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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하이젠베르크의 첫 승부수는 전자가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는 것이었다.
보통 과학자는 더 자세히 보려고 현미경을 들이댈 것 같잖아요.
그런데 이 젊은 물리학자는 정반대로 갔어요.
1925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건초열을 피해 헬골란트섬으로 떠나요.
헬골란트섬은 북해에 떠 있는 외딴 섬이에요.
꽃가루를 피하려고 간 곳에서, 그는 물리학의 지도를 찢어버리는 계산을 붙잡습니다.
그때 물리학자들은 전자가 원자 안에서 어떤 길로 도는지 알고 싶어 했어요.
마치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도는 것처럼요.
하지만 전자는 행성처럼 얌전히 길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하이젠베르크는 여기서 질문을 바꿔요.
“전자가 실제로 지나간 길을 모르면 어때?”
“우리가 볼 수 있는 숫자만 붙잡자.”
이건 CCTV 화면 없이도 사람의 이동을 추적하는 일과 비슷해요.
어느 문에 몇 시에 들어왔고, 어느 문에서 몇 시에 나갔는지만 보는 거예요.
길 전체는 안 보여도, 도착 시간과 변화는 계산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는 전자의 실제 궤도를 버렸어요.
궤도란 물체가 지나간 길이에요.
그는 그 대신 원자가 내뿜는 빛의 숫자만 다뤘어요.
이게 이상한 점이에요.
자연을 더 정확히 보려던 물리학자가, 오히려 보이지 않는 길을 과감히 지운 거예요.
“모르는 길을 상상하지 말자”가 그의 첫 혁명이었어요.
그 순간 물리학은 그림에서 숫자로 넘어가요.
전자가 어디를 지나갔는지 그리는 대신, 관측 가능한 결과만 놓고 계산하는 쪽으로요.
하이젠베르크는 섬에서 전자를 찾은 게 아니라, 전자의 길을 지워버린 셈이에요.

양자역학의 첫 공식은 만든 사람도 이름을 모르는 수학으로 쓰였다.
이 대목이 정말 묘해요.
하이젠베르크는 새 문장을 썼는데, 자기가 어떤 문법을 썼는지 몰랐던 거예요.
그의 계산은 낯설었어요.
숫자가 줄지어 있고, 순서를 바꾸면 결과도 달라졌어요.
평소 우리가 아는 곱셈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죠.
이때 등장한 사람이 막스 보른이에요.
막스 보른은 독일 물리학자였고, 하이젠베르크의 이상한 계산을 알아본 사람이에요.
그는 그 계산이 행렬이라는 수학과 닮았다는 걸 봤어요.
행렬은 숫자들을 표처럼 배열해 다루는 방법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엑셀 표 안의 숫자들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방식에 가까워요.
한 칸씩 보는 게 아니라, 표 전체의 관계를 계산하는 거예요.
하이젠베르크는 암호를 만들었고, 보른은 그 암호의 이름을 알아본 셈이에요.
“이건 그냥 이상한 계산이 아니야.”
“완전히 새 물리학의 언어야.”
그래서 이 계산은 행렬역학으로 정리돼요.
행렬역학은 전자의 길을 그리지 않고, 관측되는 변화들을 행렬로 계산하는 물리학이에요.
양자역학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서 열립니다.
반전은 여기 있어요.
새 시대의 문을 연 사람은 자기 손에 든 열쇠의 이름도 몰랐어요.
하지만 보른은 그 열쇠가 어느 문을 여는지 알아봤죠.
과학은 가끔 이렇게 움직여요.
한 사람은 미친 듯이 문제를 풀고, 다른 사람은 그 풀이가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하이젠베르크와 보른 사이에서, 전자의 세계는 처음으로 낯선 언어를 얻었어요.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한계는 인간의 실수가 아니라 자연의 규칙이었다.
이건 “우리가 아직 장비가 부족하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아주 작은 세계에서는, 본다는 행동 자체가 대상을 바꿔버린다는 얘기예요.
