을 찾는 것, 이것을 극소곡면(minimal surfaces)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큰 방울에서 작은 방울이 툭 떨어져 나간다.
울렌벡은 바로 그 순간을 수식으로 잡아냈다.
큰 표면에서 작은 구(球)가 분리되어 나오는 현상을 수학에서는 버블링(bubbling)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이 현상이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했다.
그런데 이 발견이 뜻밖의 장소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물리학에는 양-밀스 방정식(Yang-Mills equations)이라는 게 있다.
우주의 근본적인 힘인 전자기력, 강한 핵력 같은 것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기술하는 방정식이다.
이 방정식을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다루려면, 울렌벡이 비누방울에서 발견한 구조가 필요했다.
가장 일상적인 현상의 수학이,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과 같은 뼈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수학자들은 이것을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보통은 이해하기 어려운 감각이지만, 비누방울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은 느껴질 것이다.

카렌 울렌벡은 단 한 번도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녀가 그 역할을 맡았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그녀가 수학에서 좋아한 것은 명확했다.
"수학의 매력은 혼자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강연도, 상도 그녀가 원해서 찾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2019년, 전화가 걸려왔다.
아벨상(Abel Prize)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아벨상은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최고 권위의 상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상의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가 되었다.
1902년 제정된 이후 백 년이 넘도록 여성 수상자가 없었다.
울렌벡이 처음이었다.
수상 이후 그녀가 선택한 일은 의외였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에서 여성 수학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공동 설립했다.
IAS는 아인슈타인이 말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초연구소 중 하나다.
평생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던 사람이, 결국 다음 세대가 혼자가 아닐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든 것이다.
선택하지 않은 역할이 가장 진정성 있는 형태로 돌아온 셈이다.
그녀는 지금도 인터뷰에서 묻는다, "왜 수학자 중에 여성이 이렇게 적을까요?"
그러면서 덧붙인다. "저도 그 대답을 아직 모르겠어요."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오래 그 질문을 붙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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