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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벨의 가장 큰 발견은 답을 찾은 날이 아니라 답이 없다는 쪽으로 돌아선 날 시작됐어요.
당시 수학자들이 붙잡고 있던 문제는 5차 방정식이었어요.
방정식은 미지수가 들어간 저울 같아요.
양쪽 무게가 같아지게 만드는 값을 찾는 게임이죠.
2차 방정식에는 공식이 있어요.
학교에서 외우는 그 공식 말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3차, 4차도 풀었으니 5차도 언젠가 공식이 나오리라 믿었어요.
여기서 일반해란 모든 문제에 통하는 만능 열쇠예요.
자물쇠 하나를 여는 기술이 아니라, 그 종류의 자물쇠라면 전부 열 수 있는 열쇠죠.
250년 동안 수학자들이 찾던 것이 바로 그 열쇠였어요.
학생이던 닐스 헨리크 아벨도 처음에는 그 열쇠를 찾았다고 생각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대학생이 노트북 앞에서 “드디어 난제 풀었다” 하고 제출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린 상황이에요.
그런데 그는 곧 멈춰요.
수학자 데겐의 조언을 들은 뒤였어요.
데겐은 아벨의 풀이를 그냥 칭찬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단단히 살펴보게 만들었죠.
그리고 아벨은 자기 풀이가 무너지는 걸 봐요.
천재 이야기라면 보통 “남들이 못 본 답을 봤다”로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아벨의 진짜 출발점은 “내 답이 틀렸네”였어요.
그래서 질문이 바뀌어요.
“5차 방정식의 공식을 어떻게 찾지?”가 아니에요.
“애초에 그런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이었어요.
이건 문을 여는 방법을 찾다가, 그 문에 손잡이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과 같아요.
당연히 사람들은 쉽게 믿지 못하죠.
하지만 아벨은 바로 그 불가능 쪽으로 걸어 들어가요.

250년 동안 수학자들이 찾던 공식은 여섯 쪽짜리 논문에서 사라졌어요.
1824년, 아벨은 5차 방정식의 불가능성을 증명한 논문을 냈어요.
불가능성 증명이란 “내가 아직 못 푼다”가 아니에요.
“누가 와도 이 방식의 만능 공식은 만들 수 없다”를 보이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 거대한 결론은 두꺼운 책으로 나오지 않았어요.
아벨은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인쇄비를 아끼려고 논문을 아주 짧게 줄여 자비로 찍어냈어요.
생각해보면 이상하죠.
수학사의 큰 문 하나를 닫는 증명이 겨우 몇 장짜리 압축 파일처럼 세상에 나왔어요.
문제는 압축이 너무 심했다는 거예요.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친절한 설명서가 아니었어요.
딱 필요한 뼈대만 남은 문서였죠.
그래서 당시에는 제대로 읽히지 못해요.
아벨이 한 일은 “공식을 못 찾았다”가 아니었어요.
그는 5차 방정식 전체를 향해 말한 셈이에요.
그 길로는 못 간다고요.
이 반전이 중요해요.
수학은 늘 답을 찾는 학문처럼 보이죠.
하지만 아벨은 답이 없다는 사실도 발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어요.
그의 여섯 쪽은 너무 작아서 묻혔어요.
하지만 그 안에는 250년짜리 기대를 접는 힘이 들어 있었어요.
종이의 무게와 발견의 무게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좀 어이없을 정도예요.

아벨은 파리에서 거절당한 것이 아니라 더 잔인하게도 잊혔어요.
1826년, 아벨은 파리 학술원에 중요한 원고를 제출해요.
파리 학술원은 당시 유럽에서 손꼽히는 지식의 심장 같은 곳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세계 최고 연구기관의 심사대에 인생 논문을 올린 셈이죠.
아벨에게 파리는 인정의 문이었어요.
가난한 젊은 수학자가 자기 이름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자리였죠.
그런데 그 문은 쾅 닫힌 것도 아니었어요.
더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원고가 검토 과정에서 사실상 방치돼요.
입사 포트폴리오가 심사위원 책상 서랍에 들어간 뒤 몇 년 동안 잠들어버린 상황과 비슷해요.
거절은 아프지만 방향이라도 알려줘요.
잊힘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요.
아벨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성과가 어디서 멈췄는지도 제대로 알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 원고는 훗날에야 다시 발견돼요.
그리고 1841년에 출판돼요.
아벨이 세상을 떠난 지 한참 뒤의 일이에요.
여기서 역사는 너무 차갑게 움직여요.
천재가 있어서 세상이 바로 알아본 게 아니에요.
천재가 원고를 냈고, 최고 권위의 책상 어딘가에서 그 원고가 사라졌어요.
그래서 아벨 이야기는 더 사람을 붙잡아요.
그는 박수 속에서 걸어간 사람이 아니었어요.
자기 증명이 제대로 읽히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계속 앞으로 간 사람이었어요.

아벨에게 가장 늦게 도착한 것은 명성이 아니라 생활을 버틸 자리였어요.
아벨은 결핵을 앓았어요.
결핵은 당시 많은 사람의 숨을 천천히 빼앗던 병이에요.
치료가 오늘처럼 가능하지 않던 시대였죠.
그는 1829년 4월 6일, 스물여섯 살로 세상을 떠나요.
스물여섯이면 아직 인생의 첫 장도 다 넘기지 못한 나이예요.
그런데 그의 수학은 이미 한 시대의 질문을 바꿔놓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틀 뒤, 편지가 도착해요.
베를린 교수직을 알리는 편지였어요.
평생 기다렸을 안정된 자리가, 그가 더 이상 받을 수 없을 때 도착한 거예요.
이 장면은 너무 잔인해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예요.
합격 통보가 장례 뒤에 도착한 셈이에요.
살아 있는 동안 필요했던 것은 명예로운 추모가 아니라 월세와 밥과 책을 살 자리였을 텐데요.
아벨의 삶을 보면 천재라는 말이 갑자기 가벼워져요.
천재는 번쩍이는 머리만 뜻하지 않아요.
틀린 풀이를 버릴 수 있는 용기, 아무도 잘 읽지 않는 증명을 끝까지 밀고 가는 고집도 포함해요.
그가 닫은 것은 단지 5차 방정식의 공식 하나가 아니었어요.
“모든 문제에는 우리가 원하는 모양의 답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어요.
그래서 아벨은 답을 준 사람이 아니라, 질문의 바닥을 바꾼 사람으로 남아요.
수학자들이 찾던 만능 열쇠는 없었어요.
하지만 그 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스물여섯 살 청년은 있었어요.
그 편지가 이틀만 더 일찍 왔다면, 아벨은 자기 이름이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있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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