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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생기기 40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 두 여자가 한국 최초의 간호사 면허를 받았어요.
1908년 11월 5일, 이름은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였어요.
이 일이 일어난 곳은 보구여관이에요.
미국 감리교가 1903년 서울에 세운 여성 전용 병원이자 한국 최초의 정규 간호학교였어요.
근대식 의료 체계가 없던 조선 땅에, 미국 선교사들이 병원을 짓고 간호를 가르쳤어요.
운전면허가 자동차보다 먼저 생긴 나라를 상상해보세요.
'한국인 간호사 면허'는 그런 식으로 먼저 태어났어요.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됐으니, 면허가 나라보다 40년 앞섰던 거예요.
그 시절 여성이 의료 현장에서 일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어요.
그런데 두 사람은 시험을 치렀고, 합격했고, 면허를 받았어요.
그리고 그 순간, 한국 간호사의 역사가 시작됐어요.

오늘날 매년 2만 명이 치르는 간호사 국가고시는, 식민 통치가 한반도에 남긴 행정 양식 중 하나예요.
뿌리를 캐보면 불편한 사실이 나와요.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54호 '간호부 규칙'이 공포됐어요.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래요.
"한반도에서 간호 행위를 하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으로 자격을 검증하는 구조' 자체가 이때 처음 법으로 만들어졌어요.
해방 이후 1962년 의료법 개정으로 형식은 바뀌었지만, 그 구조는 그대로 이어졌어요.
회사에서 100년 전 외국인 사장이 만든 인사 규정을 지금도 거의 그대로 쓰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색하지만, 그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에요.
현재 한국 간호사 국가고시의 출생증명서에는 일본어가 적혀 있는 셈이에요.
그렇다고 그 시험이 의미 없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하지만 '원래부터 당연히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제도 뒤에 역사의 특정 맥락이 있다는 건, 알아두는 게 좋아요.

한강의 기적을 시작한 자본금 중 일부는 독일 병원 새벽 당직실에서 송금됐어요.
외화 한 푼이 아쉬웠던 시절, 가장 확실한 수출품은 반도체도 자동차도 아닌 간호사 면허 한 장이었어요.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약 1만 명의 한국 간호사·간호조무사가 서독으로 파견됐어요.
서독은 전후 복구 과정에서 의료 인력이 부족했고, 한국 정부는 그 자리를 채울 사람들을 보냈어요.
이들이 매달 독일에서 번 돈을 한국으로 보내왔어요.
그 규모가 얼마였냐면, 1960년대 후반~70년대 초 한국 경상수지의 1~2%에 달했어요.
지금 K팝 가수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외화가 한국 경제에 보탬이 되듯, 그때는 그 역할을 파독 간호사들이 했어요.
게다가 박정희 정부는 이 송금액을 담보로 차관까지 들여왔어요.
"제 월급이 고속도로 깔리는 데 쓰였다고 들었어요."
파독 간호사들이 당시를 회고할 때 자주 하는 말이에요.
그때 독일 병원 복도를 걷던 스물몇 살의 여성들이, 자신의 밤샘 당직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종잣돈이 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요.
하지만 귀국 이후가 문제였어요.
독일에서 쌓은 경력과 의료 수준을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구조가 없었어요.
그냥 '돌아온 간호사'로 남았어요.

간호사 국가고시는 합격하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합격하고 나서 시작되는 진짜 시험을 위한 입장권이에요.
매년 2만 명이 면허를 따지만, 그중 30%는 1년 안에 병원을 떠나요.
최근 간호사 국가고시 합격률은 95~98%예요.
의료직 면허 중에서 가장 높은 편이에요.
그런데 대한간호협회 조사를 보면, 신규 간호사의 1년 이내 사직률이 30%대를 계속 유지하고 있어요.
운전면허는 따기 쉬운데 도로에 나가면 무서운 것과 비슷해요.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요.
운전을 잘못하면 내가 위험해지지만, 간호를 잘못하면 환자의 생명이 걸려 있어요.
그래서 현장에서는 이런 말이 돌아요.
"합격증을 받는 순간이 간호사 인생에서 가장 안전한 순간이에요."
자조 섞인 그 한 마디 뒤에는, 학교에서 배운 것과 병동 현실 사이의 간극이 있어요.
1908년 보구여관에서 두 명으로 시작한 면허 제도는, 식민지를 거치고, 산업화의 수출품이 됐다가, 이제 매년 2만 명이 치르는 시험이 됐어요.
면허의 역사는 충분히 길어요.
그런데 합격증을 받아든 사람이 1년 안에 그만두는 현실은, 100년이 넘도록 아직 그대로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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