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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크릭이 서른일곱 살이 되던 해, 그의 이력서에는 박사학위 대신 해군 기뢰 설계 경력이 적혀 있었다.
프랜시스 크릭은 원래 물리학자였다. UCL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영국 해군성에서 기뢰의 폭발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적의 잠수함을 격침시키는 무기를 설계하던 손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생명의 구조를 풀기 시작한 것이다.
전향은 30대에 이루어졌다. 생물학 수업을 정식으로 들어본 적 없는 남자가 생물학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 앞에 앉았다. 박사학위는 1954년, 그의 나이 38세에야 나왔다.
30대에 업종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우리는 안다. "지금 시작하면 너무 늦은 거 아닌가?"라는 질문에 크릭은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답했다. 그냥 시작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늦은 시작 끝에 20세기 생물학 최대의 발견이 기다리고 있었다.
왓슨이 그 사진을 본 순간, 그의 입이 벌어졌다고 훗날 회고했다. 문제는 그 사진의 주인이 자리에 없었다는 것이다.
1952년, 킹스칼리지의 결정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Photo 51'이라는 사진을 찍었다. DNA에 X선을 쏘아서 얻은 회절 패턴 이미지였다. 쉽게 말하면, 빛을 분자에 통과시켜 그 그림자 모양으로 분자의 생김새를 역추적하는 방식이다. 그 사진에는 DNA가 나선 구조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프랭클린의 동료 모리스 윌킨스가 그녀의 동의 없이 이 사진을 왓슨에게 보여줬다. 왓슨과 크릭은 Photo 51을 바탕으로 이중나선 모델을 완성했다.
팀 프로젝트에서 핵심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발표 슬라이드에서 빠지고, 발표자가 상을 받는 상황을 생각하면 비슷하다. 1962년 왓슨, 크릭, 윌킨스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프랭클린은 1958년 37세에 난소암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노벨상은 사후에는 수여되지 않는다. 그녀의 기여는 수십 년간 역사 속에서 희미하게 처리되었다.
과학사 최대의 발견 뒤에는 동의 없이 공유된 데이터가 있었다. 이 사실은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해야 한다.
20세기 과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 공식적으로 처음 발표된 장소는 학술 대회장이 아니라 맥주 냄새 나는 동네 술집이었다.
1953년 2월 28일, 크릭은 케임브리지 대학 근처의 이글 펍(The Eagle)에서 점심을 먹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술집 안의 모든 사람에게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가 생명의 비밀을 발견했어요!"
이글 펍은 지금도 케임브리지에서 영업 중이다. 가게 안에는 그날을 기념하는 작은 패널이 붙어 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왓슨과 크릭의 논문이 과학 저널 『네이처』에 실렸다. 분량은 단 한 페이지, 약 900단어였다. 오늘날 대학원생의 학기말 리포트보다 짧은 글이 인류가 자기 자신의 설계도를 처음 읽어낸 순간을 담고 있었다.
몇 달간 매달린 프로젝트가 드디어 완성되던 날, 회의실이 아니라 퇴근 후 치킨집에서 동료에게 "됐다!"라고 외쳤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을 것이다. 크릭의 그날이 딱 그랬다. 다만 그가 외친 내용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크릭은 생명의 암호를 해독한 뒤, 더 어려운 질문으로 갈아탔다. "우리는 왜 무언가를 느끼는가?" 그는 이 질문에 28년을 바쳤고, 답을 찾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1976년, 크릭은 캘리포니아 라호이아에 있는 솔크 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솔크 연구소는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조너스 솔크가 세운 생물학 연구소다. 그곳에서 그는 남은 인생을 의식(consciousness)의 신경과학적 기반을 연구하는 데 쏟았다.
1994년에는 『놀라운 가설(The Astonishing Hypothesis)』을 펴냈다. 책의 핵심 주장은 하나였다. "당신의 기쁨과 슬픔, 기억과 야망, 자아감, 자유의지는 사실 뉴런 다발과 그 연결에 불과하다." 영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뇌 세포들의 복잡한 활동이 곧 '나'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또한 1981년에 흥미로운 가설 하나를 진지하게 제안했다. 지구의 생명이 외계 문명에 의해 의도적으로 씨 뿌려졌다는 '의도된 범종설(Directed Panspermia)'이었다. DNA처럼 정교한 구조가 우연히 지구에서 탄생했다는 게 너무 믿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주류 과학계가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그 질문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2004년, 88세의 크릭은 의식의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DNA라는 첫 번째 거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버린 사람이 두 번째 수수께끼 앞에서는 28년을 바쳐도 답에 닿지 못했다. 생명의 설계도는 읽었지만, 그 설계도가 만들어낸 '내가 무언가를 느낀다'는 경험은 끝내 해독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서재 책장에는 DNA 이중나선 모형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었을 것이다. 그 앞에는 신경망 도식이 펼쳐진 책상이 있었을 것이고. 한 문제를 풀었더니 더 깊은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게 과학의, 아니 생각하는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어떤 수수께끼 앞에 앉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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