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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01년, 한 의사가 영국인의 신을 반박했어요.
그 의사의 이름은 토머스 영이었고, 그가 도전한 신은 아이작 뉴턴이었어요.
뉴턴은 그 시대 영국인들에게 단순한 과학자가 아니었어요.
만유인력을 발견하고 프리즘으로 빛을 분해한 그는 영국 학계의 성인(聖人)이나 다름없었거든요.
그 뉴턴의 주장 중 하나가 빛의 입자설이었어요.
빛은 아주 작은 알갱이들이 직선으로 날아다니는 것이라는 이론이에요.
100년 넘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영은 왕립학회 베이커리언 강연, 당시 영국 최고의 과학 발표 무대에서 손을 들었어요.
"빛은 입자가 아니라 파동입니다."
학교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선생님의 이론을 1학년생이 공개 반박하는 상황과 같았어요.
재미있는 건 영의 직업이에요.
그는 물리학자가 아니라 의사였어요.
광학 연구가 틀리더라도 따로 먹고살 직업이 있었기에, 남들이 주저하던 그 무대에서 손을 들 수 있었어요.

연못에 돌을 두 개 동시에 던져본 사람이라면 영의 실험을 이미 본 셈이에요.
두 지점에서 퍼져나간 물결이 서로 만나면, 겹치는 곳은 솟구치고 부딪히는 곳은 잠잠해지는 무늬가 생겨요.
이걸 간섭무늬라고 해요.
영의 실험은 이랬어요.
커튼에 작은 구멍을 뚫어 햇빛을 가느다란 줄기로 만든 뒤, 두 개의 평행한 좁은 틈이 뚫린 판에 통과시켰어요.
벽에는 밝고 어두운 줄무늬가 번갈아 나타났어요.
여기서 결정적인 반전이 있어요.
빛이 입자라면 두 개의 틈을 지난 뒤 벽에는 딱 두 줄만 생겨야 했어요.
그런데 수십 개의 줄무늬가 나타난 거예요.
이건 빛이 물결처럼 간섭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였어요.
두 틈에서 나온 파동이 만나 강해지는 곳은 밝아지고, 서로 상쇄되는 곳은 어두워진 거예요.
결국 이 실험 하나가 뉴턴의 100년짜리 이론에 금을 냈어요.

영을 침묵시킨 것은 과학자가 아니라 한 명의 평론가였어요.
1803년, 헨리 브로엄이 《에든버러 리뷰》에 영의 논문을 박살내는 글을 실었어요.
에든버러 리뷰는 당시 영국 최고의 지식인 잡지였어요.
브로엄은 훗날 영국 대법관이 되는 법률가였지만, 그때는 예리한 펜으로 이름을 날리는 평론가였어요.
그가 쓴 내용은 이랬어요.
"실험이라 부를 만한 것도 없고, 발견이라 부를 만한 것도 없다."
논문 자체를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은 거예요.
파장은 컸어요.
영국 학계는 영의 파동설을 약 20년 동안 외면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수백만 구독자 유튜버의 혹평 영상 하나로 책 한 권이 완전히 묻혀버리는 상황이에요.
결국 영은 광학 연구를 접고 방향을 틀었어요.
그다음 목표는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이었어요.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때 발견된 로제타석, 세 종류의 문자로 같은 내용이 새겨진 그 돌의 비밀을 푸는 일이었어요.
그 사이, 빛의 파동설은 영국에서 조용히 잠든 채였어요.

1818년 파리에서 일어난 한 번의 실험이 영의 20년 침묵을 끝냈어요.
프랑스 과학아카데미가 빛의 본질을 주제로 현상금 논문 공모를 열었어요.
무명의 청년 물리학자 오귀스탱 프레넬이 영의 파동 이론을 수학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제출했어요.
심사위원이었던 수학자 푸아송은 논문을 읽고 조롱했어요.
"이 이론대로라면 원형 장애물 뒤 그림자 한가운데에 밝은 점이 생겨야 하잖아요. 말이 돼요?"
빛이 둥근 물체를 돌아서 그림자 정중앙에 모인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심사위원들은 실제로 실험해봤어요.
그 밝은 점이 진짜로 있었어요.
조롱하려던 예측이 오히려 파동설을 완벽하게 증명해버린 거예요.
오늘날 이 점을 포아송의 밝은 점(Poisson's spot)이라고 불러요.
영국이 20년간 묻어둔 이론을 프랑스인이 부활시킨 셈이었어요.
영은 자신이 옳았다는 걸 살아서 확인하고 1829년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가장 아이러니한 건 따로 있어요.
파동설을 역사에 못 박은 결정타는 그것을 틀렸다고 조롱했던 사람의 질문에서 나왔거든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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