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가 처음 계산한 것은 우주의 나이가 아니라 국경까지의 거리였다.
조지아 가모프는 훗날 우주의 시작을 숫자로 붙잡으려 한 물리학자예요.
그런데 그 전에 먼저 붙잡아야 한 것은 자기 인생의 출구였어요.
1932년, 가모프는 아내 류보프와 함께 흑해를 건너 터키로 가려 해요.
오늘로 치면 공항 출국 심사대 앞에서 여권이 막혔는데, 그게 휴가 취소가 아니라 인생 전체의 정지 버튼인 상황이에요.
흑해는 지도 위에서는 얇은 파란 선처럼 보이죠.
하지만 작은 배를 타고 건너려는 사람에게는 벽이에요.
물로 된 벽, 밤으로 된 벽, 실패하면 돌아갈 곳도 사라지는 벽이요.
그 시도는 날씨 때문에 실패해요.
그래서 가모프 부부는 또 다른 길을 찾습니다.
이번에는 북쪽, 무르만스크에서 노르웨이로 빠져나가려 해요.
무르만스크는 러시아 북쪽 끝에 가까운 항구 도시예요.
따뜻한 바다가 아니라, 차가운 바람과 거친 물결이 먼저 떠오르는 곳이에요.
거기서도 날씨가 그들을 막아요.
이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아요.
우주의 첫 몇 분을 계산하게 될 사람이, 먼저 자기 삶의 다음 몇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거든요.
별의 탄생보다 급한 문제는 오늘 밤 배가 뜰 수 있느냐였어요.
그래서 가모프를 천재 물리학자로만 보면 반쪽만 보게 됩니다.
그는 먼저 도망치려던 사람이었어요.
살아남아야 질문도 계속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배운 사람이었어요.

소련이 내준 회의 초대장은 가모프에게 귀국표가 아니라 탈출표였다.
1933년, 가모프는 브뤼셀에서 열리는 제7차 솔베이 회의에 참석할 허가를 받아요.
솔베이 회의는 당대 최고 물리학자들이 모여 우주의 규칙을 놓고 토론하던 국제 학술회의예요.
지금으로 치면 전 세계 최고 연구자들이 한 방에 모이는 과학계의 정상회담에 가까워요.
그런데 진짜 반전은 초대장이 아니에요.
가모프가 아내 류보프도 함께 가야 한다고 버틴 일이에요.
혼자 나가면 다시 불려 들어올 수 있지만, 둘이 나가면 선택지가 달라지니까요.
국가는 그에게 공식 출장을 허락했어요.
서류상으로는 학회 참석이에요.
하지만 가모프에게는 국경을 합법적으로 넘는 문이었어요.
회사에서 출장 티켓을 줬다고 생각해보면 감이 와요.
그런데 그 티켓을 들고 회의장에 간 뒤,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 거예요.
그 순간 출장 가방은 망명 가방이 됩니다.
브뤼셀은 벨기에의 수도예요.
가모프에게 그곳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어요.
실패한 배 두 척 뒤에 열린, 처음으로 성공한 출구였어요.
여기서 가모프의 이야기는 분위기가 바뀝니다.
몰래 밤바다를 보던 사람이 이제 세계의 과학자들 사이로 들어가요.
하지만 그가 들고 간 것은 논문만이 아니었어요.
그는 자기 삶을 한 번 갈아엎은 경험을 들고 갔어요.
그래서 훗날 우주도 정적인 무대가 아니라 뜨겁게 변해온 이야기로 보게 됩니다.
한 번 닫힌 세계를 빠져나온 사람은, 세상도 처음부터 완성돼 있었다고 쉽게 믿지 않아요.
가모프의 가장 유명한 농담은 우주가 수소와 헬륨을 만든 순간에 붙었다.
1948년, 가모프의 제자 랠프 알퍼는 초기 우주에서 원소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관한 논문을 준비해요.
여기서 초기 우주란 별도 은하도 제대로 자리 잡기 전, 모든 것이 뜨겁고 빽빽하던 시기를 말해요.
뜨거운 국물 속에서 재료가 익듯, 그때 가벼운 원소들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에요.
이 이야기가 바로 빅뱅 핵합성으로 이어져요.
