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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디오판토스는 전기보다 먼저 방정식으로 기억된 수학자였어요.
보통 사람은 이름, 직업, 업적을 남기죠.
그런데 디오판토스는 달랐습니다.
그의 묘비는 이렇게 말하는 퍼즐처럼 전해져요.
“그는 생애의 6분의 1을 소년으로 살았다.
그 뒤 12분의 1이 지나 수염이 났다.
다시 7분의 1이 지나 결혼했다.
결혼 5년 뒤 아들이 태어났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선집』에 전해져요.
『그리스 선집』은 고대 그리스어로 된 짧은 시와 글을 모아 놓은 책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오래된 문장 조각들이 모인 거대한 스크랩북에 가깝습니다.
묘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아들은 아버지 수명의 절반만 살았고, 아들이 죽은 뒤 디오판토스는 4년을 더 살았다고 해요.
그래서 묘비는 독자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자, 그럼 디오판토스는 몇 살까지 살았을까?”
이력서 대신 퍼즐 한 장을 내미는 사람을 떠올리면 됩니다.
“내 나이는 말 안 해.
대신 이 조건들을 풀어 봐.”
이게 대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에게 붙은 가장 유명한 기억이에요.
대수학은 모르는 수를 글자나 기호로 놓고 관계를 푸는 계산법이에요.
마트 영수증에서 사과값을 모르면 빈칸으로 두고 전체 금액에서 거꾸로 찾는 것과 비슷하죠.
디오판토스의 삶 자체가 바로 그런 빈칸이 된 셈입니다.
그래서 이 묘비 이야기는 이상하게 오래 남아요.
한 사람의 생애가 연도표가 아니라 문제로 변했으니까요.
죽은 뒤에도 그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나를 알고 싶어?
그럼 먼저 계산해 봐.”

디오판토스의 혁신은 어려운 답보다 짧게 쓰는 법에서 먼저 시작됐어요.
그가 활동한 곳으로 알려진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지중해 세계의 지식 도시였어요.
이집트에 있는 항구 도시였고, 여러 언어와 책과 학자들이 모이던 곳이죠.
그곳에서 디오판토스는 긴 설명을 조금씩 접어 넣는 법을 생각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산술』이에요.
이 책은 고대 그리스어로 쓰인 방정식 문제집입니다.
교과서라기보다 “이런 조건이면 어떤 수를 찾을 수 있을까?”를 계속 던지는 문제 모음에 가까워요.
여기서 놀라운 점이 나옵니다.
디오판토스에게는 우리가 아는 x도 y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는 미지수와 거듭제곱을 줄여 쓰는 표기법을 썼습니다.
미지수는 아직 모르는 수예요.
친구가 “내가 생각한 숫자에 3을 더하면 10이야”라고 말할 때, 그 생각한 숫자가 미지수죠.
거듭제곱은 같은 수를 여러 번 곱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3을 두 번 곱하면 9가 되는 식이에요.
디오판토스 이전의 계산은 말이 길었어요.
“어떤 수의 제곱에 무엇을 더하고, 거기서 또 무엇을 빼면…”처럼 이어졌죠.
이건 장문의 문자를 매번 풀어서 쓰는 일과 비슷합니다.
디오판토스는 그 긴 문장을 메모 앱의 약어처럼 줄였어요.
“이건 자주 나오니까 짧게 쓰자.”
그 순간 계산은 말의 숲에서 빠져나와 기호의 길로 들어섭니다.
물론 오늘날의 대수학처럼 깔끔하지는 않았어요.
아직 완전한 기호 체계는 아니었죠.
그래도 방향은 분명했습니다.
말로만 붙잡던 계산을 눈앞의 표식으로 압축하기.
그 작은 압축이 수학의 속도를 바꿉니다.
긴 주소를 링크 하나로 줄이면 공유가 쉬워지는 것처럼요.

디오판토스가 붙든 문제는 답을 맞히는 시험이 아니라 답이 존재하는지 묻는 추적이었어요.
학교 수학은 대개 정답 칸이 하나죠.
빈칸에 알맞은 값을 넣으면 끝납니다.
하지만 디오판토스의 문제는 그렇게 얌전하지 않았어요.
