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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나누는 담장, 그 위로 두 도시가 마주 보고 있어요.
미국 쪽 노갈리스와 멕시코 쪽 노갈리스.
이름은 같고, 거리는 불과 몇 미터인데 삶은 완전히 달라요.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당연히 학교에 가고 수도와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지만, 다른 쪽에서는 빈곤과 범죄가 일상이에요.
같은 기후, 같은 지리, 같은 민족 배경인데도 말이죠.
이런 차이는 노갈리스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전 세계를 보면 국경을 사이에 둔 두 나라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아요.
지리도, 기후도, 천연자원도 이 차이를 설명해 주지 못해요.
그렇다면 무엇이 이렇게 다른 운명을 만들었을까?
이 질문은 경제학자들을 수백 년 동안 괴롭혀 온 숙제예요.
"더운 나라는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말,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또는 "자원이 부족해서", "문화가 문제라서"라는 설명도 익숙할 거예요.
이런 말들은 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금방 깨집니다.
싱가포르는 적도 바로 아래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예요.
아르헨티나는 비옥한 땅과 온대 기후를 가졌지만, 수십 년째 경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일본은 천연자원이 거의 없지만 경제 대국이고요.
문화와 가난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한국과 북한은 같은 문화를 공유하지만, 완전히 다른 경제 운명을 살고 있어요.
자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오히려 더 가난한 경우도 많죠.
전문가들은 이걸 '자원의 저주'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이런 설명들이 모두 '무언가 빠뜨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지리, 기후, 문화, 자원.
이 네 가지는 가난을 설명하는 듯 보이지만, 반례 하나에 와르르 무너집니다.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드시나요?
맞아요.
경제학자들도 오래전부터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MIT 교수 사이먼 존슨과 동료들 다론 아제몰루, 제임스 로빈슨은 이런 고민에 빠졌어요.
"좋은 제도가 나라를 부유하게 만드는 걸까요, 아니면 부유한 나라라서 좋은 제도를 만들 수 있었던 걸까요?
" 둘 다 말이 되는 것 같았죠.
그런데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할 순 없잖아요.
그들이 발견한 건 1500년대 유럽의 식민지 확장이었어요.
역사가 이미 거대한 실험을 해준 셈이었죠.
연구진은 '정착자 사망률'에 주목했어요.
유럽인이 살기 좋은 지역(북미, 호주)에서는 정착해 재산권과 법치를 도입했죠.
하지만 사망률이 높은 지역(아프리카, 남미)에서는 정착을 못 했어요.
말라리아 같은 열대병 때문이었어요.
그곳에서는 자원만 약탈하고 현지인을 착취하는 제도를 남겼답니다.
그 결과 '운명의 역전'이 일어났어요.
1500년에 부유했던 잉카나 마야 지역은 오늘날 가난해졌죠.
반대로 가난했던 북미나 호주가 가장 부유해졌어요.
지리나 문화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에요.
이 발견으로 연구진은 '제도가 성장을 만든다'는 증거를 얻었답니다.
그럼 좋은 제도와 나쁜 제도는 어떻게 다를까요?

북미 식민지에는 재산권 보호와 선거권이 있었습니다.
중남미 식민지에는 은광의 강제 노동과 총독의 독단적 권력이 있었죠.
500년 전의 이 첫 선택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이 차이를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로 나눕니다.
포용적 제도는 많은 사람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도록 문을 열어줍니다.
재산권이 보호되고,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며, 권력이 분산되죠.
반대로 착취적 제도는 소수 엘리트에게만 이익이 집중되도록 설계됩니다.
이 차이는 개인의 인센티브를 완전히 바꿉니다.
내 땅이 보호된다는 믿음이 있으면 더 투자하고, 새로운 기술도 시도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빼앗길 게 뻔하다면 아무도 애쓰지 않겠죠.
하나는 '키우는'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빼앗는' 시스템입니다.