핵합성은 원자핵이 서로 붙어 새 원소가 되는 일이에요.
빅뱅 핵합성은 우주가 아주 어릴 때 수소와 헬륨 같은 가벼운 원소가 생겼다는 설명이에요.
그런데 가모프는 여기서 갑자기 장난기를 발휘해요.
논문의 저자 이름에 물리학자 한스 베테를 더합니다.
그래서 논문은 알퍼, 베테, 가모프의 이름으로 알려지게 돼요.
왜 이게 농담이냐면, 세 이름이 그리스 문자 알파, 베타, 감마처럼 들리기 때문이에요.
알파, 베타, 감마는 그리스 문자 순서의 앞부분이에요.
그러니까 우주의 시작을 다루는 논문 표지에 “처음, 다음, 그다음” 같은 말장난을 숨겨 넣은 셈이에요.
생각해보면 이상한 장면이에요.
진지한 졸업 논문 표지에 농담을 하나 넣었는데, 그 농담이 과학사의 표지가 됩니다.
우주의 첫 원소를 말하는 논문 이름이 장난처럼 기억되기 시작한 거예요.
하지만 장난이 가볍다는 뜻은 아니에요.
가모프는 무거운 질문을 너무 무겁게만 다루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우주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묻는 자리에서도, 그는 이름의 리듬을 가지고 놀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 논문은 더 오래 살아남아요.
내용은 우주의 뜨거운 시작을 말하고, 이름은 알파에서 감마로 이어지는 작은 농담을 품고 있어요.
가모프답게, 과학과 장난이 같은 책상 위에 놓인 순간이에요.

우주의 시작을 묻던 가모프는 어느 날 생명이 쓰는 알파벳으로 눈을 돌렸다.
1954년, 가모프는 DNA가 단백질을 만드는 방식을 풀고 싶어 해요.
DNA는 생명체 안에 들어 있는 설계도 같은 분자예요.
단백질은 몸을 만들고 움직이는 작은 기계들에 가까워요.
문제는 설계도가 어떤 방식으로 기계를 만드는지였어요.
종이에 적힌 글자가 빵이나 의자로 바로 바뀌지는 않잖아요.
DNA의 글자가 어떻게 단백질이라는 물건으로 번역되는지가 수수께끼였어요.
가모프는 이 문제를 두고 RNA 타이 클럽을 만들어요.
이 모임은 유전암호 문제를 논의한 비공식 과학자 모임이에요.
정식 학회라기보다, 암호 해독에 꽂힌 사람들이 모인 작전실에 가까워요.
이름에 들어간 RNA는 DNA의 정보를 단백질 쪽으로 옮기는 데 관여하는 분자예요.
타이는 넥타이를 뜻해요.
가모프는 회원 20명을 단백질 재료인 아미노산 20개에 대응시켜요.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만드는 작은 부품이에요.
레고 블록이 모여 집이 되듯, 아미노산이 이어져 단백질이 됩니다.
가모프는 생명을 하나의 문장처럼 보려 했어요.
여기서 놀라운 점은 그가 원래 생물학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별과 원소의 기원을 묻던 물리학자가 생명의 암호 회의를 만든 겁니다.
전혀 다른 부서 사람이 회사의 핵심 암호 해독 회의를 열어버린 셈이에요.
하지만 가모프에게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우주의 시작도 암호였고, 생명의 시작도 암호였으니까요.
하나는 하늘에 쓰인 암호였고, 다른 하나는 세포 안에 접힌 암호였어요.
그는 질문을 바꿨을 뿐이에요.
“우주는 처음에 무엇을 만들었나”에서 “생명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읽나”로요.
같은 사람의 호기심이 망원경에서 분자 모형으로 옮겨간 순간이에요.
그래서 가모프의 삶은 한 줄로 정리되지 않아요.
국경을 넘으려던 도망자였고, 우주의 원소를 계산한 물리학자였고, DNA 암호 앞에 앉은 장난기 많은 해독가였어요.
그가 붙잡으려 한 것은 결국 하나였을지도 몰라요.
처음에는 세계 밖으로 나가는 길.
그다음에는 우주가 시작된 길.
마지막에는 생명이 자기 문장을 읽는 길.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2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