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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유통관리사라는 이름 때문에 절반은 이 자격증의 진짜 무대를 모른다.
'유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마트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직원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 자격증을 따는 사람들의 실제 목적지는 이마트 본사, 롯데쇼핑 MD 부서, 쿠팡 바이어 직군이다.
'간호조무사'라는 이름만 듣고 병원 청소부인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이름을 잘못 읽은 거다.
유통관리사도 똑같다.
이 자격증은 매장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상품을 어떻게 팔지를 기획하는 사람을 위한 국가공인 시험이다.
MD는 상품기획자다.
어떤 상품을 매대에 올릴지, 가격을 어떻게 책정할지, 어느 시즌에 어떤 물량을 발주할지 결정하는 사람이다.
바이어는 그 상품을 납품할 협력사와 직접 협상하는 사람이다.

시간이 점수를 가른다.
아는 문제도 못 푸는 사람이 절반이다.
시험은 유통·물류일반관리, 상권분석, 유통마케팅, 유통정보 등 5과목 90문항으로 구성되며, 객관식과 주관식이 혼합된 구조다.
주어진 시간은 딱 100분이다.
문항당 평균 1분 남짓이지만, 주관식 답안 작성 시간까지 감안하면 객관식 한 문제에 쓸 수 있는 시간은 40초를 넘기기 어렵다.
수능 국어 비문학 지문을 5배속으로 읽는 느낌이라고 하면 딱 맞다.
'국가공인'이라는 단어 때문에 여유 있는 시험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실제로는 속독과 암기가 점수를 결정한다.
개념을 천천히 곱씹는 사람이 아니라, 반복 훈련으로 손이 먼저 움직이게 만든 사람이 유리하다.
그래서 기출문제 풀이가 핵심 전략이 된다.
이 시험에서 '이해'는 입장권이고, '속도'가 합격을 결정한다.
평균만 보면 쉽다.
떨어진 사람들의 점수표를 보면 다르다.
합격 기준은 평균 60점 이상, 그리고 과목당 40점 이상이다.
하지만 과락 조건이 함정이다.
과락이란 한 과목이라도 40점 미만이면, 다른 과목을 아무리 잘 봐도 전체 불합격 처리되는 규정이다.
운전면허 학과시험을 4개 과목으로 쪼개서, 한 과목만 망해도 전체가 무효가 되는 구조와 같다.
실제로 평균 70점을 받고도 탈락하는 응시자가 매년 수만 명이다.
가장 자주 발목을 잡는 과목은 유통정보다.
EDI, POS, SCM 같은 물류정보시스템 개념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데다, 낯선 영어 약어들이 뒤섞여 있어 준비 없이 맞닥뜨리면 당황스럽다.
EDI는 기업 간 주문서나 납품서를 전산으로 주고받는 시스템이다.
POS는 마트 계산대의 바코드 결제와 판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시스템이다.
SCM은 제조사에서 소비자까지 상품이 이동하는 전체 공급망을 관리하는 체계다.
개념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그런데 시험장에서 처음 만나면 무너진다.
그래서 이 과목만큼은 영어 약어 하나하나를 미리 익혀두는 것이 전략이다.
취준생 절반이 모르는 채로 토익에만 6개월을 더 쓴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CJ올리브영, 쿠팡의 채용 공고에는 '유통관리사 우대'가 명시되어 있다.
공기업 중에서는 aT, 즉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가산점 항목으로 올라가 있다.
토익 800점을 받으려면 평균 3~6개월이 걸린다.
그런데 유통관리사 2급은 집중 준비 기준 4~6주면 합격권에 진입할 수 있다.
같은 '우대 조건' 한 줄을 채우는 데 드는 시간이 완전히 다르다.
더 결정적인 건 경쟁 밀도다.
토익 800점 보유자는 채용 시장에 넘쳐난다.
하지만 유통관리사 2급을 가진 유통 직군 지원자는 생각보다 훨씬 적다.
인사팀이 같은 가산점을 부여하는데, 희소성은 압도적으로 이쪽이 높다.
이걸 알고 준비하는 사람과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 사이에는, 자격증 한 장이 아니라 채용 담당자의 시선이 머무는 시간 차이가 생긴다.
"다들 하는 거 하느라 이 카드가 있는 줄도 몰랐어"라는 말을, 나중에 후회하면서 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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