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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매클로린은 수학을 배우던 청년이 아니라, 열아홉 살에 수학을 가르치던 교수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대학교 1학년 나이에 전공 수업을 듣는 게 아니에요.
강의실 맨 앞에 서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학생들에게 “이 문제는 이렇게 풀립니다”라고 설명하는 쪽에 가까워요.
그는 글래스고 대학을 거쳤어요.
글래스고 대학은 스코틀랜드의 오래된 대학으로, 당시에도 똑똑한 젊은이들이 학문을 배우러 가던 곳이에요.
그리고 1717년, 그는 애버딘 매리셜 칼리지의 수학 교수가 됩니다.
매리셜 칼리지는 애버딘에 있던 대학 기관이에요.
그러니까 매클로린은 청춘을 준비 기간으로만 쓰지 않았어요.
더 놀라운 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는 젊은 나이에 왕립학회 회원도 됩니다.
왕립학회는 당시 영국에서 “이 사람은 진짜 학자다”라고 인정받는 가장 강한 무대 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이렇게 출발부터 눈에 띄던 사람인데, 지금 많은 학생은 그를 공식 하나로 기억해요.
매클로린 급수라는 이름으로요.
그래서 그의 삶은 조금 억울하게 압축돼 있어요.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수학 교과서 한 줄로 접힌 셈이니까요.
하지만 그 한 줄을 펼치면, 열아홉 살 교수가 강단에 서 있던 장면부터 나와요.

매클로린의 이름은 공식에 붙었지만, 그의 젊은 명성은 뉴턴의 이름 옆에서 커졌어요.
뉴턴은 사과 이야기로만 유명한 사람이 아니에요.
물체가 왜 떨어지고, 행성이 왜 움직이는지 수학으로 설명하려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설명의 핵심 도구 중 하나가 미적분이에요.
미적분은 움직이는 것을 다루는 계산법이에요.
멈춰 있는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영상처럼 계속 변하는 장면을 숫자로 붙잡는 방법에 가까워요.
1725년, 매클로린은 뉴턴의 추천을 받아 에든버러 대학 수학 교수직으로 옮겨요.
에든버러 대학은 스코틀랜드 지식 세계의 중요한 중심지였어요.
여기서 그는 뉴턴의 미적분과 자연철학을 퍼뜨립니다.
자연철학은 오늘날의 물리학에 가까운 말이에요.
자연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관찰과 수학으로 설명하려는 공부였죠.
매클로린은 단순히 뉴턴을 따라 한 사람이 아니에요.
창업자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냈다면, 매클로린은 그 아이디어를 제품 설명서와 교육 과정으로 바꾼 사람에 가까워요.
그래서 사람들은 뉴턴의 생각을 더 넓게 배우고, 더 제대로 다룰 수 있었어요.
여기서 반전이 생겨요.
우리가 “매클로린 급수”라고 외우는 그 이름 뒤에는, 사실 뉴턴의 학문을 정리하고 방어한 해설자가 있어요.
공식의 주인이기 전에, 그는 거대한 생각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든 번역자였던 거예요.

매클로린 급수는 시험지의 공식이 되기 전에, 미적분을 지키는 논증의 일부였어요.
이미 잘 쓰는 앱이 있다고 해볼게요.
사람들은 편하게 쓰고 있어요.
그런데 누군가 말합니다. “이거 작동은 하는데, 구조가 불안한 거 아니야?”
그때 개발자가 단순 사용 설명서를 다시 쓰는 데서 멈추지 않죠.
앱 속 구조가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설계도를 꺼내야 해요.
매클로린이 한 일이 바로 그런 쪽에 가까워요.
1742년, 그는 『유율론』을 펴냅니다.
『유율론』은 뉴턴식 미적분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두 권짜리 책이에요.
여기서 유율은 뉴턴이 변화율을 설명할 때 쓰던 방식과 연결됩니다.
당시 미적분은 강력했지만, 의심도 받았어요.
계산은 맞는 것 같은데, 그 근거가 정말 단단하냐는 질문이 따라붙었거든요.
그래서 매클로린은 “그냥 되니까 쓰자”에서 멈추지 않았어요.
그는 함수값을 원점 주변의 여러 항으로 펼치는 방식을 다뤘어요.
함수는 숫자를 넣으면 다른 숫자를 내주는 규칙이에요.
자판기에 돈을 넣으면 음료가 나오는 것처럼, 입력을 넣으면 결과가 나옵니다.
급수는 숫자나 식을 여러 조각으로 길게 더하는 방식이에요.
케이크를 한 입에 삼키는 게 아니라, 얇게 잘라 하나씩 맛보는 것과 비슷해요.
매클로린 급수는 어떤 함수를 원점 근처에서 이런 조각들의 합으로 보는 방법이에요.
그래서 이 공식은 단순한 계산 꼼수가 아니에요.
“미적분은 눈속임이 아니다”라고 보여주려는 방어 작업 속에서 나온 결과예요.
학생들이 외우는 한 줄 뒤에는, 공격받는 학문을 지키려는 긴 밤의 책상이 있어요.

그의 마지막 큰 계산은 함수가 아니라, 에든버러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였어요.
1745년, 재커바이트 봉기가 에든버러로 다가옵니다.
재커바이트 봉기는 스튜어트 왕가를 다시 왕위에 올리려던 세력이 일으킨 움직임이에요.
쉽게 말해, 왕이 누가 되어야 하는지를 놓고 벌어진 위험한 정치적 충돌이었죠.
여기서 매클로린은 책상 뒤에만 있지 않았어요.
그는 참호와 바리케이드 준비에 적극 참여합니다.
참호는 적의 공격을 막으려고 땅을 파 만든 방어선이고, 바리케이드는 길을 막는 임시 장벽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연구실에 있던 교수가 전쟁 상황에서 캠퍼스 문을 막기 위해 책상과 의자를 끌어내는 장면이에요.
그 교수의 머릿속에는 공식 대신 길목, 벽, 사람들의 이동 경로가 들어찼을 거예요.
종이 위의 선을 그리던 사람이 도시의 방어선을 그린 겁니다.
하지만 도시는 결국 항복합니다.
그리고 매클로린은 재커바이트 정부에 굴복하지 않아요.
그는 잉글랜드의 요크로 피합니다.
요크는 잉글랜드 북부의 오래된 도시예요.
에든버러를 떠난다는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어요.
자기가 가르치던 도시, 지키려던 도시에서 몸을 빼내야 하는 선택이었죠.
그 무리한 활동과 피난은 그의 건강을 나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매클로린의 마지막 장면은 더 묘합니다.
가장 추상적인 계산으로 기억되는 수학자가, 끝내 아주 구체적인 돌길과 목재 장벽 앞에 서 있었으니까요.
매클로린 급수를 다시 보면 조금 달라져요.
그건 교과서의 차가운 공식만은 아니에요.
열아홉 살 교수, 뉴턴의 해설자, 미적분의 방어자, 그리고 도시의 방어선을 그리던 한 사람이 접혀 있는 이름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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