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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블랙홀은 처음부터 사진으로 발견된 것이 아니라, 펜로즈의 수학 안에서 먼저 피할 수 없는 결말이 되었어요.
이건 범죄 현장 사진도 없는데, 바닥의 발자국만 보고 “범인은 저 문으로 나갔고, 끝은 저기야”라고 맞힌 일에 가까워요.
망원경이 우주의 어두운 구멍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전에, 펜로즈는 종이 위의 논리로 그곳에 도착합니다.
1965년, 로저 펜로즈는 일반상대성이론 안에서 이상한 결론을 끌어냅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이 만든 중력 설명이에요.
중력을 보이지 않는 힘줄이 아니라, 무거운 것이 시공간이라는 고무판을 휘게 만드는 일로 보는 생각입니다.
펜로즈가 본 것은 별의 최후였어요.
아주 무거운 별이 자기 무게를 못 이기고 무너지면,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덫이 생깁니다.
그 덫 안에서는 길이 바깥으로 열리지 않아요.
여기서 중요한 건 “그럴 수도 있다”가 아니에요.
펜로즈의 정리는 “조건이 맞으면 피하기 어렵다” 쪽에 가까워요.
마치 산사태가 이미 시작됐고, 모든 길이 계곡 아래로만 이어지는 상황처럼요.
그 끝에 놓인 말이 특이점입니다.
특이점은 우리가 아는 물리 법칙이 더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점이에요.
스마트폰 지도 앱이 갑자기 모든 길을 한 점으로 몰아넣고 멈춰버리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극적이에요.
펜로즈는 블랙홀을 사진으로 본 사람이 아니라, 블랙홀이 숨을 수 없는 논리의 그물을 만든 사람입니다.
우주는 아직 조용했는데, 수학이 먼저 “저기 끝이 있어”라고 말한 셈이에요.

펜로즈가 별의 마지막을 설명하자, 호킹은 그 수학을 우주의 첫 순간으로 되감았어요.
이건 막다른 골목 지도를 거꾸로 들고 출발점을 찾는 일과 닮았어요.
끝으로 가는 길을 연구했더니, 이상하게도 시작으로 가는 길이 보인 겁니다.
블랙홀의 어둠 속에서 빅뱅의 빛 쪽으로 방향이 바뀐 거예요.
스티븐 호킹은 몸이 점점 움직이기 어려워지는 병을 앓으면서도 우주의 시작을 파고든 물리학자입니다.
그가 붙든 질문은 단순하지 않았어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어디까지 가는가?”
펜로즈의 특이점 정리는 별이 무너질 때 생기는 끝을 말해줬어요.
그런데 호킹과의 연구로 이 생각은 우주의 시작에도 닿습니다.
끝을 설명하던 수학이 시작을 향해 돌아선 거예요.
여기서 반전은 무섭도록 깔끔해요.
블랙홀은 별이 자기 안으로 무너져 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빅뱅은 우주 전체가 아주 뜨겁고 빽빽한 상태에서 펼쳐진 이야기입니다.
겉으로 보면 둘은 반대처럼 보여요.
하나는 모든 것이 안으로 꺼집니다.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밖으로 퍼집니다.
하지만 수학은 둘 사이에서 비슷한 구조를 봅니다.
길들이 한곳으로 몰리고, 우리가 아는 설명이 벽에 부딪히는 구조예요.
그래서 펜로즈와 호킹의 연구는 우주의 끝과 시작을 같은 문법으로 읽게 만듭니다.
그제야 질문이 바뀝니다.
“블랙홀은 정말 있나?”에서 “우리 우주는 어떤 경계에서 시작됐나?”로요.
펜로즈의 수학은 한 별의 죽음을 따라가다가, 어느새 우주의 첫 문턱 앞에 서 있었어요.

펜로즈의 타일은 규칙을 지키면서도 끝내 같은 장면으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우리는 보통 질서를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벽지가 예쁘게 보이는 이유도 같은 무늬가 일정하게 되풀이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펜로즈는 “반복하지 않아도 질서가 있을 수 있다”는 이상한 방을 보여줍니다.
1970년대, 펜로즈는 단 두 종류의 타일만으로 평면을 채우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것을 펜로즈 타일링이라고 불러요.
타일링은 욕실 바닥처럼 조각들을 빈틈없이 깔아 넓은 면을 채우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 타일은 평범한 욕실 타일이 아니에요.
같은 무늬가 일정한 간격으로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오늘 붙인 벽지가 방 끝까지 이어지는데, 아무리 걸어도 처음 본 장면이 똑같이 돌아오지 않는 셈이에요.
어? 그런데도 엉망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엄격한 규칙을 따릅니다.
마치 같은 후렴이 없는 노래인데도, 듣고 나면 분명 하나의 곡이었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해요.
이게 펜로즈다운 장면이에요.
그는 우주의 가장 무거운 곳을 생각하다가도, 바닥의 작은 조각 두 개에서 끝없는 구조를 봅니다.
블랙홀과 타일은 멀어 보이지만, 둘 다 같은 질문을 품고 있어요.
“규칙은 꼭 눈에 보이는 반복이어야 할까?”
펜로즈 타일링은 아니라고 답합니다.
질서는 군대처럼 줄 맞춰 서는 것만이 아니에요.
숲길처럼 한 번도 같은 장면이 반복되지 않아도, 전체를 지배하는 숨은 규칙이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이 타일은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생각을 흔듭니다.
우리가 무질서라고 부르는 것 안에도 아직 못 읽은 문법이 있을지 모릅니다.
펜로즈는 그 문법을 칠판뿐 아니라 바닥 위에서도 찾은 사람이에요.
노벨상은 펜로즈의 결론이 아니라, 그가 아직 의심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어요.
2020년, 펜로즈는 블랙홀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습니다.
노벨 물리학상은 물리학에서 가장 큰 상으로 여겨져요.
오늘날로 치면 전 세계 과학자들이 보는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셈입니다.
그런데 펜로즈는 시험지를 덮고 박수만 받은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시험지의 규칙을 다시 묻는 쪽에 가까워요.
“우리가 답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정말 끝까지 맞는가?”
그가 계속 붙든 질문 중 하나가 양자역학과 의식입니다.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세계에서 입자들이 이상하게 행동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물리학이에요.
의식은 내가 지금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생각한다고 아는 그 경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둘을 멀리 떼어놓고 싶어 합니다.
하나는 실험실의 입자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머릿속의 생각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펜로즈는 그 틈을 오래 바라봅니다.
그의 질문들은 늘 주류의 박수만 받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더 펜로즈답습니다.
블랙홀을 수학으로 붙잡은 사람이라면, 이제 편하게 권위자가 되어도 됩니다.
그런데 그는 완성된 답의 의자에 오래 앉지 않아요.
틈이 보이면 다시 일어나 그쪽으로 걸어갑니다.
그래서 펜로즈의 삶은 한 문장으로 닫히지 않습니다.
그는 우주의 끝을 증명한 수학자입니다.
그리고 끝이라고 불리는 곳마다 다시 질문을 밀어 넣은 사람입니다.
블랙홀의 경계, 우주의 첫 순간, 반복 없는 질서, 의식의 수수께끼.
그가 계속 그린 것은 정답의 울타리가 아니라 질문이 멈추는 경계였는지도 몰라요.
그 경계 너머에는 아직 어떤 칠판이 남아 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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