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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원자핵을 발견한 남자는 노벨물리학상이 아니라 노벨화학상을 먼저 받아들어요.
오늘날로 치면 천재 개발자가 코딩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고, 갑자기 문학상을 받으러 무대에 오른 장면에 가까워요.
그 남자가 어네스트 러더퍼드예요.
러더퍼드는 원자핵 물리학의 상징 같은 사람입니다.
원자핵 물리학이란 원자 한가운데 숨어 있는 아주 작은 중심부를 파고드는 학문이에요.
그런데 1908년, 그가 받은 상은 물리학상이 아니라 화학상이었어요.
이유는 방사성 물질이 스스로 변하면서 다른 원소로 바뀐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에요.
방사성 물질은 가만히 있어도 안에서 작은 입자나 에너지를 내보내는 물질입니다.
낡은 건전지가 조금씩 힘을 잃는 정도가 아니라, 물질의 정체 자체가 바뀌는 일이었어요.
그 시대 사람들에게 원소는 거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이었어요.
한번 산소면 계속 산소이고, 한번 우라늄이면 계속 우라늄이라고 믿었죠.
그런데 러더퍼드는 이렇게 말하는 셈이었어요.
“아니야. 원소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원소로 변할 수 있어.”
이건 화학자들의 세계를 흔드는 말이었어요.
하지만 러더퍼드는 물리학자였고, 화학을 농담처럼 낮춰 보기도 했다고 전해져요.
그런 사람이 화학상을 받았으니, 시상식장 공기가 얼마나 묘했을까요.
러더퍼드라면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몰라요.
“내가 화학상을 받다니, 이건 원자보다 더 이상하군.”

러더퍼드가 본 이상한 결과는 작은 입자 몇 개가 금박 앞에서 되돌아온 사건이었어요.
축구공을 휴지 한 장에 찼는데, 휴지가 찢어지는 대신 공이 내 얼굴로 튕겨 온 꼴이에요.
1909년 무렵, 한스 가이거와 어니스트 마스든은 러더퍼드의 지도로 실험을 해요.
한스 가이거는 나중에 방사선을 재는 장치 이름으로도 남는 과학자예요.
어니스트 마스든은 당시 젊은 연구자였고, 러더퍼드 실험실에서 까다로운 측정을 맡았어요.
그들이 한 일은 단순해 보여요.
아주 얇은 금박에 알파 입자를 쏘는 일이었어요.
알파 입자는 방사성 물질에서 튀어나오는 아주 작은 양전하 덩어리예요.
쉽게 말해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총알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당시 원자는 푸딩처럼 생겼다고 여겨졌어요.
푸딩 속에 건포도가 박혀 있듯, 원자 안에 전하가 퍼져 있다고 보는 그림이었죠.
그래서 알파 입자를 쏘면 대부분 그냥 지나가야 했어요.
조금 휘어지는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몇몇 입자가 크게 꺾였어요.
심지어 뒤로 튀어나오는 입자도 있었어요.
러더퍼드는 나중에 그 충격을 아주 유명한 비유로 말해요.
“15인치 포탄을 얇은 종이에 쐈는데, 포탄이 되돌아와 나를 맞힌 것 같았다.”
이 말이 왜 강하냐면, 실험 결과가 상식 자체를 때렸기 때문이에요.
금박은 얇았고, 원자는 거의 부드럽게 퍼져 있어야 했어요.
그런데 어디선가 아주 단단하고 강한 무엇이 알파 입자를 밀쳐낸 거예요.
러더퍼드는 그제야 질문을 바꿉니다.
“입자가 왜 지나가지 못했지?”가 아니었어요.
“원자 안의 무엇이 저 작은 총알을 되돌려 보냈지?”가 되었어요.

