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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는 기억을 잃으려고 수술대에 오른 것이 아니었어요.
헨리 몰레이슨은 멈추지 않는 발작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발작은 몸 안에서 갑자기 전기가 폭주하는 일에 가까워요.
스위치를 꺼도 방 안의 불이 계속 깜빡이는 상황을 떠올리면 됩니다.
1953년, 스물일곱 살의 몰레이슨은 큰 결정을 해요.
심한 간질 발작을 줄이기 위해 뇌수술을 받습니다.
간질은 뇌의 전기 신호가 갑자기 어긋나 몸과 의식이 흔들리는 병이에요.
수술은 그의 양쪽 관자엽 안쪽 일부를 건드렸어요.
관자엽은 귀 옆 깊은 곳에 있는 뇌 부위입니다.
그 안쪽에는 해마라는 작은 구조가 있어요.
해마는 바다 생물 해마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에요.
역할은 더 놀랍습니다.
그곳은 오늘 겪은 일을 오래 보관할 기억으로 넘겨주는 접수창구에 가까워요.
그런데 이 수술은 발작을 줄이려던 시도였지, 삶을 지우려던 선택이 아니었어요.
통증을 없애려고 병원에 갔는데, 돌아와 보니 일기장의 오늘 칸이 계속 백지로 바뀌는 상황이 된 거예요.
몸은 살아 돌아왔지만, 새 하루를 붙잡는 힘이 사라졌습니다.

몰레이슨에게 오늘은 계속 시작되었지만 거의 남지 않았어요.
그는 어린 시절 기억까지 전부 잃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수술 전의 오래된 기억 일부는 남아 있었죠.
짧은 대화도 잠깐은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저장 버튼이었어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분명히 봤는데, 갤러리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몰레이슨의 뇌에서는 새 사건이 그렇게 사라졌어요.
방금 만난 연구자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낯선 사람이 됐어요.
같은 얼굴이 다시 들어와도 그는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했죠.
상대에게는 두 번째 만남인데, 몰레이슨에게는 늘 첫 번째 만남이었어요.
이건 단순히 “기억력이 나빠졌다”가 아니에요.
시험 전날 단어를 못 외우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의 삶에서는 방금 전이 오래 머물 방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의 하루는 이상한 모양이 됩니다.
아침이 한 번 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몇 분마다 작은 아침이 다시 열려요.
그런데 그 아침들은 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라고 느끼는 데에는 이어지는 줄이 필요해요.
어제의 나, 오늘 아침의 나, 방금 말한 나가 한 사람으로 묶여야 하죠.
몰레이슨은 그 줄의 한가운데가 끊어진 채로 살았습니다.
그는 연습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손은 어제보다 정확했어요.
여기서 이야기는 더 이상해집니다.
몰레이슨은 새로 배운 일을 기억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떤 일은 몸이 배워 갔습니다.
브렌다 밀너는 신경심리학자였어요.
신경심리학자는 뇌가 다치거나 달라졌을 때 생각, 기억, 행동이 어떻게 바뀌는지 살피는 연구자입니다.
그녀는 몰레이슨에게 거울을 보며 별 모양을 따라 그리게 했어요.
이 과제는 보기보다 어렵습니다.
손은 종이를 따라 움직이지만, 눈은 거울 속 뒤집힌 손을 봐야 해요.
마치 내비게이션이 좌우를 반대로 말하는데 운전해야 하는 느낌이에요.
몰레이슨은 반복할수록 더 잘했어요.
선은 점점 덜 흔들렸고, 실수도 줄어들었죠.
그런데 그는 자신이 그 과제를 연습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과학자들의 질문이 바뀝니다.
기억은 한 덩어리 창고가 아니었던 거예요.
이름과 사건을 담는 기억이 있고, 몸이 익히는 기억이 따로 있었던 겁니다.
자전거를 떠올리면 쉬워요.
언제 처음 탔는지는 흐릿할 수 있어요.
하지만 페달 위에 발을 올리면 몸은 균형 잡는 법을 압니다.
몰레이슨의 머리는 “나는 이걸 해본 적 없어”라고 말하는 쪽에 가까웠어요.
하지만 손은 조용히 반박했습니다.
“아니, 우리는 이 길을 지나온 적이 있어.”
그 순간 몰레이슨은 비극의 주인공만이 아니게 됩니다.
그는 인간 기억의 구조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문이 됐어요.
문은 부서졌지만, 그 틈으로 안쪽 방들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몰레이슨의 마지막 기억은 희미했지만, 그의 뇌는 과학의 기록으로 남았어요.
2008년, 몰레이슨은 세상을 떠납니다.
평생 새 기억을 붙잡기 어려웠던 사람의 삶이 끝난 거예요.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뇌는 연구를 위해 보존됐어요.
그리고 2009년, 아주 얇은 절편 2401개로 나뉩니다.
절편은 빵을 아주 얇게 자른 조각처럼, 조직을 얇게 나눈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 조각들은 디지털 3D 지도로 다시 이어졌어요.
3D 지도는 평면 사진이 아니라, 안쪽 구조를 입체로 살펴볼 수 있게 만든 기록입니다.
마치 무너진 건물을 층별 사진으로 다시 세워 보는 작업과 비슷해요.
여기서 반전이 가장 조용하게 옵니다.
새 기억을 오래 저장하지 못한 사람의 뇌가, 기억 연구에서 가장 오래 남는 기록이 된 거예요.
망가진 저장장치가 오히려 저장 원리를 알려준 셈입니다.
몰레이슨은 자기 이름이 과학사에 남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오래 붙잡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그 사실이 더 마음을 붙듭니다.
그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를 통해 기억을 이해하게 됐으니까요.
기억은 머릿속 서랍 하나가 아니었어요.
사진첩도 있고, 몸의 습관도 있고, 방금 들은 말이 잠깐 머무는 작은 메모지도 있습니다.
몰레이슨의 삶은 그 방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이상한 감각이 남아요.
우리는 매일 아무렇지 않게 어제를 들고 오늘로 옵니다.
그 당연한 일이 사실은 얼마나 정교한 기적인 걸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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