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물리학의 오래된 믿음을 무너뜨린 실험은 첸슝 우의 손에서 나왔지만, 노벨상은 그의 이름을 지나갔어요.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은 리정다오와 양전닝에게 돌아갑니다.
두 사람은 자연이 좌우를 똑같이 대한다는 믿음이 정말 맞는지 의심한 이론가들이에요.
하지만 그 의심을 현실의 숫자로 바꾼 사람은 첸슝 우였어요.
이 상황은 회사 회의실과 닮아 있어요.
누군가 “이 문제, 사실 이렇게 풀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밤새 데이터를 모으고, 장비를 맞추고, 진짜로 된다는 걸 보여준 사람은 발표 슬라이드 한쪽에 작게 적히는 거예요.
우가 한 일은 단순한 확인이 아니었어요.
물리학자들이 “당연하지”라고 말하던 믿음을 실험대 위에 올려놓은 일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우는 상을 놓친 과학자가 아니라, 자연에게 직접 “너 정말 좌우를 똑같이 대하니?”라고 물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자연은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아니, 나는 한쪽을 더 좋아해.”

그들이 첸슝 우에게 가져온 것은 새 이론이 아니라, 물리학자들이 너무 오래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질문이었어요.
그 질문의 이름이 패리티예요.
어렵게 들리지만, 거울을 떠올리면 됩니다.
오른손을 들면 거울 속 나는 왼손을 든 것처럼 보이죠.
물리학자들은 오랫동안 자연도 그런 거울 놀이를 공평하게 따른다고 믿었어요.
왼쪽에서 벌어진 일이 오른쪽에서 벌어져도 법칙은 같을 거라고 본 거예요.
마치 축구장을 좌우로 뒤집어도 경기 규칙은 그대로인 것처럼요.
그런데 리정다오와 양전닝은 아주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혹시 약한 핵력에서는 이 규칙이 깨지는 거 아닐까?”
약한 핵력은 원자 안에서 어떤 입자가 다른 입자로 바뀔 때 작동하는 힘이에요.
눈에 보이는 밀고 당김이 아니라, 원자 속에서 정체가 바뀌는 사건에 가까워요.
그래서 더 조용하고, 더 이상하고, 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이 질문은 시험지 첫 줄에 “1 더하기 1은 정말 2인가?”라고 쓰는 것과 비슷했어요.
너무 당연해서 묻는 사람이 이상해 보이는 질문이죠.
하지만 과학의 무서운 점은 바로 거기에 있어요.
당연한 것을 다시 물을 수 있는 사람만, 당연하지 않은 세계를 봅니다.
그래서 두 이론가는 첸슝 우를 찾아갑니다.
그 질문을 실험으로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좌우가 같다는 믿음은 거대한 망원경이 아니라, 얼어붙은 코발트 원자 앞에서 무너졌어요.
첸슝 우는 미국 국립표준국 연구진과 함께 코발트 60을 실험에 씁니다.
코발트 60은 시간이 지나며 안에서 전자를 내보내는 원자예요.
이렇게 원자핵이 변하면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일을 베타 붕괴라고 불러요.
비유하자면 아주 작은 공장에서 부품 하나가 튀어나오는 장면이에요.
보통 믿음대로라면 그 부품은 왼쪽과 오른쪽을 공평하게 골라야 합니다.
동전을 수천 번 던지면 앞면과 뒷면이 비슷하게 나와야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우의 실험은 동전이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전자가 한쪽 방향을 더 좋아했어요.
자연이 “나는 완전히 공평한 거울이 아니야”라고 고백한 순간입니다.
이 결과를 얻으려면 원자들을 아주 차갑게 식혀야 했어요.
너무 따뜻하면 원자들이 제멋대로 흔들려서 방향을 읽기 어렵거든요.
사람들이 떠드는 시장 한복판에서 속삭임을 듣기 어려운 것과 같아요.
그래서 실험 장치는 겨울보다 더 차가운 세계가 됩니다.
그 안에서 코발트 60 원자들은 방향을 맞추고, 전자들은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숫자는 한쪽으로 기울어요.
그제야 물리학자들은 이해합니다.
문제는 실험 장치의 편견이 아니었어요.
자연의 규칙 책에 정말로 한 줄이 잘못 적혀 있었던 거예요.

첸슝 우의 실험이 바꾼 것은 한 논문의 결론이 아니라, 자연을 보는 물리학의 기본 감각이었어요.
패리티 비보존은 자연이 어떤 힘에서는 좌우 대칭을 지키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말을 풀면 이렇습니다.
거울에 비친 세계가 원래 세계와 완전히 같은 법칙으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건 경기 규칙을 어긴 선수를 찾은 일이 아니에요.
심판이 규칙 책을 펼쳐보고, “잠깐, 책 자체가 틀렸네”라고 말한 사건에 가까워요.
그래서 이 실험은 현대 입자물리학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입자물리학은 세상을 가장 작은 조각들로 나눠서 보는 학문이에요.
책상을 나무로 보고, 나무를 분자로 보고, 분자를 원자로 보고, 원자 안쪽까지 파고드는 방식이죠.
우의 실험은 그 안쪽 세계가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덜 대칭적이라는 걸 보여줬어요.
물론 첸슝 우를 말할 때 노벨상 이야기를 피하기는 어려워요.
실험은 그의 손에서 나왔고, 상은 다른 이름으로 남았으니까요.
하지만 우를 그저 빠진 이름으로만 기억하면 가장 큰 장면을 놓치게 됩니다.
그의 진짜 기록은 분명해요.
그는 자연의 오래된 가면을 벗긴 실험 설계자였어요.
그리고 그 가면 아래에는 물리학자들이 상상한 공평한 거울 세계가 없었습니다.
상은 무대 위에서 끝나요.
하지만 실험 장치는 책상 위에 남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름은 트로피보다 오래, 질문의 형태로 남지 않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2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