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0은 발견된 것이 아니라 발명되어야 했어요.
628년, 인도 라자스탄의 한 천문대에서 브라마굽타가 그것을 처음 글로 적었습니다.
그 전까지 0은 그냥 '빈 자리'였어요.
숫자판에서 아무것도 없는 자리를 표시하는 점 하나, 혹은 공백.
'비어 있음을 표시'하는 기호였지, 수가 아니었어요.
브라마스푸타싯단타, 우리말로 하면 '우주의 정확한 가르침'이라는 뜻의 천문학 저서에서 브라마굽타는 처음으로 0을 1이나 2처럼 다룰 수 있는 수로 정의했어요.
더하고, 빼고, 곱할 수 있는 수.
추상을 숫자로 끌어올린 인류 최초의 순간이었습니다.
빈 의자를 보고 "의자가 0개네"라고 말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그 0을 들고 5에서 빼는 계산, 0×7=0이라는 연산을 정의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생각이에요.
브라마굽타는 그 경계를 처음 넘어선 사람이었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음수를 계산하며 살아요.
브라마굽타는 그 계산을 처음 글로 옮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양수를 '다나(재산)', 음수를 '리나(빚)'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규칙을 명문화했습니다. "빚과 재산을 합치면 차이가 된다", "빚끼리 곱하면 재산이 된다."
오늘날 중학교 수학 첫 단원에 나오는 그 부호 규칙이 그대로예요.
그런데 유럽은 달랐어요.
17세기까지도 유럽의 수학자들은 음수를 'false numbers(거짓 수)'라고 불렀거든요.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조차 음수로 나온 방정식의 해를 "가짜 답"이라며 무시했습니다.
브라마굽타가 빚과 재산으로 음수를 설명한 건 628년이었어요.
데카르트가 음수를 의심한 건 1637년이었고요.
그는 유럽보다 정확히 천 년을 앞서 있었습니다.
브라마굽타는 인류 최초로 0으로 나누기를 시도했고, 틀렸어요.
그러나 그 틀린 답이 1300년 뒤 미적분의 문을 열었습니다.
사과 5개를 0명에게 나눠 주면 한 사람당 몇 개일까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요.
그런데 브라마굽타는 굴하지 않고 "0÷0=0"이라고 적었습니다.
현대 수학은 이걸 '정의되지 않음(undefined)'이라고 해요.
그의 답은 틀렸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을 처음 제기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어요.
1100년 뒤, 라이프니츠와 뉴턴이 '극한'이라는 개념을 발명했어요.
극한이란, 0으로 직접 나누는 대신 0에 한없이 가까워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묻는 방법이에요.
그게 바로 미적분의 핵심입니다.
브라마굽타는 답을 틀렸지만, 질문을 맞혔어요.
수학에서는 종종 올바른 질문이 올바른 답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거든요.
당신이 휴대폰에서 0을 누를 때마다, 1400년 전 인도 천문대의 수학자 한 사람이 함께 호출돼요.
그런데 우리는 그 숫자를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죠.
브라마굽타의 책 브라마스푸타싯단타는 628년에 쓰였고, 143년 뒤인 771년에 바그다드의 칼리프 궁정으로 전해졌어요.
거기서 알 콰리즈미라는 페르시아 학자가 그 내용을 흡수했습니다.
알 콰리즈미라는 이름은 낯설어도, 그가 만든 단어는 매일 쓰고 있어요. '대수학(algebra)'이 바로 그의 책 제목에서 나온 말이거든요.
그렇게 인도에서 바그다드로, 바그다드에서 북아프리카로, 북아프리카에서 12세기 이탈리아의 상인 피보나치에게로.
피보나치가 유럽에 이 숫자 체계를 소개하면서 '아라비아 숫자'라는 이름이 굳어졌어요.
하지만 아라비아는 운반자였을 뿐, 출처는 처음부터 브라마굽타였습니다.
우리가 '발명가'라고 기억하는 사람은 대부분 가장 크게 외친 사람들이에요.
어쩌면 가장 중요한 발명은 항상 가장 늦게 기억되는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2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