북미와 중남미는 500년 전 서로 다른 제도를 선택했고, 그 선택이 오늘날 국민소득 차이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가난한 나라들은 좋은 제도를 그냥 도입하지 않을까요?

착취적인 제도가 나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많은 나라에서 이런 제도가 수백 년째 계속될까요?
답은 아이러니합니다.
바로 그 제도가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엘리트가 개혁을 막기 때문입니다.
독재자가 선거를 도입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세요.
선거가 국민에게는 더 나은 제도지만, 독재자에게는 권력을 잃을 위험입니다.
사회 전체의 이익과 엘리트 개인의 이익이 정반대로 가는 겁니다.
이렇게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이익이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를 정치경제학이라고 부릅니다.
한번 착취적 제도로 굳어진 사회는 다른 길로 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를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이라고 합니다.
과거의 선택이 미래의 선택지를 제약하기 때문에, 오늘날 가난한 나라들은 단순히 '좋은 제도를 고르지 않은 나라'가 아니라, 역사의 덫에 갇힌 나라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이 덫에서 벗어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할까요?
1966년, 보츠와나가 영국에서 독립할 때만 해도 이 나라의 미래는 어둡기만 했어요.
국토 대부분은 사막이었고, 철도도, 항구도, 공장도 없었죠.
주변국들은 내전과 독재로 얼룩져 있었고, 보츠와나 역시 '또 하나의 실패한 아프리카 국가'가 될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어요.
그런데 보츠와나는 그 예측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보츠와나가 다르게 간 길은 단 하나였어요.
독립 직후, 지도자들은 재산권을 보호하고, 법치를 존중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함부로 행사하지 않기로 약속했죠.
주변국 지도자들이 국영기업을 자신의 금고로 돌릴 때,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 수익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제도를 만들었어요.
이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부족장들의 권력을 견제해 온 '크고틀라(Kgotla)'라는 마을 회의 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죠.
한국도 비슷한 길을 걸었어요.
1950년대 한국은 전쟁 폐허에 북한보다 가난했지만, 토지개혁으로 기존 엘리트의 기반을 허물고 누구나 노력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포용적 제도를 키워나갔죠.
보츠와나와 한국의 교훈은 분명해요.
제도는 역사에 묶여 있지만, 사람이 바꾸기로 결정하면 바뀔 수 있습니다.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예요.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죠.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할까요.
지리 때문일까요, 문화 때문일까요.
사이먼 존슨과 연구자들은 다른 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제도입니다.
권력을 누가 쥐고, 어떻게 행사하는지가 한 사회의 경제적 운명을 결정한다는 거예요.
식민 시절 선택된 제도는 오늘날까지 이어졌습니다.
포용적 제도는 혁신과 성장을, 착취적 제도는 빈곤과 정체를 낳았죠.
그리고 그 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기존 질서에서 이득을 보는 엘리트가 변화를 막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보츠와나와 한국이 증명했듯, 제도는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선택하기로 마음먹으면 역사의 무게를 조금씩 옮길 수 있어요.
결국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지리도 유전자도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규칙 아래 살지, 그리고 그 규칙을 바꿀 용기가 있느냐입니다.
그게 제도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이에요.
우리는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어요.
사이먼 존슨의 연구가 찾아낸 답은 '제도'입니다.
재산권이 보호되는 포용적 제도는 혁신과 투자를 이끌고, 엘리트에게 부가 집중되는 착취적 제도는 성장을 가로막습니다.
이 제도의 차이는 식민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럽인이 정착한 지역엔 좋은 제도가, 약탈만 한 지역엔 나쁜 제도가 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졌어요.
나쁜 제도가 지속되는 이유는 그 제도가 엘리트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도는 바꿀 수 있어요.
보츠와나와 한국이 증명했죠.
물론 제도만이 전부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지리나 국제 정세 같은 다른 요인도 중요해요.
그럼에도 핵심은 분명합니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를 가르는 것은 국민의 능력이나 천연자원이 아니라, 사회가 작동하는 게임의 규칙의 차이이며, 그 규칙은 우리가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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