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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는 거의 다 똑같은 설계도를 품고 있어요. 눈을 만드는 세포든 간을 만드는 세포든, 안에 든 유전자 묶음은 사실상 같습니다. 그런데 결과물은 완전히 다르죠. 같은 악보를 받고도 어떤 연주자는 조용히 쉬고 어떤 연주자는 큰 소리를 내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누가 어느 유전자를 켜고 끄는 걸까요? 이 질문을 평생 파고든 사람이 바로 게리 러브컨이에요.

유전자가 일하는 과정을 부엌에 빗대 볼게요. DNA는 두꺼운 요리책이에요. 너무 두꺼워서 통째로 들고 다닐 수 없으니, 필요한 페이지만 베껴 적은 쪽지를 만듭니다. 이 쪽지가 바로 RNA예요. 요리사는 책이 아니라 이 쪽지를 보고 실제 요리, 그러니까 단백질을 만듭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유전자를 켜고 끄는 일이 책에서 쪽지를 베끼는 순간에만 일어난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러브컨이 본 건 달랐습니다. 쪽지가 이미 다 만들어진 다음에 끼어들어 요리를 막는 장치가 있었던 거예요. 이걸 어려운 말로 전사 후 조절이라고 불러요.

러브컨이 들여다본 건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아주 작은 벌레였어요. 길이가 1밀리미터, 거의 머리카락 굵기만 합니다. 이 벌레가 연구에 인기인 이유가 있어요. 몸을 이루는 세포 수가 거의 정해져 있어서, 알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어떤 세포가 언제 생기는지 순서대로 따라갈 수 있거든요. 발생 과정이 어긋난 돌연변이 벌레를 보면, 어떤 유전자가 시간표를 쥐고 있는지 단서가 나옵니다.

동료 연구자 빅터 앰브로스가 먼저 이상한 걸 찾았어요. lin-4라 불리는 유전자였는데, 보통 유전자와 달리 단백질을 전혀 만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주 짧은 RNA 조각만 내놓았어요. 길이가 고작 스물두 개 정도의 부품으로 이어진, 평범한 쪽지의 토막 수준이었죠. 쓸모없어 보이는 이 부스러기가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어요.

러브컨은 그 짧은 조각의 짝을 찾아냈어요. lin-14라는 다른 유전자가 만든 쪽지의 꼬리 부분에, lin-4의 짧은 조각이 마치 자석처럼 딱 들러붙더라는 거예요. 퍼즐 두 조각이 맞물리듯이요. 짧은 조각이 달라붙으면 요리사는 그 쪽지를 더는 읽지 못합니다. 단백질 만들기가 멈추는 거죠. 1993년, 두 사람은 단백질이 아니라 작은 RNA가 다른 유전자를 직접 끄는 장면을 처음으로 보여 줬어요. 이 작은 조각에 마이크로RNA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처음엔 다들 시큰둥했어요. 그냥 벌레 한 종에서나 일어나는 별난 사건이려니 했죠. 그런데 2000년, 러브컨의 연구팀이 let-7이라는 두 번째 마이크로RNA를 찾고 보니, 이 조각이 파리에도 물고기에도 사람에게도 거의 똑같이 들어 있었어요. 별난 예외가 아니라 생명 전체가 공유하는 기본 장치였던 거예요. 지금은 사람 몸에서만 1000개가 넘는 마이크로RNA가 발견됐고, 이들이 수많은 유전자의 소리 크기를 조절한다고 봅니다.

이 작은 조절 장치가 고장 나면 세포가 시간표를 잃어버려요. 켜져야 할 유전자가 안 켜지거나, 꺼져야 할 게 계속 켜져 있으면 암 같은 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이크로RNA는 병을 일찍 알아채는 신호로도, 새 치료법의 표적으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어요. 러브컨은 이 공로로 202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게리 러브컨은 1밀리미터짜리 벌레 속에서, 단백질도 안 만드는 짧은 RNA 조각 하나가 다른 유전자를 조용히 끄는 장면을 봤어요. 유전자를 켜고 끄는 일이 쪽지를 베끼는 순간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다 만들어진 쪽지에 작은 조각이 달라붙어 막는 방식으로도 일어난다는 뜻이었죠. 처음엔 벌레만의 별난 일 같았지만, 사람을 포함한 거의 모든 동물이 같은 장치를 쓰고 있었습니다. 작아서 오래 무시당한 조각 하나가 생명을 조율하는 스위치였다는 것, 그게 2024년 노벨상이 기린 이야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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