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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프레데릭 생어가 생화학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의대에 갈 성적이 안 됐기 때문이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당연히 아들도 의학의 길을 걷길 바랐다.
하지만 생어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차선책으로 케임브리지에서 생화학을 택했다.
그는 훗날 스스로를 이렇게 회고했다. "학문적으로 특별히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 '차선책 인생'이 결국 화학 분야에서 역사상 유일하게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커리어가 되었다.
1지망에 떨어지고 어쩔 수 없이 간 길에서 인생이 뒤집힌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이게 내 길이 맞나' 싶었던 그 갈림길에서, 생어는 그냥 묵묵히 걸었다.
1940년대 과학자들에게 단백질은 뒤죽박죽 수프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 정해진 레시피가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걸 증명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생어뿐이었다.
생어가 고른 대상은 인슐린이었다.
인슐린은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으로, 당뇨병 치료에 쓰이는 분자다.
문제는 이 분자가 51개의 아미노산(단백질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으로 이루어진 '문장'인데, 그 문장을 읽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어는 단백질을 조각조각 잘라낸 뒤 각 파편의 끝 글자에 화학적 표지를 달았다.
오늘날로 치면 수천 조각으로 부서진 퍼즐인데 완성된 그림이 없고, 심지어 조각이 맞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혼자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12년이 걸렸다.
결국 1955년 생어는 인슐린 51개 아미노산의 정확한 순서를 완성했다.
단백질에는 고정된 배열이 있다. 그 당연해 보이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한 것이다.
1958년, 그는 첫 번째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재미있는 건 따로 있다.
아무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경쟁자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생어는 12년 동안 혼자였고, 그래서 12년 동안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첫 번째 노벨상은 천재성의 증거다.
두 번째 노벨상은 그 천재가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보통 노벨상을 받으면 연구자는 실험대에서 떠난다.
강연, 명예직, 위원회, 언론 인터뷰. 유명해진 대가로 현장을 포기하는 것이다.
생어는 달랐다. "실험실 벤치 앞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는 태도로 연구를 계속했다.
그가 다음으로 고른 대상은 DNA였다.
DNA는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담은 분자로, 네 가지 염기(A, T, G, C)가 길게 이어진 '문자열'이다.
단백질의 '글자'를 읽는 데 성공한 생어는 이번엔 훨씬 긴 이 문자열을 읽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1977년, 그는 디디옥시 사슬종결법을 개발했다.
쉽게 말하면 DNA 복사를 중간에 멈추는 화학적 '브레이크'를 이용해 어디서 끊겼는지 보고 서열을 읽어내는 방법이다.
이 기술은 나중에 '생어 시퀀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 결과 1980년, 두 번째 노벨 화학상.
같은 분야에서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사람은 역사상 생어가 유일하다.
그리고 이 기술은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핵심 도구가 되었다. 인간 DNA 30억 개의 글자 전부를 처음으로 읽어낸 그 국제 프로젝트 말이다.
영국 정부가 칼을 들어 그의 어깨에 얹으려 했을 때, 생어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에게는 '닥터'라는 호칭이면 충분했다.
영국의 기사 작위(Knight Bachelor)는 국가에 탁월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최고 영예 중 하나다.
받으면 이름 앞에 'Sir'가 붙는다. 오늘날로 치면 국민훈장 최고등급 같은 것인데, 그것도 모자라 호칭 자체가 바뀐다.
생어는 그걸 거절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닥터 생어로 충분해요. Sir라고 불리면 불편하거든요."
노벨상 두 개를 받은 사람이 칭호 하나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퀘이커 교도였다.
퀘이커는 평화주의를 중심에 두는 기독교 종파로, 신 앞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믿음이 핵심이다.
그래서 생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총을 들지 않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했고, 평생 그 신념대로 살았다.
은퇴 후 그는 케임브리지 자택 정원에서 나무를 가꾸며 지냈다.
자신을 소개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냥 실험실에서 이것저것 만지작거린 사람이에요(just a chap who messed about in his lab)."
인류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는 데 결정적 도구를 만든 사람이 자기 이름 앞에 칭호 하나 붙는 것조차 거북해했다.
직함이 곧 정체성인 시대에, 가장 큰 업적을 가진 사람이 가장 작은 호칭을 고집한 것이다.
그가 거절한 건 기사 작위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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