러더퍼드의 결론은 원자가 꽉 찬 물질이 아니라 거의 빈 방이라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만지는 책상도, 손잡이도, 스마트폰도 사실은 대부분 빈 공간이라는 뜻이에요.
1911년, 러더퍼드는 원자에 대한 새 그림을 내놓아요.
원자의 질량과 양전하가 중심의 아주 작은 곳에 모여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그 중심이 바로 원자핵입니다.
원자핵은 원자의 한가운데 있는 작고 무거운 중심부예요.
비유하자면 커다란 운동장 한가운데 작은 구슬 하나가 놓여 있는 장면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운동장 전체의 무게를 그 작은 구슬이 거의 다 쥐고 있어요.
나머지 공간은 텅 비어 있는 셈이에요.
이건 “원자는 작은 구슬이다”라는 상상을 깨는 말이었어요.
원자는 단단한 덩어리가 아니라, 가운데에 무거운 중심을 품은 빈 구조였어요.
그래서 알파 입자 대부분은 금박을 통과했어요.
빈 공간을 지나간 거예요.
하지만 아주 드물게 원자핵 가까이 지나간 알파 입자는 강하게 튕겨 나왔어요.
좁은 골목에서 거대한 트럭을 정면으로 만난 자전거처럼요.
러더퍼드의 위대함은 이상한 데이터를 버리지 않았다는 데 있어요.
실험 결과가 이론과 맞지 않을 때, 그는 데이터를 의심하는 대신 원자 그림을 의심했어요.
그 순간 과학은 이렇게 움직였어요.
“원자는 이렇게 생겼을 것이다”에서 “실험이 말하는 원자는 무엇인가”로요.
그래서 러더퍼드는 원자 안에 작은 핵을 세운 사람이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한복판에 중심을 놓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중심 때문에, 우리가 아는 물질의 그림은 완전히 새로 그려져요.

원자핵의 문을 연 러더퍼드는 그 문 뒤의 에너지를 너무 이른 꿈으로 보았어요.
인터넷을 만든 사람이 스마트폰 세상을 상상하지 못한 장면과 비슷해요.
1933년, 사람들은 원자에서 쓸 만한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을지 기대하기 시작해요.
원자에너지란 원자핵이 바뀔 때 나오는 큰 에너지예요.
작은 성냥 하나가 아니라, 성냥갑 안에 숨어 있던 폭풍을 꺼내는 일에 가까워요.
하지만 러더퍼드는 회의적이었어요.
그는 그런 기대를 현실적인 계획이라기보다 헛꿈에 가깝게 보았다고 전해져요.
그의 눈에는 원자핵을 때리는 일 자체가 너무 어렵고 비효율적으로 보였을 거예요.
이 반전이 정말 묘해요.
원자핵을 발견한 사람이 원자력 시대의 가능성을 작게 본 거예요.
문을 연 사람과, 문 너머 방의 크기를 맞힌 사람은 같지 않았던 셈이에요.
같은 시기 레오 실라르드는 다른 생각을 떠올려요.
레오 실라르드는 훗날 원자력과 핵분열 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리학자예요.
그가 떠올린 것은 연쇄 반응입니다.
연쇄 반응은 하나의 사건이 다음 사건을 밀고, 그다음 사건이 또 다음 사건을 미는 구조예요.
도미노 하나를 쓰러뜨렸는데 줄 전체가 무너지는 장면을 생각하면 돼요.
러더퍼드는 원자핵의 존재를 보여준 사람입니다.
하지만 실라르드는 그 핵에서 에너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질 수 있다는 쪽을 봐요.
둘 사이에는 천재와 천재의 싸움보다 더 흥미로운 차이가 있어요.
하나는 “무엇이 있는가”를 보았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무엇을 일으킬 수 있는가”를 보았어요.
러더퍼드가 틀렸다고 쉽게 말하기는 어려워요.
그는 당시의 장비와 실험 감각으로 판단했어요.
하지만 역사는 가끔 가장 가까이 간 사람에게도 마지막 장면을 숨겨요.
원자핵을 찾아낸 사람이 핵에너지의 미래를 의심했다는 사실.
그래서 러더퍼드 이야기는 더 인간적이에요.
세상을 바꾼 발견자도, 자신이 연 문 뒤에서 어떤 세상이 걸어 나올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던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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