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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초인종이 울리면 문 앞에 낡은 가방을 든 노인이 서 있었어요.
그가 하는 인사는 언제나 같았어요.
"내 뇌는 열려 있다."
폴 에르되시(Paul Erdős)는 헝가리 출신의 수학자예요.
평생 집도 없고, 차도 없고, 고정된 교수직도 없었어요.
가방 하나와 반쯤 빈 여행 가방, 그게 그의 전 재산이었어요.
카페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프리랜서를 떠올려 보세요.
에르되시는 그 생활을 60년간, 전 세계 규모로 했어요.
그가 '사무실'로 쓴 곳은 동료 수학자의 집 거실이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건 바로 여기서 나와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이 사람이, 수학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과 함께 논문을 썼거든요.
공동 작업한 수학자가 무려 509명이고, 이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았어요.
그의 이름은 학술 문화 하나를 통째로 만들어냈어요.
에르되시 수(Erdős number)라는 게 있는데, 에르되시와 몇 단계를 거쳐 연결되는지를 나타내는 숫자예요.
에르되시와 직접 논문을 쓰면 1번, 그 사람과 함께 쓴 사람은 2번, 이런 식으로 수학계 전체가 그를 중심으로 연결돼요.
집 열쇠 하나 갖지 않은 사람이 만든 네트워크예요.
아무것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모든 곳에 있을 수 있었어요.

에르되시는 내기에서 이겼어요.
500달러를 받아 들고 그가 한 말은 이랬어요.
"당신이 수학을 한 달 늦췄다."
1971년, 에르되시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 이후로 그는 암페타민을 매일 복용하기 시작했어요.
암페타민은 각성 효과가 강한 약물로,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엄격히 통제하는 물질이에요.
친구인 론 그레이엄(Ron Graham)이 내기를 걸었어요.
그레이엄은 벨 연구소의 수학자이자 저글링 세계기록 보유자이기도 한, 꽤 독특한 인물이에요.
그는 에르되시에게 "한 달만 끊을 수 있으면 500달러를 주겠다"고 했어요.
에르되시는 해냈어요.
하지만 그 한 달 동안 빈 종이만 바라봤어요.
새로운 수학적 아이디어가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커피를 끊기로 했는데 한 달 내내 멍하게 앉아만 있었다면, 과연 내기에서 이긴 걸까요?
에르되시에게 그 한 달은 '수학의 공백'이었어요.
돈을 받은 쪽이 실제로는 진 거예요.

5만 달러짜리 상을 받은 날, 에르되시는 720달러만 주머니에 넣었어요.
나머지는 자기보다 수학을 더 오래 할 사람들에게 보냈어요.
1984년, 에르되시는 볼프상(Wolf Prize)을 받았어요.
볼프상은 이스라엘이 수여하는 수학 분야 최고 권위 상 중 하나예요.
상금 5만 달러 중 49,280달러를 장학 기금에 기부하고, 자신은 720달러만 챙겼어요.
월급을 받자마자 거의 전부 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정작 자기 집은 없다면요?
에르되시가 정확히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는 수학 난제에 현상금을 걸기도 했어요.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 직접 돈을 주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거예요.
어떤 문제는 100달러, 어떤 문제는 수천 달러였어요.
평생 남의 집에 얹혀살던 사람이, 사실은 수학계에서 가장 관대한 후원자였다는 역설이에요.
에르되시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현상금 약속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친구 론 그레이엄이 그 약속을 이어받아 계속 지급했거든요.

에르되시는 자신의 이상적인 죽음을 이렇게 말했어요.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뒤 죽는 것."
그는 거의 그 소원을 이루었어요.
1996년 9월 20일, 에르되시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수학 학회에 참석했어요.
83세였고, 그날도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어요.
그리고 심장마비로 쓰러졌어요.
그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분야는 조합론(combinatorics)이었어요.
조합론은 경우의 수를 다루는 수학 분야예요.
몇 가지 방법이 가능한지, 어떤 패턴이 반복되는지를 따지는 학문이에요.
많은 사람이 은퇴를 꿈꿔요.
일을 그만두고 쉬는 것, 그게 대부분에게 이상적인 마무리예요.
에르되시는 그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이에요.
그에게 수학은 삶이었고, 삶은 수학이었어요.
소유한 것은 낡은 가방 하나뿐이었지만, 원했던 것은 거의 다 가졌어요.
같이 생각할 사람, 풀어야 할 문제, 마지막 순간까지 열려 있는 뇌.
1,525편의 논문은 그렇게 만들어진 거예요.
더 많이 쥐려 한 게 아니라, 더 많이 내려놓으려 했던 사람이 남긴 숫자예요.
당신이 지금 꽉 쥐고 있는 것 중에, 사실은 내려놓아야 더 멀리 갈 수 있는 게 있지는 않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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