1927년,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해요.
불확정성 원리는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생각이에요.
위치는 “어디 있나”이고, 운동량은 “어느 쪽으로 얼마나 세게 움직이나”에 가까워요.
처음 들으면 답답하죠.
“그럼 더 좋은 현미경을 만들면 되지 않나?”
그런데 하이젠베르크가 말한 문제는 그런 종류가 아니었어요.
어두운 방에서 누가 자고 있다고 해볼게요.
그 사람을 보려면 손전등을 비춰야 해요.
그런데 빛을 비추는 순간, 그 사람이 깨서 원래 상태가 사라져요.
전자의 세계도 비슷해요.
전자를 보려면 빛 같은 무언가를 부딪혀야 해요.
그 순간 전자는 영향을 받아요.
그래서 위치를 아주 정확히 알려고 하면,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흐려져요.
반대로 움직임을 정확히 잡으려 하면, 어디 있었는지가 흐려져요.
이건 게으른 측정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가 그렇게 작동한다는 말이에요.
하이젠베르크는 사실상 이렇게 말한 셈이에요.
“자연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모든 걸 동시에 내놓지 않아.”
“질문 하나를 선명하게 만들면, 다른 질문은 흐려져.”
이 말은 물리학자들에게 꽤 충격이었어요.
세상은 원래 정확한데 인간이 모르는 것이라고 믿기 쉬웠거든요.
그런데 하이젠베르크는 정확함 자체에 경계선이 있다고 말한 거예요.
불확정성 원리는 무지가 아니에요.
안개가 낀 유리창도 아니에요.
자연이 아주 작은 크기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규칙이에요.

세계의 확실성을 무너뜨린 과학자는 자신의 전쟁 기록도 확실히 설명하지 못했다.
이 마지막 반전은 과학 공식보다 더 불편해요.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역사 속에서 하나의 불확정한 인물이 되어버리거든요.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는 독일의 우라늄 연구에 참여해요.
우라늄은 원자폭탄과 원자로 연구에 연결될 수 있는 물질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단순한 실험실 문제가 아니었어요.
당시 독일은 나치 정권 아래 있었어요.
나치 독일은 폭력과 전쟁으로 유럽을 뒤흔든 독재 국가였어요.
그 안에서 과학자는 위험한 지식을 어디까지 다뤄야 하는지 선택해야 했어요.
하이젠베르크는 1941년 코펜하겐에서 닐스 보어를 만나요.
코펜하겐은 덴마크의 수도예요.
닐스 보어는 덴마크 물리학자였고, 하이젠베르크에게 스승 같은 존재였어요.
두 사람은 원자폭탄 가능성을 둘러싸고 대화를 나눴어요.
하지만 그 대화는 또렷한 결론으로 남지 않았어요.
무슨 의도였는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훗날까지 논쟁이 이어져요.
여기서 하이젠베르크의 삶은 기묘하게 자기 이론과 닮아가요.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붙잡기 어렵듯이, 그의 전쟁 속 선택도 한 문장으로 고정되지 않아요.
협조였는지, 망설임이었는지, 멈추려는 시도였는지 쉽게 확정되지 않아요.
위험한 기술을 아는 전문가가 독재 정권 아래 있다고 해볼게요.
그는 떠날 수도 있고, 남을 수도 있어요.
남는다면 어디까지 연구해야 하는지 매일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해요.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로 자연의 경계를 보여줬어요.
하지만 전쟁은 그에게 다른 경계를 들이밀었어요.
과학자가 알 수 있는 것과, 과학자가 책임져야 하는 것 사이의 경계였어요.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깔끔한 위인전으로 끝나지 않아요.
섬에서 전자의 길을 지운 청년은, 훗날 자신의 길도 선명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자리에 서요.
우리는 하이젠베르크를 읽으며 묻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정말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아직 책임지고 말하지 못한 것일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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