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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같은 해, 한국에서 토익보다 많이 본 시험이 있었다.
엑셀 한 종목만 평가하는 컴활 2급이다.
컴퓨터활용능력 2급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1993년부터 시행한 국가기술자격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국가가 인정하는 기술 자격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으로, 쉽게 말해 "이 기술 실력, 국가가 보증합니다"라는 도장을 찍어주는 곳이다.
처음에는 이름 그대로였다.
컴퓨터를 기본적으로 다룰 줄 아는지 확인하는 평범한 시험.
그런데 30년이 지난 2020년대, 연간 응시자가 50만 명대를 넘기며 토익·한국사능력검정과 함께 한국 3대 응시 시험에 이름을 올렸다.
숫자가 실감이 안 난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떤 해에는 영어 시험인 토익보다 엑셀 시험인 컴활 2급을 본 사람이 더 많았다.
"엑셀 좀 다룰 줄 알아요"를 증명하는 시험이, 수십 년간 대학 입시와 취업 준비의 상징이었던 영어 시험을 응시자 수에서 앞지른 것이다.

컴활 2급은 이름에 '기본'이 들어가지만, 실기에서는 응시자 셋 중 둘이 떨어진다.
운전면허 1종 합격률이 50%대인데, 컴활 2급 실기는 그보다 낮은 30%대에 머문다.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실기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이 첫 번째 함정이다.
스프레드시트 실무 과목을 40분 안에 끝내야 하는데, 그 안에 함수 중첩, 조건부 서식, 매크로 작성, 차트 편집을 모두 처리해야 한다.
두 번째 함정은 채점 방식이다.
부분 점수가 없다.
셀 주소 하나를 잘못 입력하면, 그 문항에 걸린 점수 전부가 0점이 된다.
비유하자면 이런 상황이다.
단어 시험에서 알파벳 한 글자만 틀려도 그 단어 전체가 오답 처리되는 것.
그래서 "나 엑셀 좀 쓸 줄 아는데"라며 가볍게 접근했다가 처음 실기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필기는 50%대 합격률로 절반이 넘어가지만, 그래서 결국 실기에서 다시 붙잡히는 구조다.
한번에 합격하는 사람보다 두세 번 응시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컴활 2급은 합격해도 합격증을 자랑하지 않지만, 없으면 이력서가 비어 보인다.
2000년대 중반부터 공무원·공기업·은행 채용에서 컴활 2급 이상에 가산점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그게 결정적이었다.
가산점 자체는 크지 않다.
보통 1~2점.
100점 만점 시험에서 1~2점이 얼마나 대단한 차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경쟁이 치열한 공채에서 1점은 수백 명의 당락을 가르기도 한다.
결국 심리가 바뀌었다.
"따면 유리한 자격"이 아니라 "없으면 불이익인 자격"이 된 것이다.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컴활 2급은 "있어도 표 안 나지만, 없으면 성의가 없어 보이는 정장" 같은 위치가 됐다.
학점은행제에서 14학점이 인정된다는 점도 대학생들이 몰리는 이유 중 하나다.
학점은행제는 자격증이나 사회교육 이수 결과를 대학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 컴활 2급을 따두면, 자동으로 학점 14점이 채워지는 효과가 생긴다.

컴활 2급은 엑셀 한 종목만 평가한다.
대신 그 한 종목에 매크로 작성까지 들어 있다.
1급은 스프레드시트(엑셀)와 데이터베이스(액세스) 두 과목이다.
그런데 2급은 엑셀 하나만 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엑셀 하나잖아"라며 가볍게 보고 들어왔다가, 시험 범위를 확인하고 당황한다.
그 '하나'의 목차를 펼치면 이렇다.
함수, 조건부 서식, 피벗 테이블, 매크로.
매크로는 엑셀에서 반복 작업을 자동으로 실행하도록 동작 순서를 기록해두는 기능으로, 실무에서도 고급 사용자들이 주로 쓰는 영역이다.
비유하자면 이런 상황이다.
운전 면허에서 "주차 한 동작만 봐요"라고 해서 갔더니, 평행주차·후진주차·T자 주차를 전부 40분 안에 완료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컴활 2급을 '기본'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지, 묻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실무에서 매크로를 일상적으로 쓰는 직장인은 많지 않다.
하지만 시험은 매크로를 요구한다.
"이게 과연 현장에서 필요한 능력을 검증하는 건지, 아니면 어렵게 만들어서 변별력을 주려는 건지" 라는 물음이 여전히 인터넷 커뮤니티를 떠돌고 있다.
연간 50만 명이 보는 시험이, 정작 그 시험이 무엇을 증명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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