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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노벨상은 받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웠어요.
보어의 코펜하겐 연구소 선반에는 5년 동안 노란 액체가 든 비커 하나가 놓여 있었어요.
그 안에 녹아 있던 건 금메달이었어요.
1940년 4월, 나치 독일이 덴마크를 침공했어요.
연구소에는 나치를 피해 독일에서 망명해 온 물리학자 막스 폰 라우에와 제임스 프랑크의 노벨 금메달 두 개가 보관되어 있었어요.
둘 다 독일 국적자였기 때문에, 독일군이 발견하면 두 사람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었어요.
그래서 헝가리 출신 화학자 게오르그 드 헤베시가 행동에 나섰어요.
헤베시가 꺼낸 건 왕수라는 용액이었어요.
왕수는 질산과 염산을 섞어 만든 강산으로, 금처럼 절대 녹지 않을 것 같은 금속도 순식간에 삭혀버리는 물질이에요.
두 개의 금메달이 천천히 녹아 노란 액체가 됐어요.
독일군이 연구소를 뒤졌지만, 비커는 평범한 화학 시약처럼 선반 위에 앉아 있었어요.
비싼 결혼반지를 도둑이 오기 직전 일부러 녹여서 알아볼 수 없게 만든 셈이에요.
전쟁이 끝나자 헤베시는 그 노란 액체에서 금을 다시 추출했어요.
노벨 재단은 새 메달을 주조해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줬어요.
가장 명예로운 자산을 가장 모욕적인 형태로 위장해야만 지킬 수 있던 시대였어요.

고등학교 화학책에 그려진 원자 그림은 사실 보어가 보면 부끄러워할 만한 단순화예요.
태양 주위를 행성이 도는 것처럼 전자가 핵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그 그림 말이에요.
보어의 진짜 아이디어는 그것보다 훨씬 기묘한 것이었어요.
1913년, 28살의 보어가 풀려던 문제는 이거였어요.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이미 원자핵의 존재를 발견했지만, 그의 태양계형 원자 모형엔 치명적인 구멍이 있었어요.
"왜 전자는 핵으로 끌려들어가 추락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아무도 답을 못 했어요.
보어가 내놓은 답이 양자 도약이었어요.
전자는 궤도 사이를 연속적으로 이동하지 않아요.
마치 엘리베이터가 1층과 2층 사이 어딘가에 멈출 수 없고 반드시 어느 한 층에만 있어야 하듯, 전자는 정해진 에너지 단계 사이를 순간적으로 뛰어넘어요.
그런데 이 황당해 보이는 아이디어가 수소가 내뿜는 빛의 패턴, 즉 스펙트럼을 정확히 설명해냈어요.
빛의 색깔은 전자가 어느 궤도에서 어느 궤도로 뛰어내리느냐에 따라 결정됐어요.
세계는 연속이 아니라 계단처럼 끊겨 있다는 게 보어의 발견이었어요.

두 사람의 토론은 학회장에서만 일어나지 않았어요.
호텔 복도, 아침 식탁, 수십 년에 걸친 편지 속에서 30년 동안 계속됐어요.
그리고 결국 아인슈타인이 졌어요.
1927년 솔베이 회의에서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됐어요.
솔베이 회의는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초청 학술회의로, 오늘날로 치면 물리학의 다보스 포럼 같은 자리예요.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이 주장하는 '확률적 세계'를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던진 이 한 마디는 자연에는 반드시 명확한 인과법칙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었어요.
보어의 대답은 간결했어요. "아인슈타인, 신에게 뭘 해야 할지 명령하지 마시오."
1935년 아인슈타인은 동료들과 함께 EPR 논문을 발표해 양자역학의 모순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려 했어요.
하지만 훗날 실험이 검증하자 결과는 보어의 손을 들어줬어요.
아이러니한 건, 양자역학을 처음 가능하게 한 사람이 아인슈타인 자신이었다는 거예요.
그가 1905년에 발표한 빛의 양자, 즉 광양자 이론이 없었다면 보어의 원자 모형도 없었어요.
결국 자기가 키운 이론을 평생 부정하다 틀린 셈이에요.
창업자가 자기 회사를 떠난 뒤 평생 그 방향이 틀렸다고 비판했지만, 후임의 전략이 맞았다는 걸 인정하게 된 것과 비슷하죠.

폭탄을 만드는 데 참여한 보어가 정작 정상회담에서 한 부탁은 폭탄을 막을 방법이었어요.
그리고 영국 총리는 이 노벨상 수상 물리학자를 스파이 취급했어요.
1943년 나치는 덴마크 유대인을 체포하기 시작했어요.
유대인 혈통을 가진 보어도 타깃이 됐어요.
보어는 어선을 타고 밤중에 바다를 건너 스웨덴으로 탈출했어요.
스웨덴에서 영국으로의 이동은 더 황당했어요.
영국 공군의 모스키토 폭격기 폭탄칸에 짐처럼 실려서 날아갔어요.
모스키토는 고속 쌍발 폭격기로, 사람이 탈 공간이 없는 좁은 폭탄칸에 들어간 건 정상적인 이동이 아니었어요.
고도가 높아지면서 산소가 희박해졌어요.
조종사가 산소마스크를 쓰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보어는 듣지 못했어요.
기내에서 기절했다가 영국에 착륙하고 나서야 깨어났어요.
미국에 건너간 보어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합류했어요.
맨해튼 프로젝트는 미국이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진행한 극비 프로그램이에요.
보어는 '니콜라스 베이커'라는 가명으로 참여했어요.
1944년 5월, 보어는 처칠을 직접 만났어요.
그가 설득하려 한 내용은 이거였어요. "핵 기술을 소련과도 공유해서 비밀 군비 경쟁을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처칠은 듣지 않았어요. 오히려 보어를 의심해 감시 대상에 올렸어요.
결국 보어가 두려워한 그대로 역사는 흘렀어요.
미국과 소련은 수십 년간 서로를 핵으로 겨누며 냉전을 보냈어요.
그 비커 속 금처럼, 보어의 경고도 오랫동안 녹아 사라진 채로 남았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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