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봄벨리는 수학자가 아니었어요. 그는 늪을 말리는 사람이었어요.
1526년 볼로냐에서 태어난 라파엘 봄벨리의 일터는 대학 강의실이 아니었어요. 토스카나 한복판, 발디키아나(Val di Chiana)라는 늪지대가 그의 현장이었어요. 당시 이 지역은 말라리아 모기가 들끓는 질퍽한 땅이었고, 봄벨리는 그 물을 빼내는 배수로 공사를 맡은 엔지니어였어요.
그런데 1555년경, 교황령을 둘러싼 정치 다툼이 터지면서 공사가 갑자기 중단됐어요. 후원자 알레산드로 루피니의 토목 사업이 멈춘 거예요. 회사 프로젝트가 동결돼 강제 휴가를 받은 직장인처럼, 봄벨리에게 뜻밖의 공백이 생겼어요.
그는 그 시간을 평생 미뤄둔 노트로 채웠어요. 늪 옆 임시 숙소에서 『대수학(L'Algebra)』 초고가 시작됐어요. 수학사를 바꾼 책이 대학이 아니라 진흙 현장 옆에서 나온 거예요.

카르다노는 자기 공식이 토해낸 괴물을 자기 손으로 덮어버렸어요. √-121, 제곱하면 음수가 되는 수였어요.
1545년 이탈리아 수학자 지롤라모 카르다노는 『대수학(Ars Magna)』에서 3차방정식의 일반 풀이 공식을 처음 세상에 내놨어요. 3차방정식이란 x³처럼 세제곱이 들어간 식으로, 당시 수학자들이 수십 년째 매달린 난제였고 카르다노의 공식은 그 문을 열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x³=15x+4를 보세요. 답은 분명히 x=4예요. 4를 넣으면 4³=64, 15×4+4=64로 딱 맞아떨어지거든요. 그런데 카르다노의 공식에 이 식을 넣으면 √-121이 튀어나왔어요.
어떤 수를 두 번 곱해도 양수가 나오는 게 정상이에요. 양수×양수=양수, 음수×음수=양수. 그러니 제곱해서 음수가 되는 수, 즉 오늘날의 허수는 '수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수였어요.
카르다노는 이 결과를 "교묘하지만 쓸모없다(as subtle as it is useless)"라고 적고 넘어갔어요. 계산기를 만든 사람이 직접 'Error'를 보고 "저건 무시하세요"라고 한 셈이에요.

답은 알고 있었어요. 4였어요. 문제는 공식이 그 4를 √-121을 거치지 않고는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봄벨리는 카르다노처럼 외면하지 않았어요. 그는 질문을 바꿨어요. "이 수가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존재한다고 치고 규칙을 만들어보자."
그는 +√-1을 "piu di meno"(더하기 마이너스 방향), -√-1을 "meno di meno"(빼기 마이너스 방향)라고 이름 붙였어요. 그리고 이 수들끼리 더하고 곱하는 규칙표를 정리했어요. 수학 역사상 허수의 사칙연산 체계가 만들어진 첫 순간이었어요.
이 규칙으로 카르다노의 공식이 만든 두 괴물 수를 실제로 계산해봤어요. 그러자 정확히 4가 나왔어요.
비유하자면 이래요. 목적지가 지상에 분명히 있는데, 그리로 가는 직선 도로가 없어서 일단 지하 터널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도착하는 상황이에요. 허수가 그 터널이고, 실수의 답이 도착지예요. 봄벨리는 '허수라는 터널을 통과해야만 실수의 답에 닿는 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여준 거예요.
카르다노가 "쓸모없다"고 묻어버린 수가, 실은 4로 가는 유일한 경로였어요.

그가 죽은 해에 출간된 책은 잊혔어요. 400년 뒤, 그 책에 적힌 수가 원자의 운동을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봄벨리의 『대수학』은 1572년, 그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해에 출판됐어요. 하지만 한동안 주목받지 못했어요. 그러다 약 200년 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허수를 i라는 기호로 정리하고,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실수와 허수를 하나의 평면 위에 올린 복소평면을 만들었어요. 복소평면이란 x축은 실수, y축은 허수로 이루어진 좌표계예요. 그제야 허수는 수학의 정식 언어가 됐어요.
그리고 20세기에 슈뢰딩거 방정식이 등장했어요. 전자 같은 아주 작은 입자가 어디 있을지 확률로 기술하는 양자역학의 핵심 도구예요. 그런데 이 방정식은 허수 i 없이는 한 줄도 쓸 수 없어요.
사무실 캐비닛에 처박혀 잊힌 메모가 수십 년 뒤 회사 핵심 제품의 설계도가 된 것처럼, 늪을 말리던 엔지니어가 강제 휴가 동안 임시 숙소에서 끄적인 노트가 400년 뒤 원자를 설명하는 언어가 됐어요.
카르다노가 "교묘하지만 쓸모없다"고 한 바로 그 수가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2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