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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96년 2월, 파리 하늘이 일주일 내내 흐렸다.
그 흐림이 핵물리학의 문을 열었다.
앙리 베크렐은 당시 하나의 가설을 검증하는 중이었어요.
"햇빛이 우라늄염처럼 빛나는 물질에 닿으면, X선이 나오지 않을까?"
그는 우라늄염과 사진건판을 햇빛에 노출시키는 실험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파리 하늘이 협조를 안 했어요.
구름이 닷새, 엿새, 이레째 사라질 기미가 없자, 결국 실험을 포기했어요.
우라늄염과 건판을 그대로 서랍에 함께 넣어두고 맑은 날을 기다리기로 했어요.
3월 1일, 어차피 다른 할 일도 없어서 건판을 현상해봤어요.
햇빛이 없었으니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어야 했어요.
그런데 우라늄염의 윤곽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어요. 강한 광선을 쐰 것처럼.
베크렐의 가설은 완전히 틀렸어요.
하지만 그 실패의 자리에, 인류가 이제껏 상상조차 못 했던 현상이 서 있었어요.
그게 바로 자연 방사능이에요. 빛도 전기도 없이 물질이 스스로 에너지를 내뿜는 현상이에요.
시험공부 한 줄도 못 하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만점을 받아버린 상황이라고 보면 돼요.
실패가 아니라 우연이 발견자를 만든 거예요.

베크렐의 첫 스승은 아버지였고, 아버지의 스승은 또 그의 할아버지였어요.
발견의 재료까지 물려받은 것이었어요.
할아버지 앙투안 세자르 베크렐은 파리 자연사 박물관의 교수였어요.
아버지 에드몽 베크렐도 그 자리를 이어받아, 인광 현상을 평생 연구했어요.
인광은 빛을 잠깐 받은 물질이 어두운 곳에서도 한동안 스스로 빛을 내는 현상이에요.
야광 시계 바늘이 바로 그 원리예요.
앙리는 아버지의 교수 자리와 실험 장비를 그대로 물려받아 연구를 시작했어요.
1896년 봄, 그가 서랍에 넣어두었던 우라늄염 표본도 아버지가 수십 년간 모아온 컬렉션이었어요.
방사능이 발견된 그 순간, 그의 손 안에는 3대가 쌓아온 100년의 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3대가 평생 추적한 건 단지 "빛을 내는 물질"이었어요.
그 안에 훨씬 거대한 비밀이 숨어 있다는 걸, 손자 대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몰랐어요.
3대가 같은 약초를 찾아다녔는데, 그 약초 옆 흙에서 손자가 금광을 발견한 셈이에요.

베크렐이 자신의 발견을 발표했을 때, 세상은 다른 광선에 정신이 팔려 있었어요.
1895년 11월, 독일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했어요.
X선은 살을 통과해 뼈의 윤곽을 사진에 담아내는 광선이에요.
뢴트겐이 아내 손의 뼈가 찍힌 사진 한 장을 공개하자, 전 세계 신문이 1면을 그 사진으로 도배했어요.
사람들이 자기 손뼈를 보겠다고 줄을 서던 시대였어요.
그 열기 속에서 1896년 3월, 베크렐은 파리 과학 아카데미에서 우라늄 광선 발견을 발표했어요.
반응은 "또 다른 광선이 있다네" 하고 그냥 흘러갔어요.
같은 달 출시된 경쟁사 신상에 완전히 묻혀버린 제품처럼, 베크렐의 발견은 학계 변두리로 조용히 밀려났어요.
그걸 살려낸 사람이 마리 퀴리예요.
1897년, 퀴리는 박사 논문 주제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베크렐 광선"을 골랐어요.
그리고 그 광선의 정체를 추적하다가 라듐과 폴로늄이라는 새로운 원소를 분리해 냈어요.
결국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베크렐과 퀴리 부부가 공동 수상했어요.
세상이 무시했던 그 작은 발표가, 7년 뒤 역사에서 가장 큰 상을 받게 된 거예요.
핵시대를 연 발견이 정작 발견된 해에는 X선의 그림자에 가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예요.

베크렐은 자신이 처음으로 본 그것에 의해 죽었어요.
그가 가슴에 품고 다닌 작은 유리관 하나가 그를 천천히 태우고 있었어요.
노벨상 수상 이후, 베크렐은 라듐이 든 작은 유리관을 조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어요.
라듐은 아무것도 안 해줘도 스스로 빛나고 열을 내는 기적의 물질이었어요.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는 아무도 몰랐어요.
어느 날, 그의 가슴에 동그란 화상 자국이 생겼어요.
라듐이 조끼 너머로 피부를 손상시킨 거예요.
베크렐은 이 사실을 오히려 흥미로운 현상으로 여겨 직접 학술지에 보고했어요.
마리 퀴리도 비슷한 화상을 손에 입었어요.
두 사람 모두 방사선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몸으로 먼저 증명하고 있었던 셈이에요.
1908년, 베크렐은 55세에 세상을 떴어요.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수십 년간의 방사선 노출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가 죽고 67년이 지난 1975년, 국제사회는 방사능의 세기를 재는 단위에 그의 이름을 붙였어요.
베크렐(Bq)은 1초에 원자핵이 딱 1개 붕괴하는 양이에요.
지금도 방사능을 잴 때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꺼내요.
흐린 파리 하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랍을 열었던, 그 사람의 이름을.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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