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너희 집에 있는 백과사전을 떠올려봐. DNA는 그것보다 훨씬 두꺼운 설명서야. A, T, G, C 네 글자로만 쓰인 30억 개 분량의 거대한 매뉴얼이지. 이 설명서대로 우리 몸이 만들어져. 그런데 만약 여기에 오타가 하나라도 있으면? 예를 들어, 6번 염색체 11번째 위치에 있어야 할 'A'가 'T'로 바뀌면 겸상적혈구 빈혈증이라는 병에 걸려. 적혈구가 초승달 모양으로 찌그러지면서 평생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게 돼. 2000년대 초반까지 과학자들은 이 오타를 발견할 순 있었지만, 고칠 방법이 없었어. 30억 개 중에서 딱 그 한 글자만 찾아서 바꾸는 게 불가능했거든. 마치 서울 전체에서 특정 벽돌 하나만 골라내야 하는 것처럼 말이야.

2011년, 프랑스 출신 미생물학자 에마뉘엘 샤르팡티에는 작은 박테리아를 연구하다가 놀라운 걸 발견했어. 박테리아가 자기를 공격하는 바이러스의 DNA를 기억했다가, 다시 침입하면 정확히 그 부분만 잘라내는 '분자 가위'를 갖고 있었던 거야. 이름은 CRISPR-Cas9. 샤르팡티에는 미국 생화학자 제니퍼 다우드나와 함께 이 가위를 인간 DNA 편집에 쓸 수 있게 개조했어. 원리는 이래. 먼저 고치고 싶은 DNA 부분의 주소를 가이드 RNA에 입력해. 그럼 Cas9이라는 가위가 그 주소로 찾아가서 딱 그 부분만 싹둑 자르지. 그리고 세포가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에서 올바른 염기서열로 바꿔치기하는 거야. 컴퓨터에서 Ctrl+F로 찾아서 수정하는 것처럼!

CRISPR-Cas9의 등장으로 유전병 치료의 문이 활짝 열렸어. 겸상적혈구 빈혈증, 근이영양증, 헌팅턴병... 이런 병들은 전부 DNA 한두 군데의 오타 때문에 생기거든. 이제 그 오타를 직접 고칠 수 있게 된 거야. 실험실에서는 눈이 먼 쥐의 시력을 되찾게 하고, 암세포만 골라서 파괴하는 데도 성공했어. 2020년 샤르팡티에와 다우드나는 노벨 화학상을 받았지.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지금 전 세계 병원에서 실제 환자들을 치료하는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라는 거야. 과거에는 '불치병'이라고 포기했던 질환들이 이제 '치료 가능한 병'으로 바뀌고 있어. 암흑 속에서 빛 한 줄기가 들어온 것처럼, 환자들에게 희망이 생긴 거지.

2023년 12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어. 미국 FDA가 CRISPR 기반 유전자 치료제를 세계 최초로 승인한 거야. 겸상적혈구병으로 평생 고통받던 환자들이 실제로 완치되기 시작했어. 환자의 혈액 줄기세포를 뽑아서 CRISPR로 오타를 고친 뒤 다시 몸에 넣어주는 방식이야. 단 한 번의 치료로 평생 약 먹고 병원 다니던 사람들이 정상 생활을 하게 됐지. 이건 SF 영화가 아니라 2024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야. 너도 미래에 유전자 검사를 받으면, '이 부분에 암 위험이 있으니 미리 고치시겠어요?'라는 질문을 들을 수도 있어. 윤리적 논쟁은 여전히 뜨겁지만, 분명한 건 하나야. 샤르팡티에가 발견한 그 작은 박테리아의 가위가 인류의 미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것. 생명의 코드를 고칠 수 있는 시대, 이미 시작됐어.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