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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세포 안에는 수십억 년 전에 잡아먹힌 세균이 여전히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
그 세균의 이름은 미토콘드리아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 안에 수백 개씩 들어앉아 음식을 에너지로 바꿔주는 기관인데, 놀라운 건 이것이 원래 완전히 다른 생물이었다는 사실이다.
1967년, 린 마굴리스라는 생물학자가 이런 주장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원래 독립적으로 살던 세균이었는데, 더 큰 세포에 잡아먹힌 뒤 소화되지 않고 그냥 눌러살게 됐다는 것이다.
마치 회사에 인수합병 당한 팀이 오히려 그 회사의 핵심 부서가 된 것처럼.
'먹히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 진화의 시작이었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 생물학계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때까지 과학자들은 진화를 경쟁과 적자생존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마굴리스는 "잡아먹힌 쪽이 오히려 승리자"라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열다섯 번째 거절 편지를 받았을 때, 린 마굴리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포기하거나, 열여섯 번째 봉투를 준비하거나.
그녀는 봉투를 골랐다.
당시 마굴리스는 보스턴대학교의 무명 조교수였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 이혼한 뒤 두 아이를 혼자 키우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었다.
세이건은 나중에 《코스모스》로 대중에게 알려지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인데, 마굴리스는 그 유명인의 전처라는 꼬리표를 달고 학계를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더 기막힌 건 거절 사유였다.
열다섯 개 학술지 대부분이 "증거가 부족하다"고 한 게 아니었다.
"이런 발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논문 내용을 검토하기도 전에 전제 자체를 거부당한 것이다.
이력서를 열다섯 군데 넣었는데 내용은 읽지도 않고 "이 경력으론 안 됩니다"라고 돌려받은 것과 같다.
그렇게 열여섯 번째로 보낸 곳이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였고, 그 학술지가 마침내 논문을 실었다.
리처드 도킨스가 유전자의 이기심을 말할 때, 린 마굴리스는 세포의 합병을 말했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로, 진화란 결국 유전자가 자신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한 경쟁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생물학 주류의 목소리였다.
마굴리스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녀의 이론, 연속 내부공생설은 진화의 진짜 엔진이 경쟁이나 돌연변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생물 간의 합병과 공생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것보다 합쳐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 더 강한 전략"이라는 주장이다.
도킨스는 그녀의 일부 이론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학계에서는 "과학을 낭만화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증거가 쌓이기 시작했다.
미토콘드리아 안에서 세균의 것과 거의 동일한 자체 DNA가 발견된 것이다.
독립 생활을 하던 세균의 흔적이 우리 세포 안에 아직도 남아 있었다.
회의실에서 모두가 A안을 밀 때 혼자 B안을 주장했는데, 6개월 뒤 B안이 맞았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다만 마굴리스의 경우 6개월이 아니라 20년이 걸렸다.
오늘날 전 세계 생물학 교과서에는 린 마굴리스의 이론이 실려 있다.
하지만 그 교과서 어디에도 15통의 거절 편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1983년, 마굴리스는 미국 국립과학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그녀의 내부공생설은 교과서의 표준 내용이 됐다.
한때 "말도 안 된다"고 했던 그 학계가 이론을 받아들인 것이다.
201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가이아 이론의 과학적 기반을 다듬는 작업을 계속했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 전체가 하나의 자기 조절 시스템이라는 가설로, 제임스 러브록과 함께 발전시킨 개념이다.
끝까지 주류와 마찰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연구를 밀어붙인 것이다.
그런데 15통의 거절 편지를 보낸 학술지들은 어떻게 됐을까.
정정 기사를 냈다는 소식은 없다.
"그때 우리가 틀렸습니다"라고 말한 편집장도 없었다.
프로젝트를 반대하던 상사가 성과가 나자 "원래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그 회사 생활의 아이러니와 정확히 같다.
교과서는 바뀌었다.
다음 세대는 린 마굴리스의 이론을 당연한 사실로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 교과서를 읽은 아이들은 아마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근데 이걸 처음 발견한 사람은 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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