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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은 방 안에 없었다.
사진을 본 사람이 노벨상을 받았다.
1953년 1월, 킹스칼리지의 과학자 모리스 윌킨스는 동료의 X선 사진 한 장을 꺼내 방문객에게 보여줬다.
그 사진의 이름은 'Photo 51', 찍은 사람은 로절린드 프랭클린이었다.
프랭클린은 그 사실을 몰랐다.
오늘날로 치면, 팀원이 몇 달 동안 밤새워 만든 기획서를 누군가 복사기 위에 두고 자리를 비운 사이 옆 팀 사람이 슬쩍 읽어간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사진을 본 방문객, 25세의 제임스 왓슨은 그 순간을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보자마자 입이 벌어졌다. DNA가 나선형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거든."
Photo 51은 DNA에 X선을 쪼여 찍은 사진으로, 필름 위에 'X' 모양의 점들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 패턴이 나선 구조를 가리킨다는 걸 프랭클린은 알았고, 왓슨도 그 순간 알아챘다.
20세기 최대의 과학적 발견이 정식 협력이 아니라 본인 모르게 유출된 데이터에서 시작된 것이다.

새를 연구하던 청년과 박사학위가 없던 중년이 점심시간에 생명의 비밀을 풀었다.
왓슨의 원래 전공은 조류학, 그러니까 새를 연구하는 학문이었다.
그의 파트너 프랜시스 크릭은 37세였는데, 당시까지 박사학위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케임브리지의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만나 DNA 구조를 금속 막대와 철사로 모형을 직접 조립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갔다.
기존 생물학자들이 현미경과 화학 분석에 집중하는 동안, 이 두 사람은 "모형이 물리 법칙에 맞게 맞아떨어지면 구조가 맞는 거 아닌가?"라는 엉뚱한 접근을 했다.
전공자의 눈에는 황당했겠지만, 오히려 그게 먹혔다.
1953년 2월 28일, 크릭은 케임브리지의 단골 술집 이글 펍(Eagle Pub)에 들어서며 점심을 먹던 손님들에게 소리쳤다.
"우리가 생명의 비밀을 발견했습니다!"
학회 발표도, 논문 심사도 아니었다. 동네 술집 점심 시간이었다.

하버드대학교 출판부는 원고를 읽고 출판을 거부했다.
너무 엉터리여서가 아니라 너무 솔직해서였다.
1968년 왓슨은 DNA 발견 과정을 담은 자서전 『이중나선』(The Double Helix)을 쓰고 하버드 출판부에 넘겼다.
크릭과 윌킨스가 항의했고, 출판부는 손을 뗐다.
책에는 과학자들 사이의 질투, 경쟁, 정치적 계산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그중 가장 논란이 된 건 로절린드 프랭클린에 대한 서술이었다.
왓슨은 책에서 그녀를 외모로 먼저 평가하고, 고집스럽고 비협조적인 사람으로 묘사했다.
프랭클린은 1958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고, 반박할 기회조차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 덕분에 프랭클린의 존재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퍼진 건 왓슨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였다.
과학사 최고의 발견을 기록한 책이 동시에 과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의 책이 된 것이다.

DNA는 모든 인간이 99.9% 같다고 말한다.
그 사실을 밝힌 사람은 그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7년 왓슨은 한 인터뷰에서 인종과 지능의 차이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발언을 했다.
그가 40년간 이끌어온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는 세계 유전학 연구의 중심지였다.
연구소는 그를 소장직에서 해임했다.
2014년, 왓슨은 생존한 노벨상 수상자 중 최초로 자신의 메달을 경매에 내놓았다.
"과학계에서 고립되고 나니 수입이 없다"는 이유였다.
메달은 약 48억 원에 낙찰되었고, 낙찰자는 메달을 왓슨에게 돌려줬다.
2019년 그는 같은 발언을 텔레비전에서 반복했고, 연구소는 남아 있던 모든 명예직을 박탈했다.
유전자 속에서 인류의 공통점을 읽어낸 학문의 창시자가, 정작 그 공통점이 의미하는 바를 거부한 것이다.
그가 직접 해독한 코드가 그의 믿음을 반박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는, 지금도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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