그는 정수나 유리수로 풀리는 방정식을 많이 다뤘습니다.
정수는 1, 2, 3처럼 딱 떨어지는 수와 0, 그리고 음수까지 포함하는 수예요.
유리수는 분수로 나타낼 수 있는 수입니다.
피자 한 판을 둘로 나누면 2분의 1이 되는 식이죠.
훗날 이런 문제들은 디오판토스 방정식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디오판토스 방정식은 보통 정수 해를 찾는 방정식을 말해요.
쉽게 말하면 “소수점 말고 딱 떨어지는 숫자로 이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나?”를 묻는 문제입니다.
이건 비밀번호 하나를 맞히는 일이 아니에요.
규칙에 맞는 모든 비밀번호를 뒤지는 일에 가깝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가 나옵니다.
어떤 경우에는 여러 개가 나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없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디오판토스의 질문은 묘하게 현대적입니다.
“답이 뭐야?”에서 멈추지 않거든요.
“답이 있기는 해?”
“있다면 어떤 모양으로 있어?”
“몇 개나 있어?”
이런 질문은 수학을 계산 기술에서 탐정 일로 바꿉니다.
숫자는 범인이 아니라 흔적이 돼요.
조건은 사건 현장처럼 남습니다.
디오판토스는 그 흔적을 따라갔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아무 숫자나 대입하는 일이 아니었어요.
조건을 만족하는 수가 숨어 있는 좁은 길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문제를 읽으면 이상한 긴장감이 생깁니다.
답은 책 어딘가에 이미 적혀 있는 것이 아니에요.
수들이 허락하는 가능성 안에서 간신히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디오판토스의 책은 저자가 죽은 뒤에도 가장 긴 질문을 계속 낳았어요.
이 책은 고대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천 년도 훌쩍 넘은 뒤, 17세기 프랑스 수학자 페르마가 『산술』 라틴어판을 읽습니다.
라틴어판은 고대 그리스어 책을 유럽 학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옮긴 판본이에요.
페르마는 직업 수학자라기보다 법률 일을 하면서 수학에 빠져든 사람이었어요.
그는 디오판토스의 문제를 읽다가 책 여백에 메모를 남깁니다.
오래된 중고책 낙서 하나가 세계 수학자들의 숙제가 되는 순간이에요.
그 메모는 훗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불립니다.
이 정리는 어떤 거듭제곱 방정식에는 자연수 해가 없다는 주장으로 유명해요.
자연수는 1, 2, 3처럼 물건을 셀 때 쓰는 수입니다.
페르마는 여백에 대담한 말을 남겼다고 전해져요.
“나는 참으로 놀라운 증명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 여백은 그것을 담기에는 너무 좁다.”
이 문장은 수학 역사에서 거의 도발처럼 남습니다.
“풀었는데, 여기에는 못 써.”
친구가 단톡방에 “정답 아는데 배터리 없어서 나중에 말할게”라고 남긴 뒤 사라진 느낌이죠.
그런데 문제는 페르마가 정말 그 증명을 갖고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에요.
그의 짧은 메모는 수학자들을 계속 붙잡았습니다.
디오판토스의 책 한 권이 근대 수학의 가장 유명한 난제로 이어진 겁니다.
여기서 디오판토스가 더 흥미로워집니다.
그는 자기 책이 그렇게 오래 살아남을 줄 몰랐을 거예요.
그는 문제를 만들었고, 페르마는 그 문제의 여백에 또 다른 문제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산술』은 단순한 옛 문제집이 아니게 됩니다.
한 시대의 계산 노트가 다음 시대의 폭탄이 됩니다.
그리고 그 폭탄은 아주 오래도록 터지지 않았습니다.
디오판토스는 생애도 문제로 남겼고, 책도 문제를 낳았어요.
그의 이름이 아직 살아 있는 이유는 천재라서만은 아닙니다.
그가 남긴 질문들이 아직도 사람을 멈춰 세우기 때문이에요.
지하철 문이 열렸는데도, 머릿속에서는 이런 말이 계속 맴돌지 않나요.
“그럼 대체 어떤 수가 가능한 거지?”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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