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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확률론의 첫 장면은 성당도 대학도 아니라, 돈이 오가는 주사위판이었다.
지롤라모 카르다노는 의사였고 수학자였어요.
그런데 동시에 도박판을 떠나지 못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로 치면 병원 진료를 마친 사람이 밤마다 카드 테이블에 앉아 “이번 판은 내가 유리한가?”를 따지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가 남긴 『운수 놀이에 관한 책』은 주사위와 카드 게임에서 이길 가능성을 따져 본 책이에요.
말하자면 “운이 좋았다”로 넘기지 않고, “이 판은 애초에 몇 대 몇 싸움이야?”라고 계산한 기록입니다.
어? 진짜 확률론이 이런 데서 시작됐나 싶죠.
친구와 보드게임을 하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잠깐, 이 규칙이면 네가 계속 유리한 거 아니야?”
카르다노가 한 일이 바로 그 질문을 종이에 붙잡아 둔 겁니다.
그에게 주사위는 장난감이 아니었어요.
돈이 걸린 작은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운을 믿는 대신, 운이 반복될 때 생기는 모양을 보려고 했습니다.
“신이 내 편인가?”가 아니라 “이 눈이 나올 길이 몇 개인가?”로 질문을 바꾼 거예요.
그 순간 도박판은 조금 달라집니다.
술 냄새 나는 테이블 위에서 수학이 고개를 듭니다.
그래서 카르다노는 이상한 인물입니다.
도박에 빠진 사람인데, 바로 그 약점 때문에 우연을 연구하게 됩니다.
확률론은 처음부터 깨끗한 지식이 아니라, 잃은 돈과 다시 따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태어난 셈입니다.

카르다노의 가장 유명한 책은 수학사의 승리이자 한 약속의 파기였다.
여기서 등장하는 타르탈리아는 삼차방정식 풀이법을 알고 있던 이탈리아 수학자예요.
삼차방정식은 숫자를 세 번 곱한 항이 들어가는 방정식입니다.
쉽게 말하면 중학교 방정식보다 훨씬 더 꼬인 자물쇠라고 보면 됩니다.
당시 이런 풀이법은 그냥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먹고사는 무기였어요.
수학자들은 공개 시험처럼 문제를 내고 풀며 명성을 얻었습니다.
타르탈리아는 카르다노에게 그 비밀 공식을 알려 줍니다.
대신 조건이 붙습니다.
“이건 절대 책에 쓰지 마.”
그런데 카르다노는 『위대한 술법』에 그 해법을 실어요.
이 책은 1545년에 나온 대수학 책입니다.
대수학은 숫자 대신 문자를 써서 숨은 값을 찾는 계산법이에요.
이 장면은 오늘날로 치면 동료가 “아직 발표하지 않은 아이디어야” 하고 보여 준 내용을, 누군가 자기 논문에 넣어 버린 일과 닮았습니다.
결과물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 대단함 한가운데에는 불편한 질문이 박혀 있습니다.
카르다노 입장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이건 한 사람의 비밀로 묶어 두기엔 너무 큰 발견이야.”
하지만 타르탈리아 입장에서는 다르게 들렸겠죠.
“내가 믿고 맡긴 열쇠를 네가 문 밖에 걸어 둔 거잖아.”
그래서 『위대한 술법』은 빛나는 책인데, 매끈한 책은 아닙니다.
수학은 앞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신뢰는 뒤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 대목이 카르다노를 더 사람답게 만듭니다.
그는 진리를 사랑한 학자였지만, 동시에 명예를 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종종 그런 사람들의 손에서 빨리 움직입니다.

카르다노가 버리지 않은 이상한 수는 나중에 수학의 새 언어가 되었다.
『위대한 술법』 안에서 카르다노는 아주 이상한 것을 마주합니다.
음수의 제곱근입니다.
제곱근은 어떤 수를 두 번 곱해 원래 수가 되는 값을 말해요.
그런데 음수의 제곱근은 당시 사람들에게 거의 말장난처럼 보였습니다.
어떤 수를 자기 자신과 곱하면 보통 0보다 크거나 같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곱해서 마이너스가 나오느냐는 겁니다.
오늘로 치면 계산기가 답을 뱉었는데, 머리로는 “이건 말이 안 되는데?” 하고 멈추는 순간과 비슷합니다.
화면에는 분명 값이 떠 있습니다.
하지만 손은 삭제 버튼 위에서 망설입니다.
카르다노는 그 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버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말이 안 되지만 계산 속에서는 움직이네” 하고 남겨 둔 겁니다.
이게 훗날 복소수로 이어지는 입구가 됩니다.
복소수는 보통 수와, 음수의 제곱근에서 출발한 새로운 수를 함께 쓰는 수 체계예요.
말하자면 기존 지도에는 없던 바다를 지도 안에 새로 그려 넣은 셈입니다.
카르다노가 그때 “이건 헛소리야” 하고 지워 버렸다면 어땠을까요.
수학은 언젠가 다른 길로 갔겠지만, 그 문은 더 늦게 열렸을지 모릅니다.
그는 문을 활짝 열지는 못했지만, 문틈은 남겨 둡니다.
여기서 멋진 점은 천재가 모든 걸 이해해서 앞서간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이해하지 못한 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태도가 더 큰 일을 만듭니다.
카르다노는 모르는 것을 지우는 대신 계산대 위에 올려 둔 사람입니다.

숫자로 우연을 붙잡으려 한 카르다노의 삶은 끝내 계산 밖으로 흘러갔다.
카르다노는 확률을 따졌지만, 동시에 점성술에도 매달렸습니다.
점성술은 별의 위치를 보고 사람의 운명과 사건을 읽으려는 믿음이에요.
오늘로 치면 데이터를 믿는 사람이 막상 자기 인생 문제 앞에서는 운세 앱을 켜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는 운을 계산하고 싶어 했습니다.
주사위의 눈도, 병의 흐름도, 사람의 미래도 어떤 규칙 안에 있을 거라 믿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우연에도 얼굴이 있다면, 내가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의 삶은 그 계산을 비웃듯 흘러갑니다.
그는 예수의 별점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소에 체포됩니다.
종교재판소는 교회가 위험하다고 본 믿음이나 글을 조사하고 처벌하던 기관입니다.
그보다 더 끔찍한 일도 닥칩니다.
그의 아들은 아내를 독살한 죄로 처형됩니다.
아버지가 우연의 법칙을 붙잡으려 애쓰는 동안, 가족의 운명은 손에서 빠져나갑니다.
이 반전이 카르다노를 오래 잊히지 않게 만듭니다.
그는 확률의 문을 열었지만, 자기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는 흔들렸습니다.
복소수의 문틈을 남겼지만, 현실의 고통은 어떤 공식으로도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카르다노를 읽으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그는 이성의 사람이고, 미신의 사람입니다.
차가운 계산을 한 사람이고, 뜨거운 불안을 견디지 못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에 남는 장면은 도박판의 주사위도, 책상 위의 공식도 아닙니다.
한 사람이 끝까지 묻는 장면입니다.
“세상은 정말 계산될 수 있는가?”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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